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5.25 금 10:13

설국으로 변한 정북동토성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청주시 나무신문l승인2018.02.02l수정2018.02.02 11:3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정북동토성 동남쪽 풍경.

정북동토성으로 가는 길 
한 이틀 내린 눈이 쌓여 발목을 덮을 정도였는데, 눈이 그치고 바로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가 계속 되어 내린 눈이 녹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었다.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 오근장 들판이 눈에 덮여 온통 설국이었다. 

청주 시내에서 정북동토성이 있는 정북동까지 가는 버스가 드물다. 정북동 약 2㎞ 전에 정하 시내버스 종점이 있는데, 청주 시내에서 정하 시내버스 종점까지 오가는 시내버스 노선은 몇 개 더 있어 그나마 시내버스가 좀 있다. 

정북동토성을 찾아갈 때는 그런 정보를 몰라 청주 시내에서 택시를 탔다. 청주에서 10여 년 동안 택시기사를 했다는 분도 정북동토성이 어딘지 몰랐다. 택시 내비게이션에도 정북동토성은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정북동토성 주소를 찾아 택시기사께 알려줬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8000원이 채 안 되는 택시비를 내고 도착한 그곳은 온통 ‘눈세상’이었다. 

▲ 정북마을에서 정북동토성으로 가는 길

차가 다니는 도로는 눈이 녹았다. 흙과 섞여 질척거리는 눈이 오가는 차들 바퀴에 밀려 도로 가, 정북동토성을 알리는 이정표 아래 모퉁이에 몰렸다. 눈 녹아 질척거리는 그곳에 쓰레기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이정표를 따라 들판 한 가운데로 난 농로로 접어든다. 차들이 드물게 다니는 그곳은 눈이 녹지 않았다. 차 바퀴자국과 사람 발자국이 흰 눈에 찍혔다. 500여 미터 직선으로 뻗은 농로를 따라 ‘눈세상’으로 들어간다. 

▲ 충북선 철길

사방이 트인 오근장 들판이 온통 눈밭이다. 반투명으로 빛나는 하얀 공기를 헤치며 설국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멀리 눈에 덮인 긴 언덕 같은 게 보인다. 그게 정북동토성이었다. 정북동토성 위에 늘 푸른 나무 한 그루 시처럼 서있다. 

▲ 정북동토성 나무 한 그루.

정북동토성
정북동토성은 우리나라 초기의 토성이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흔적부터 시작해서 1세기 취락지구의 흔적도 발견됐다. 이곳에서 발견된 토성의 흔적은 3세기 것부터 시작된다. 이후 남북국시대 신라에서는 토성 밖 해자가 있던 자리를 메우고 건물을 지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미호천 동쪽 가 약 150m 거리에 지어진 정북동토성은 금강유역에서 유일하게 네모꼴로 만들어진 토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 둘레가 675m로 작은 토성이다. 하지만 오래되고 작은 이 토성도 성벽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 지난 여름 피었다 진 해바라기 꽃 위에 눈이 쌓였다.

안내에 따르면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만들어 옹성(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시설)의 구실을 하도록 했다. 네 모서리에는 높고 넓은 각루터가 있다. 이 모서리와 문터 사이마다 치성(성벽 바깥에 덧붙여서 쌓은 벽)을 하나씩 만들어 방어력을 높였다. 성벽 바깥에는 너비 25m의 해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의 둘레를 감싼 도랑)를 만들어 물을 채웠다.  정북동토성 성벽 밖 해자 부근에서 당시의 우물도 발견됐다. 남쪽 성문과 동쪽 성문 사이에서 우물 4곳이 확인 된 것이다. 우물은 모두 둥근 강자갈로 만들었는데, 아마도 미호천에서 난 것이 아닐까? 우물 하나는 폭이 좁은 사각형이고 나머지 3개는 둥근 형태다.  

우물은 당초의 원형을 그대로 두고 윗부분을 보강하여 복원했다고 한다. 뚜껑은 새로 만든 것이다.  
해자도 눈에 띈다. 정북동토성의 해자는 두 차례 걸쳐 만들어졌다. 안내에 따르면 첫 번째 해자는 성벽의 바깥을 따라 돌아가면서 만들었다. 두 번째 해자는 안쪽과 바깥에 이중으로 만들었다. 

