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편한 집, ‘쉬운 건축’하고파
살기 편한 집, ‘쉬운 건축’하고파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8.01.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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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주)건축동인 대표 최홍종 건축사

[나무신문] 마포구 서강로 대로변에 위치한 (주)건축동인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갔을 때, 최홍종 대표는 지난해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수상한 ‘마당이 통하는 집’의 건축일지를 내밀었다. 건축물 하나가 시작될 때부터 준공될 때까지의 과정을 담아 책자로 만든 건축기록지였다. 건축주에게 한 권을 주니 무척 고마워했단다. 자신의 집이 지어지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의 흔적이 담겨있는 기록집을 손주에게 물려줄 것이라고도 했단다. 최 대표 자신에게도 소중한 자료로 보관되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준공 후에 꼭 건축일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 대표의 따뜻함과 건축,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의 면모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최홍종 대표의 건축 인생과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건축동인은 1996년 설립됐다. 20년이 넘었다. IMF 직전에 설립됐는데 시작부터 어렵지 않았나?
처음 시작할 땐 오히려 잘 나갔다. 7500만 원짜리 프로젝트를 맡아 직원 3명과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곧 IMF의 영향을 받았다. 사무실 축소가 불가피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동주택, 아파트 설계 관련 일들이 많이 들어왔다. 건설회사 출신이다 보니까 그 분야 인맥을 통해 많은 일감을 수주할 수 있었다. 내가 설계한 프로젝트만 수 천 건이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직원이 30여명으로 늘어났고 매출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7~8년간 아파트 설계에 주력했지만 내가 넘을 수 없는 산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형 건설회사 입김에 의해서 좌우되는 일들이 많았고, 2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도 경제적으로 실익이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아파트 설계를 그만뒀다. 좀 더 부가가치가 높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09년 총 2억불 규모의 여수엑스포 민자사업 숙박시설에 지분참여해 설계 진행하다가 그만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돈을 모두 날리고 오히려 큰 빚을 지고 말았다. 그래서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나는 다시 사업을 축소해서 일반 주택 분야의 설계를 시작했다. 2009년이 내 사업의 전환점이 됐다. 그 이후 부채 때문에 엄청 고생했지만, 이젠 거의 다 갚았다.

회사를 설립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건축설계를 전공, 홍익대 건축공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년간 설계사무소에 입사해 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건설회사로 이직을 했다. 그곳이 건영이었다. 열심히 일했고 인정도 받았지만 내가 설계한 작품이 번번이 시공 과정에서 묵살됐다. 앞서가는 설계와 트렌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시스템에서는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생각해서 7년간의 회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내 회사를 차렸다. 사무소를 차리고 났을 때 지도교수한테 연락이 와서 박사과정을 밟게 됐다. 회사 운영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나?
주로 단독주택 설계를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타운하우스나 공동주택 등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2건의 프로젝트를 완료했고, 성북동, 평창동 주택 2개와 상수동에 모 기업의 사옥을 진행하고 있다.

영업이나 홍보는 어떻게 하나?
특별히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소개된 작품을 보고 연락이 오거나 인맥, 기존 고객의 소개 등에 의해 수주한 프로젝트만 수행해도 회사가 운영된다. 지난해에는 7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8월 이후부터 수주를 하지 않았다. 일이 많아서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니 일이 없어서 걱정하는 일은 없다.

소장님이 지향하는 건축은?
‘쉬운 건축’을 하고자 한다. 사용자들이 살기 편한 집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생각해오고 있다. 건축가들이 대개 난해하게 디자인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디자인에 담으려 한다. 하지만 그 철학이 거주할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을 때 전동 열림 장치 대신 직접 나가서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고 하자. 문을 열기 위해 나가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며 날씨를 살필 수 있게 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철학을 일반 주택에 반영할 때 사는 사람들이 몹시 불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철학들은 배제돼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쉬운 건축’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외관보다 콤팩트하고 실용적인평면의 디자인이다. 30년간 이 일을 중점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유용한 평면을 설계하는 일 만큼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이런 평면을 완성한 후에 비가 오는 것을 볼 수 있는 중정을 넣는다든가 외부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폴딩도어를 설계하는 일 등 기술적인 것들을 반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배제한 채 처음부터 철학적인 콘셉트로 설계에 접근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 덧붙이면 ‘문화생활의 유전’이랄까? 어느 지역이건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문화적 특성이나 덕목이 있다. 그것을 먼저 파악하고, 쉬운 건축을 접목시키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건축이다.

