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의 바닷길을 걷다 -이사부길 A코스
삼척의 바닷길을 걷다 -이사부길 A코스
  • 나무신문
  • 승인 2018.04.1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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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삼척시
▲ 갯바위 위 정자에서 본 풍경

가는 날이 장날
삼척해수욕장에서 이사부 광장(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이사부길 A코스 4.2㎞를 걷기 위해 강원도 삼척을 찾았다. 이 길은 걷는 내내 바다를 보며 걷는 길이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삼척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3시간30분 만에 도착했으니,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삼척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어야 할 판이었다. 

▲ 삼척해수욕장 남쪽 끝 이사부길 A코스 시작지점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시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가는 날이 장날’이어서 시장 밖 도로에도 장꾼들이 천막을 치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은 장사꾼이나 구경꾼들이 이렇게 북적대지 않는다고 한다.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장구경하는 사이에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장구경을 하며 채소가게 아줌마와 잡동사니를 파는 아저씨를 통해 알아 둔, 시장에서 오래된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아줌마와 아저씨의 의견을 종합해보니 아바이순대, 진미순대, 대동추어탕 세 집이 최종 후보가 됐다.  

아바이순대와 진미순대는 가까운 거리에 있고, 대동추어탕은 그 두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는 위치정보를 확인하고 아쉽지만 대동추어탕은 다음 기회에 맛보기로 했다. 

아바이순대를 먼저 찾아갔다. 손님이 가득했다. 혼자 앉은 손님상에 합석이라도 할까했는데 그런 자리도 없었다. 

진미순대는 그나마 빈자리가 몇 개 있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각해보니, 아바이순대 손님은 다 아저씨들이었고 진미순대 손님은 다 아줌마들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혼자 웃고 있는데 국밥이 나왔다.      

▲ 삼척해수욕장

신라 장군 이사부
이사부길 A코스가 시작되는 삼척해수욕장을 가기 위해 삼척종합버스정류장에서 삼척해수욕장을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안내에 따르면 시내버스가 하루에 5대 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이른 버스가 1시간 후에 출발 한다고 한다. 택시를 탔다. 요금이 4000원 나왔다. 삼척해수욕장 백사장에 섰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일렁이는 파도가 일렬로 일어서 해안으로 밀려온다.    

삼척의 바다는 가요 <독도는 우리 땅>에 나오는 ‘신라 장군 이사부’의 역사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신라 장군 이사부는 군대를 이끌고 512년 정라항(지금의 삼척항)을 출발한다. 이사부 장군의 군대가 향한 곳은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와 독도)이었다.  

우산국은 천혜의 요새였다. 1년 전인 511년에 1차 정벌에 나섰었지만 실패했다. 1차 정벌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사부 장군이 준비한 것 중 하나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자였다. 

우산국 앞바다에 도착한 이사부 장군은 우산국왕에게 사신을 먼저 보냈다. 항복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하지만 우산국왕은 사신의 목을 베고 전쟁의 길을 선택했다. 

이사부 장군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자 입에서 불을 뿜게 하였으며 화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화살 공격과 불을 뿜는 거대한 사자를 본 우산국왕은 항전 끝에 항복했다. 이로써 우산국은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가요 <독도는 우리 땅>을 통해 아이들도 다 아는, ‘지증왕 13년에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섬나라 우산국이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삼척의 바다다. 

▲ 이사부길 A코스 시작지점에서 출발해서 돌아본 풍경. 삼척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일렬로 돌진하는 파도를 보며
신라 장군 이사부의 역사가 남아 있는 삼척의 바다, 삼척해수욕장 남쪽 끝에서 시작해서 이사부 광장(운동장)에서 끝나는 ‘이사부길 A코스’, 그 길에 ‘이사부’라는 이름 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이다.   

삼척해수욕장에서 이사부길 A코스가 시작되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부길 A코스 시작지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망망한 바다와 출렁이는 파도, 드넓은 백사장 앞에서 ‘길찾기’는 자연스레 잊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발길이 백사장을 지나 파도 앞으로 가고 있었다. 

▲ 광진항 맑은 물

먼 바다는 짙은 파란색이다. 그곳부터 시작된 파도가 해안에 가까워지면서 높이 일어선다. 푸른색 물기둥이 일렬로 일서서서 해안으로 밀려든다. 드라마에서 본, 일렬로 돌진하는 개마무사 기병대가 떠올랐다.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 대신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공중을 울린다.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로 부서지고, 더러는 백사장을 덮으며 스러진다. 날리는 포말이 공중에서 부서져 안개처럼 떠다닌다. 

백사장 끝에서 끝까지 걷기로 하고 백사장 북쪽 끝 언저리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곳부터 파도와 백사장 사이 경계를 오가며 남쪽으로 걸었다. 멀리 바다 앞에 선 사람들이 아득하게 보였다. 

이사부길 A코스가 시작되는 곳을 알리는 이정표는 삼척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차가 오가는 도로 옆에 놓인 데크길이었다. 

▲ 도로 옆 데크길로 걷는다. 정면에 갯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가 보인다.

바닷가 길을 걷는 1시 간의 여유    
오가는 차 소리가 거슬렸지만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와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만이었다. 

작은후진해변으로 접어들 무렵 길 건너편에 나무로 지은 작은 건물이 보였다. ‘후진마을 해신당’이었다. 

▲ 후진항으로 가는 길에 돌아본 풍경. 갯바위 위에 돌출된 바위가 두꺼비를 닮았다.

후진마을은 나루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이름인 ‘후진(後津)’의 원래 이름은 ‘뒷나루’다. 동헌이 있던 시내에서 볼 때 뒤쪽에 자리한 포구였기 때문에 예로부터 ‘뒷나루’라고 불렀다. 한자로 옮기면서 ‘후진(後津)’이 된 것이다. 후진마을은 큰후진마을과 작은후진마을로 나뉜다. 

해신당은 원래 작은후진마을 동쪽 바닷가 언덕에 돌로 만든 ‘ㄷ’자 모양의 제단이었다고 한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시월 초하루에 두 차례 제를 올렸다. 1999년 새천년도로가 생기면서 원래의 모습이 사라지고 근처에 임시로 해신당을 꾸며 제를 지내오다가 2011년 지금의 자리에 해신당을 지은 것이다.   

▲ 비치조각공원으로 가는 길에 본 풍경

작은후진해변을 지나 후진항에 도착했다. 후진항에서 돌아본 바닷가 풍경 중에 갯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두꺼비를 닮은 바위였다. 바다에서 해변으로 막 뛰어 오를 것 같은 모습이다. 

길은 비치조각공원으로 이어진다. 조각공원 한쪽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걸어온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다가 파도를 일으켜 해안으로 밀려든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갯바위를 삼키고 부서진 포말은 공중에서 흩날린다. 보고만 있어도 후련하다. 

▲ 비치조각공원

비치조각공원을 뒤로하고 걷는 길에 광진항 풍경을 데크길에서 굽어보았다. 항구 바다가 맑고 푸르러 바닥이 다 보인다. 잔잔한 물결에 햇빛이 비쳐 반짝인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소망의 탑(소망의 종)이었다. 소원을 비는 손 모양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3만3000명 참여자의 뜻을 간직하기 위해 탑 내벽에 인명판을 만들었다. 2100년에 열리게 될 타임캡슐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 소망의 탑이 있는 광장

미래가 희망이 되는 날을 위해, 후대의 손으로 열게 한 봉인된 희망은 무엇일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지점인 이사부 광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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