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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돌과 국수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시 성북구 나무신문l승인2018.04.20l수정2018.04.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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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옛돌박물관

돌에서 느끼는 온기
성북02 마을버스 종점 정류장 이름이 ‘우리옛돌박물관·정법사’다. 종점 정류장 바로 앞에 우리옛돌박물관이 있다. 

18155여㎡(5500여 평)에 자리잡은 박물관은 실내외전시장에 석물과 자수, 근현대한국회화를 전시했다.   

실내전시장은 1층 환수유물관, 2층 동자관과 벅수관, 3층 기획전시관 등으로 나누어졌다. 실외전시장에서도 여러 종류의 옛 돌을 볼 수 있다. 

▲ 우리옛돌박물관 환수유물관

능묘와 관련된 옛 돌에는 문인석, 장군석, 석수, 향로석, 장명등, 망주석 등이 있다. 민간신앙과 민속을 엿볼 수 있는 동자석, 벅수, 민불, 석호상, 솟대 등도 있다. 관솔대와 해시계, 측우기, 기우제단 등 생활과 관련된 옛 돌도 볼 수 있다. 

1층 환수유물관에 문인석 등 거대한 옛 돌이 촘촘하게 서 있다. 얼굴 표정이 다 다르다. 지그시 감은 눈, 꽉 다문 입술, 미소 등 차가운 돌로 만든 석인상이지만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층 로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려 후기 장군석이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능묘를 지키는 장군의 형상을 한 석인상이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상에서 모성애가 느껴진다.  
2층에는 동자관과 벅수관도 있다. 동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제주동자상이 있다. 조선 후기에 제주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비친다. 

▲ 우리옛돌박물관 동자관
▲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벅수관에 전시된 다양한 벅수 또한 그 표정이 다 다르다. 옛 사람들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사람의 얼굴의 벅수를 세워 역신이나 잡귀가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실외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옛 돌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전시관 건물 옥상 꼭대기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 ‘민불’이 성북동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우제를 지내던 기우제단에는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시절 비를 기다리던 옛 사람들의 간절함이 서려있는 듯하다. 

조선시대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의 형상을 한 석호상은 거대하면서도 친근한 표정이다. 조선후기 탄생불 안내판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아기부처를 씻겨주세요. 나쁜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 우리옛돌박물관 외부 전시장 ‘문인의 길’.

정법사와 길상사 
우리옛돌박물관 옆에 정법사가 있다. 정법사는 원래 복천암이었다. 작은 절 한 쪽에 부처상이 보인다. 부처상 뒤로 올라가 부처상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세상을 향한 부처상의 손끝에 세상이 얹힌다. 절집 추녀에 매달린 풍경이 울린다. 작은 소리가 부처상이 바라보는 공중으로 퍼진다.  

코끼리를 타고 있는 어린 부처상을 지나 작은 정원이 있는 곳에서 멀리 서울 도심의 귀퉁이가 보인다. 그곳을 바라보는 부처상의 시선이 따듯하다. 

▲ 정법사. 코끼리를 타고 있는 아기 부처

다른 나라 대사관 건물이 성벽처럼 자리잡고 있는 골목을 지나 성북02 마을버스가 오가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마을버스가 지나다녔지만 타지 않았다. 그 길에 있는 길상사를 들르기 위해서였다. 

길상사는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300살이 조금 안 된 느티나무가 있고, 오래된 나무를 흔들고 가는 바람과 새소리도 있다. 작은 연못과 석탑이 잘 어울렸으며, 고목에 걸린 풍경 소리가 고즈넉하다. 

▲ 정법사

북악산 기슭을 울리는 길상사 범종소리가 좋다. 몇 년 전이었다. 해거름에 길상사 마당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는 증폭과 감소의 파장이 만들어 내는 세 번의 굴곡을 거치며 절 마당을 돌아서 마을로 퍼져나갔다. 

저녁 타종 시간은 멀었다. 종소리를 들으려 애써 기다리지 않았다. 전에 들었던 종소리를 생각하며 절을 나왔다. 

국포국수집
바람이 나뭇가지를 지나는 소리, 풍경소리, 발자국소리, 전에 들었던 종소리까지……눈을 감고 소리로 보았던 시간을 품고 골목을 걸었다. 이내 큰 도로가 나왔다.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도로 옆에 있는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막걸리를 시키고 벽에 걸린 안주 이름들을 살펴봤다. 마음에 드는 안주는 있었지만 털털하게 먹기에는 비쌌다.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안주에 대해 국수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들과 상의를 해야 했다. 

▲ 구포국수.

우리는 모든 안주가 혼자 먹기에 비싸고 양이 많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한 아줌마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 의견은 지금 생각해도 기똥찬 생각이었다. 그 아줌마의 의견은 이랬다. 

두부김치 같은, 두부가 들어가는 안주가 있는데, 그에 따른 추가 메뉴로 ‘두부추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웬만한 손님들이 아니면 대부분 ‘두부추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메뉴판에도 ‘두부추가’는 없었다.  

‘두부추가’ 안주에 막걸리 한 병을 먹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부추가’ 안주와 막걸리를 다 비우고 국수를 시켰다. 

국수대접에 삶은 면과 갖은 고명을 넣어 상에 올린다. 국물은 따로 부어준다. 국물을 담은 누런색 주전자가 그럴싸하다. 

주전자를 기울이는 각도에 따라 흐르는 국물의 양이 달라진다. 왈칵 쏟아지지도 않고 쫄쫄거리지도 않는 그 중간 각도 어디쯤에서 주전자를 잡은 아줌마의 손이 멈춘다. 주둥이에서 국수대접으로 떨어지는 국물에 결이 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구수한 냄새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국물까지 다 먹고 국수대접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미닫이문 나무틀에 낀 유리를 통해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녹색 버스가 도로를 분주하게 달리고 사람들도 바쁘게 걸어서 어디론가 간다. 어제 본 드라마를 집안일 같이 이야기 하는 국수집 아줌마들의 수다가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릴 때쯤 내가 나로부터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나는 누구지?’ 메아리 같은 대답이 어스름 저녁과 함께 미닫이문 밖에 ‘툭’ 떨어졌다. 

부처와 돌과 국수가 전부였던 하루가 흩어지고 있었다. 배낭을 메고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딸랑거리는 동전 몇 닢, 땀에 젖어 축축한 종이지갑이 손에서 논다. 

“얼마에요?”… “잠깐만요, 만 원이요”

‘두부추가’ 안주에 막걸리 한 병, 국수 한 그릇, 이게 다 만 원이다. 지갑을 꺼내 속을 들여다본다. 꽃 피는 봄날 낙엽 같은 만 원짜리 한 장이 달랑거린다. 오늘 하루도 텅 비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나무신문  imwood@im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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