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정의 겨울
고석정의 겨울
  • 나무신문
  • 승인 2018.02.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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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철원군
▲ 겨울 고석정

얼어붙은 한탄강 고석정에서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은 하나였던 나라 옛 그대로 흐르고 산줄기도 막힘없이 이 땅을 내달리는데, 고향 땅 부모형제와 생이별 수십 년, 사람만이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는 분단의 나라에도 계절은 흐르니, 남에서 북으로 봄꽃 피어 오르고 북에서 남으로 단풍 번지는 자연의 이치를 헤아려 볼 뿐이다. 

철원의 두 물줄기, 그리고 고석정
북한과 맞닿아 있는 땅, 철원의 북쪽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석정이 있다. 그 물줄기 중 하나는 대교천이고 다른 하나는 한탄강이다. 

▲ 승일교 쪽에서 흘러오는 한탄강 물줄기.

철원 북쪽에 있는 철원노동당사(등록문화재 제22호)를 먼저 들렀다. 철원노동당사는 광복 이후 1946년에 지어져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한 건물이다. 철원노동당사를 돌아보고 남쪽으로 향한다.  

그 다음 목적지는 도피안사다. 도피안사로 가다보면 드디어 대교천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도피안사는 865년에 도선이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국보 제63호다.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도 있다.

▲ 한탄강과 대교천이 만나는 합수지점 풍경

도피안사를 지난 대교천은 남으로 흐르다 한탄강으로 흘러든다. 사람은 다닐 수 없는 물길, 강물만 자유롭게 흐른다. 

철원의 북쪽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물줄기인 한탄강은 철원의 유명한 여행지 직탕폭포와 승일교를 차례로 지난 뒤 고석정 앞으로 흐른다. 고석정에서 남쪽으로 약 500m 정도 흘러간 한탄강 물줄기는 그곳에서 대교천 물줄기를 만난다. 대교천은 한탄강과 한 몸이 되어 굽이쳐 흐른다. 

한탄강은 연천군을 지나면서 포천군에서 흘러온 영평천을 맞이하여 함께 흐르다 전곡리유적지를 지난 뒤 임진강을 만나 임진강의 이름으로 흐르게 된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한강을 만나 서해로 흘러들게 된다. 

▲ 얼어붙은 한탄강과 얼음폭포

고석정과 임꺽정
고석정은 한탄강 협곡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절벽(고석) 부근을 일컫는 이름이다. 고석은 약 1억 년 전에 만들어진 화강암이다. 54만년~12만년 전에 현무암질 용암에 파묻혔었는데 침식작용에 의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고석정 일대 강에서 솟은 기암절벽의 풍경을 만든 고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 고석정에서 순담계곡으로 가는 길

원래부터 쌓여있던 퇴적암 아래서 뜨거운 마그마가 올라온다. 마그마는 퇴적암을 변성퇴적암으로 변화시키고 식으면서 화강암이 된다. 그게 1억 년 전 일이다. 그리고 54만년~12만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현무암질 용암이 화강암을 덮는다. 화강암을 덮은 현무암은 오랜 기간 동안 풍화작용으로 없어지고 그 속에 있던 화강암은 풍화를 견뎌내 현재의 고석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풍경이 한탄강 고석정 인근에 남아있는 것이다. 

고석정 일대의 풍경은 신의 손길로 빚은 거대한 예술작품 같다. 인공이 다다를 수 없는, 오랜 세월 자연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예술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의 품에 사람이 깃든 것은 1400여 년 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 고석정에 임꺽정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석정 입구 광장에 있는 임꺽정 상

신라시대 이후에도 시대마다 왕과 승려 등이 고석정을 찾았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 명종 임금 때 의적으로 알려졌던 임꺽정은 고석정에 은거하며 활동했다. 

임꺽정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이름이 스무 차례 이상 언급되고 있다. 

그 기록 중 선조실록에 ‘옛날에는 하나의 윤원형이 기탄없이 탐욕을 부려 흉포한 자를 임용하자 안으로는 임꺽정(林巨正)의 난을 빚어내었고…’라는 내용이 나온다.    

고석정 풍경 중 눈에 띄는 것 하나는 강에서 솟은 높이 10m 정도의 바위다. 바위 중간에 자연적으로 생긴 작은 석굴이 있는데, 임꺽정이 그곳에 은거했다고 한다. 강 건너편에는 임꺽정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석성이 남아있다.  

고석정에서 물길 따라 걷는 길
고석정은 신라시대부터 왕들과 승려 양반들의 유람지였으니 그곳에 정자 하나 없을 리 없겠다. 고석정은 원래 정자 이름이었으나 옛 정자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 한국전쟁 이전에 있었던 정자는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시멘트로 만든 정자는 1971년에 지은 것이다. 

정자에서 물가로 내려간다. 강물이 꽁꽁 어는 겨울이면 이른바 ‘한탄강 얼음 트래킹’을 할 수 있다.    

승일교 쪽에서 흘러온 물길이 고석정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그 장면을 섶다리 위에서 카메라에 담는다. 

▲ 한탄강에 놓인 섶다리에서 본 풍경

물길을 따라 승일교 쪽에서 걸어온 사람들이 섶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걷는다.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강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높이 솟은 기암절벽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어진다. 물 위에 뜬 다리는 강물이 어는 바람에 얼음에 박힌 다리가 됐다. 얼음 위에 눈이 쌓이고 절벽에도 잔설이 남았다. 고석정의 겨울 풍경은 얼음과 눈으로 완성된다. 

물 위의 다리가 끝나는 곳이 대교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두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라 물길이 넓어진다. 얼어붙은 강 한쪽, 여울은 얼음이 녹았다. 콸콸거리며 흐르는 여울물소리가 얼어붙은 계곡을 울린다. 

강 건너 층층이 쌓인 바위절벽 아래 사람들이 앉아 차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다. 한기가 뼈까지 스미는 한겨울 얼음 계곡, 기암절벽 아래에서 나누는 차 한 잔이라!

▲ 고석정 일대

그 물길을 따라 약 1.5㎞ 정도 내려가면 순담계곡이 나온다.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가 머물렀던 곳이다. 기암과 절벽이 물길과 어울린 풍경으로 유명하다. 겨울 해가 짧아 순담계곡까지 가지 못했다. 합수지점에서 다시 고석정으로 돌아간다.   

강가에서 고석정 상가지구로 올라간다. 상가지구로 가기 전 한쪽에 정자가 보였다. 그 정자에서 고석정 일대 풍경을 한 눈에 넣고 돌아섰다. 

철원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철원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한참 뒤에 있다. 철원에 다시 오면 꼭 들러보려 했던 식당을 찾아갔다. 

철원막국수집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당이 있는 시골집이 식당이다. 방 앞에 등산화가 가득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에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탄강 얼음 트래킹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었다. 

▲ 철원막국수
▲ 철원막국수집 만두

그 틈에 앉아 철원막걸리와 만두를 시켰다. 직접 만든 김치만두 맛이 카랑했다. 막걸리는 술술 넘어간다. 만두로 허기를 달래고 막걸리로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막국수를 먹었다. 반나절 머물렀던 고석정 풍경이 삼삼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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