남서울 단지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좀 특별한 주거단지였다. 정기모임, 동호회 모임 등등 많은 모임이 이뤄지는 마을이었다. ‘마당 통하는 집’의 설계 콘셉트엔 바로 이런 마을 사람들의 특징이 반영돼 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가든파티, 이를 위한 마당, 그들을 위한 특별한 동선이 설계에 녹아 있다.

소장님의 첫 작품이라고 내세울만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1999년, 위생도기 제조 회사의 대표가 용인에 3000여평 땅을 개발하겠다며 찾아왔다.  미국식 통나무 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실정과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조경작가 2명, 건축작가 10명 등 12명의 작가를 모집해서 택지를 18개로 분할해 작가들에게 나눠주고 설계 후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전시를 했다. ‘판교 신도시 주복동 모여살기 프로젝트’였다. 이것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내 이름과 회사가 알려지게 됐다. 또 이것을 계기로 부가가치 있는 설계에 주력하게 됐다. 

이후 익산에 ‘부농루’라는 건축물을 지었고, 월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사실상 이것이 내 이름을 대표할 수 있는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수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집이 완성됐을 때 남 주기 아깝다고 생각한 건축물이 ‘운중천 이웃집’이다. 이 작품으로 2016년에 주거부문 경기도 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그 지역(성남시 분당구 운중동)의 집들이 대부분 도로와 인접해 있어 프라이버시가 노출돼 있었다. 커튼도 열지 못하고 거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중정형 주택으로 지었다. 중정에 서서 바라보면 전체적인 비례와 채광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만약 건축주가 이 집을 판다면 내가 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맘에 드는 집이었다.

집을 지을 때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랄까, 설계에 가장 많이 반영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택은 마당과 도로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당이 가로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에 따라 오픈할 것인가, 닫을 것인가, 반만 열 것인가, 필로티를 이용해 밑으로 열 것인가 등등을 고려해야 한다. 내 작품 ‘마당이 통하는 집’은 필로티로 열었다. 이건 당연히 그래야 했다. 땅이 350평이기 때문에 마당이 70%를 차지하는데 중정형으로 폐쇄시키는 순간 마당 기능이 상실된다. 완전히 열기보다 필로티로 열면서 레벨을 반 정도 올려, 지나가면서 안이 보이지 않게 하고, 거실에서 마당의 70%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운중천 이웃집’은 대지 70평에 건폐율이 50%이기 때문에 70평의 50% 밖에 마당을 가질 수 없다. 상당히 작은 마당이다. 이것을 가로를 향해 열면 마당 또한 가로가 돼 버린다. 그래서 중정으로 철저하게 막음으로써 작지만 온전한 마당으로 만들었다. 마당은 프라이빗 오픈 스페이스다.

목조주택도 설계하나?
한옥을 지어봤다. ‘가외 한경원’이 한옥 첫 작품이다. 최근에는 횡성에 목조주택을 짓고 있다. 한옥과 목조주택을 지어 보니까 재미있었다. 그동안 목조주택에 대해 갖고 있던 불편한 생각들이 다 사라졌다. 앞으로 목조주택 설계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계획이다.

최근 건축시장의 흐름은?
최근에 단독주택 열풍이 불고 있고 공동주택도 테라스 하우스라든지 중정형 주택으로 지어지고 있다. 프라이빗 오픈 스페이스가 있는 집들이 당연히 상품 가치가 높다.

반면에 아파트는 단순히 똑같은 유닛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테라스가 첨가 되거나 주상복합의 편리함이 믹싱이 된 형태로 발전해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분간 건설시장의 활성화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올해의 목표 또는 계획이 있다면?
작년에 경기도 건축문화상 동상 받았는데 올해도 도전해서 금상이나 대상 받고 싶다. ㅎㅎ 좋은 디자인으로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집을 짓는 것. 이것이 늘 해마다 ‘올해의 목표’이고 계획이다.

중장기 사업계획은?
고향에 리조트 부지를 구입해 관광호텔 허가를 받아 놨다. 객실이 60실 정도 된다. 설계는 완성돼 있다. 한꺼번에 큰 돈 투자해서 짓기 보다는 분동으로 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건축사가 직접 설계해 짓고 운영하는 리조트를 완성하는 것’이 내 중장기 사업계획이다. 이 사업을 꼭 성공시켜 건축가로 살아가는 방법의 사례로써 롤모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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