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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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8.01.1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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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남 홍성군
▲ 해와 바람개비.

홍성은 올해 1000년 고을이 됐다. 고려시대인 1018년 3개 군과 11개 현을 거느리며 ‘홍주’로 시작된 홍성의 역사에 2018년, 새 천 년이 열린 것이다. 새 천 년이 열리는 홍성의 바다, 남당항을 찾아간다. 
 
‘남댕이에서 내려주세요’
홍성의 군내버스가 가는 길은 동맥경화 없는 핏줄이다. 버스가 가는 길 가 풍경도 수수해서  건강하다.  

홍성시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라 만석이 되더니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앉을 자리가 없다. 60대 아저씨 아줌마들은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고 70대는 80대 할아버지 할머니께 자리를 비워준다.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안이 오가는 인사말로 시끌벅적해진다. 

“나올 띠는 못 봤는 디 언제 나오셨대유?”
“아니 같은 차루 나왔을 껀 디 나두 못봤네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침 버스로 읍내 장이나 병원에 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다. 같은 노선을 오가는 버스이니 그동안 버스에서 나누던 안부는 얼마나 많았을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사말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래 요즘은 어뜨셔”
“장~ 그랴”
“그래유~우”

얼굴을 확인한 인사 말 뒤에 건강을 염려하는 인사말이 오가는 사이 버스는 서서히 홍성읍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는 마을마다 서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내려주고 태운다. 작은 시골마을 정류장에서 올라 탄 할머니는 지팡이 걸음도 불안해 보인다. 버스 안에서 그나마 어려 보이는 아줌마가 자리를 양보하려고하자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아줌마에게 괜찮다며 버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 구름 사이로 햇살이 퍼진다.

버스가 출발한다. 새로 버스에 오른 아줌마가 차 안에서 아는 얼굴을 오랜만에 만났는지 안부 인사가 길다. 

인사를 끝낸 아줌마는 어떤 할머니께 혼자 적적하신데 고양이 한 마리 드릴까 묻는다. 개 보다 깨끗하고 손도 덜 탄다며 친절하게 설명 했지만 할머니는 괜찮다고 하신다. 

김좌진 장군 생가가 있는 갈산면을 지난다. 갈산면을 지나면서부터 버스를 타는 손님 보다 내리는 손님이 많다. 

버스는 점점 비어간다. 할머니 한 분이 운전기사께 ‘남댕이’에서 내려달라신다. 알고보니 ‘남댕이’는 남당리를 말하는 거였다. 남당리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할머니를 따라 ‘남댕이’에서 내렸다.  

▲ 남당항 바다. 사진 오른쪽 아래가 안면도고 왼쪽 아래 굴뚝에서 연기 나는 곳이 보령화력발전소다.

반짝이는 남당리  
남당리 버스정류장은 예지마트 앞이었다. 옛날로 치면 구멍가게가 있는 차부 정도 됐겠다. 구멍가게도 하면서 손님들에게 차표도 팔고 오가는 동네사람들 사랑방이 되기도 하는 그런 장소였을 것이다. 그런 옛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버스정류장 예지마트 앞에 서 있었다. 

▲ 남당항 버스정류장 앞

예지마트 앞 지붕 낮은 식당 담장 앞에 굴껍데기를 담은 망이 쌓여있다. 그 앞으로 고양이가 햇살처럼 걸어가고 바람이 고양이털처럼 스쳐간다.  

▲ 남당항 식당 밖에 모인 고양이들

버스정류장에서 항구 쪽으로 걸었다. 보령수협 남당어촌계 건물을 지나 방파제로 들어서려는데 눈 앞 집 마당 빨랫줄에 빨래처럼 널려있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담장 없는 집 앞은 바로 갯벌이고 바다였다.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방파제 위에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다닌다. 구름 그림자가 바다에 떠다닌다.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내려와 바다 한 쪽을 밝게 비춘다. 

▲ 남당항 방파제 초입에서 본 풍경. 사진 왼쪽 건물에 식당이 즐비하다.
▲ 남당항 방파제 등대.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드러누운 안면도가 멀리 보인다. 안면도에 있는 낮은 산들이 만들어 낸 능선이 넘실대는 파도 같다. 안면도와 남당항 방파제 사이에 죽도가 있다. 

▲ 남당항 앞 죽도. 죽도 뒤에 안면도가 길게 드러누웠다.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에 도착했다. 남쪽으로 보령화력발전소가 보인다.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가 바람에 날린다. 

▲ 보령화력발전소가 보인다.

구름이 해를 가린다.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퍼진다. 구름에 난 구멍 사이로 새어나는 햇볕은 빛기둥이 되어 바다의 한 부분에 폭포처럼 쏟아진다. 바다가 하늘로 들리는 것처럼 반짝였다. 

등대 앞을 지난 작은 고깃배가 거센 바람과 넘실대는 파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먼 바다 일터로 질주한다. 뱃머리 바다가 포말로 부서진다. 일터로 나가는 배 위에는 안녕과 만선을 기대하는 깃대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 작은 배가 일터로 나간다.

남당리 겨울 맛, 그리고 노을이 빛나는 바다
항구로 돌아오는 길, 항구 앞에 있는 2층 건물에 식당 간판이 즐비하다. 순희네, 청주집, 마돈나, 소라, 또오리, 샘골, 금성호, 덕호네, 갯마을, 정연…어느 집으로 가야하나! 이름이 마음에 드는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마돈나’ 붉은색 간판에 적힌 ‘마돈나’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옛날에 해안경비를 맡았던 경찰들이 붙여준 이름이란다. 

아줌마가 요즘은 새조개가 물이 오르고 맛있다고 한다. 이름이 왜 새조개냐고 묻자 아저씨는 새조개를 까서 조갯살을 하늘로 들어올린다. 영락없는 새 모양이다. “오케이 새조개”

▲ 새조개. 새를 닮았다.

이곳에서 새조개는 샤브샤브로 먹는다고 한다. 육수를 내고 여러 채소를 넣은 육수가 끓는다. 초장을 찍어먹어야 맛있다는 아줌마의 친절한 말에 따라 새조개를 익혀 초장을 찍고 한 입 물었다. 아삭하며 씹히는 식감과 함께 달큰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햇살 잘 드는 2층 식당 창가에서 새조개샤브샤브를 먹는다. 평일 오후의 한가한 시간에도 나 말고 손님이 두 테이블이나 더 있었다. 그들 상에도 새조개샤브샤브가 올라있었고, 어떤 상에는 굴찜도 함께 한 가득 놓여있었다. 

▲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앉아 새조개샤브샤브를 먹는다.

시끌벅적한 식당, 오후의 햇살 가득한 식당에 혼자 앉아 새조개샤브샤브에 소주 한 잔 곁들였다. 맑은 잔에 담긴 투명한 소주가 햇살에 빛난다. 

술상 위에 쏟아지던 햇볕이 점점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노을이 좋겠다고 하자 아줌마는 여기 앉아서도 해 지는 거 다 볼 수 있다고 하신다. 

▲ 남당항 일몰. 안면도 뒤로 해가 진다.

그곳에는 노을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 않아도 아줌마는 내가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바람과 바다와 남당리 마을이 만들어내는 향기와 정취 속에 노을이 피어나고 있었다. 붉게 피어올랐다 어두워지는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검은 바다를 뒤로하고 걸었다. 빨랫줄에 물고기를 널어두었던 울타리 없는 바닷가 집 창문으로 형광등불빛이 따듯하게 비쳤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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