▲ 정북동토성 우물

특히 정북동토성의 해자는 바닥면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천천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는 미호천의 물을 끌어들여 성을 돌아나가게 한 것이라는 추측의 근거가 되고 있다.  

정북동토성의 주 출입문은 동문이었다. 동문 쪽 성벽은 원래 토성에 외피를 덧댄 구조인데 외피를 포함한 성벽의 너비가 10~11m라고 한다.  

남문 안쪽에는 서문 쪽으로 연결 된 U자형 배수로도 있었다고 한다. 어른 주먹 크기부터 어린아이 머리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돌이 쌓여 있는 돌무더기도 발견됐는데 전쟁 때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는 1997 ~2015년에 정북동토성의 성벽 및 동·서·남·북문 부근과 해자등에 대한 조사를 했다. 정북동토성은 사적 제415호로 지정됐다. 

▲ 정북동토성 북쪽

‘눈 세상’ 
발목까지 눈이 빠진다. 신발 속으로 들어간 눈이 녹아 발목과 발이 차갑다. 토성은 낮았지만 가파르고 눈이 쌓여 미끄러진다. 카메라를 어깨에 단단히 메고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서 올랐다. 

토성 둘레가 한 눈에 들어온다. 토성 위로 걷는다. 동문 터에서 남문 터로 가는 사이에 늘 푸른 나무 몇 그루 서 있다. 하얀 눈밭에 푸른 잎이 대조적이어서 아름답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토성이 만든 설국의 설경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작은 모형항공기를 하늘에 띄우고 조종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수염 시커멓게 난 아저씨들이다. 그들은 성 안에서 설국이 주는 신선함을 맘껏 즐기고 있다. 

토성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기기 때문에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해야 온전하게 한 바퀴를 다 돌아볼 수 있다. 토성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옛날 시골 언덕에서 비료부대에 앉아 눈썰매 타는 아이가 된 듯 신이 난다. 

▲ 전선 위의 참새

그렇게 한참동안 토성 위를 돌며 주변 풍경을 즐기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사위가 새파랗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지러웠다. 토성은 물론 토성 옆 오근장 들판도 온통 하얀 눈이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오류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눈밭에 수직으로 선 늘 푸른 나무의 초록을 바라보기도 하고,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활엽수 가지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눈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서 출력하는 뇌의 기능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러나 현기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토성 위에서 내려와 성안 눈밭에 엎드렸다. 시선을 낮춰 토성 위에 자라난 늘 푸른 나무를 바라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펼쳐진 눈밭을 뒹굴어 본 지가 얼마만인가! 엎드려도 하얀 세상, 누워도 하얀 세상, 하늘은 이미 희꾸무리한 구름이 펼쳐져 땅 위의 ‘눈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정북동토성 남쪽 성곽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자리를 떠나고, 작은 모형비행기를 날리던 어른들도 떠났다. 온통 하얀 ‘눈세상’, 정북동토성이 만든 설국에 오직 나 혼자였다. 묘한 설렘이 가슴을 부풀게 했다. 눈밭에 누워 있는 내가 하늘로 떠오를 것 같았다.  그때쯤 한 가족이 설국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아이 둘과 엄마 아빠 네 명이었다. 아빠는 플라스틱 눈썰매를 끌고 있었다. 늘 푸른 나무가 서 있는 하얀 언덕 위로 아이들이 올라간다. 눈 쌓인 언덕에 선 아이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나는 설국을 떠나고 있었다.  

▲ 정북동토성. 눈 쌓인 토성에서 아이들이 눈썰매를 탄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나무신문  imwood@imwood.co.kr
<저작권자 © 나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나무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댓글을 작성하시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우)07345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40, 1302호 (여의도동 라이프오피스텔 빌딩)  |  TEL : 02-825-0915  |  FAX : 02-825-091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범석
Copyright © 2007 - 2018 나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