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풍
  • 나무신문
  • 승인 2017.12.06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 귀천.

세상의 끝 같은 11월의 뒷골목에서
먼지는 구석으로 몰린다. 구석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내몰린 먼지는 세상 사람들의 눈 밖에 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마음을 두지 않는다. 그곳에서 먼지는 가장 낮은 자세로 웅크려서 저 혼자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아파한다. 먼지는 그렇게 세상이 사라질 때까지 세상과 함께 할 것이다. 

11월의 마지막 주를 바라본다. 낙엽과 먼지가 뒤엉켜 바람에 쓸려가는, 어둠이 내리는 뒷골목 선술집에 앉아 있었다. 

파리한 형광등 불빛 비치는 소주잔 앞에서 아가리를 벌린 냄비에서 끓는 안주는 탐욕이다. 찬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한 움큼의 탐욕을 내 속으로 구겨 넣는다. 손돌의 옛이야기처럼 바람이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에 먼지 같은 마음이지만, 그것 하나 얹고 싶었다. 어둠이 몰린 골목길 구석으로 걸었다. 술 취한 신발은 바람과 맞서는 어떤 풍장이었다. 

목적 없이 걷는 발길은 인사동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간혹 술집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나 환하게 웃는 얼굴들이 보기 좋아 문을 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마주친 간판, ‘귀천’. 잊고 있었던 사람의 이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세상의 구석에 몰려 세상을 바라봐야 했던 시인, 천상병.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시인 천상병이라는 이름 보다 더 잘 알려진 이 시 구절을 외며 수락산 자락을 찾았다. 천상병 시인은 수락산 자락에서 살았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세워진 공원과 시를 새긴 나무판이 수락산 자락에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터. 지금은 빌라가 들어섰다. 당시에는 초가였다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터
1967년은 천상병 시인에게는 지옥 같은 해였다. 이른바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 6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옥고를 치렀다. 

‘동백림사건’은 1960년대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간첩단 사건으로, 사건과 연루된 200여 명을 조사 했고 사형을 포함한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도 있었지만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6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옥살이를 해야 했던 천상병 시인은 몸과 마음이 다 무너졌다.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 영양실조 때문에 서울 시립 정신병원 신세까지 져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서 나오게 됐고 목순옥 씨와 결혼을 하면서 둥지를 튼 곳이 수락산자락이었다. 

▲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터. 시인은 초가에서 살았다. 지금은 빌라가 들어섰다

목순옥 씨 조카의 말에 따르면 수락산자락에 처음 자리잡은 곳이 ‘백인(운)동’이었다. 그는 정확한 주소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백인동 혹은 백운동으로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1년을 채 살지 못하고 상계동 1117번지로 이사했다. 

당시 천상병 시인이 살던 상계동 1117번지는 지금 주소로 서울시 노원구 동일로 242나길 27이다. 지금은 빌라가 들어섰다.  

천상병 시인은 1980년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이사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그때 쓴 시 중에 ‘수락산변’이라는 시도 있다. 

목순옥 씨 조카는 천상병 시인이 상계동을 떠나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이사한 집이 있는데 그 주소는 기억하지 못했다. 천상병 시인은 그 집에서 잠깐 살았다. 그리고 장암동 379번지(나중에 384번지로 변경)로 이사 했다. 그곳이 천상병 시인이 살았던 지상의 마지막 집이었다. 

수락산 자락에 있는 천상병 시인의 흔적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로 돌아서 조금 가다보면 2층에 롯데리아 간판이 보인다. 그 건물을 끼고 우회전 후 직진하다보면 극동아파트 103동이 보인다. 그 앞 경서레디빌B동이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이 있었던 곳이다. 

시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표시 하나 없다. 골목길 빌라 앞에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큰 길로 나가 수락산 방향으로 걷는다. 도로가에 세워 놓은 시설물에 ‘수락문’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그곳부터 한신아파트 101동 전 ‘시인 천상병 공원’까지 가로등 기둥에 천상병 시인의 시를 새겨놓았다. 

▲ 시인 천상병 공원에 있는 타임캡슐.


천상병 시인의 상도 있다. 시인의 팔을 잡고 떼를 쓰는 아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는 또 다른 아이 그리고 천상병 시인 모두 환하게 웃는다. 고무신 벗겨진 시인의 발은 맨발이다. 벗겨진 고무신은 강아지가 가지고 논다. 그 옆에 타임캡슐이 있다. 2130년 1월29일 타임캡슐은 열린다. 과연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어 후세 사람들에게 시인의 마음을 전할까? 시 한 편 읽고 걷고 또 한 편 읽고 걷기를 반복하며 시인 천상병 공원에 도착했다. 시인의 시 ‘귀천’에서 이름을 딴 정자 귀천정이 있고 ‘귀천’을 새긴 시비와, ‘수락산변’을 새긴 시비도 보인다. 

▲ 시인 천상병 공원. 왼쪽부터 귀천정, 시비, 천상병 시인의 상, 갈월마을 표지석, 타임캡슐이 자리잡고 있다
▲ 시인 천상병 공원에 있는 천상병 시인 상. 아이들과 맑게 웃는 표정이다.

공원을 지나 수락산 등산로 방향으로 걷는다. 시인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길 오른쪽 옆에 계곡이 흐른다. 계곡을 건너지 말고 직진해서 올라가다보면 화장실이 나온다. 화장실 앞부터 천상병 시인의 시를 새긴 나무판이 등산로를 따라 놓여 있다. 천상병 시인의 시 ‘수락산변’을 적어 놓은 나무판도 보인다. 

▲ 시인 천상병 공원에서 수락산 쪽으로 올라간다. 화장실을 지나면 천상병 시인의 시를 나무판에 새긴 시판이 길 따라 놓여 있다

[ 풀이 무성하여, 전체가 들판이다. / 무슨 행렬인가 푸른 나무 밑으로 / 하늘의 구름과 질서 있게 호응한다. // 일요일의 인열(人列)은 만리장성이다. /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 막무가내로 가고 또 간다 // 기후는 안성마춤이고 땅에는 인구(人口) / 하늘에는 송이구름 ] 

▲ 귀천에 들러 차 한 잔 마신다.

귀천
수락산자락에 있는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사동에 있는 찻집 귀천이 생각났다. 

목순옥 씨가 살아 있을 때 몇 번 찾아가 모과차를 마셨다. 마지막으로 모과차를 마신 게 아마도 초겨울 즈음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따듯한 모과차가 담긴 찻잔을 들고 손을 녹이며 목순옥 씨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귀천에 들러 모과차를 시켰다. 찻집에는 찻집의 공기가 있다. 주전자 물 끓는 소리, 실내에 퍼지는 온기 머금은 수증기, 모과향, 커피향, 주문한 탁자 마다 올려놓은 잔에서 피어나는 차 향이 그윽하다.

목순옥 씨 조카는 목순옥 씨와 천상병 시인 부부를 이야기 했다. “시를 쓸 때는 책상에 앉아 원고지에 직접 쓰셨는데 한 편의 시를 막히지 않고 써 내려가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말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억지로 꾸미지 않은 말투로 말을 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이들도 좋아했어요. 천상병 시인은 성정이 맑았습니다.” 차 향 퍼지는 귀천에 앉아 천상병 시인을 생각 했다. 그가 살았다던 소풍 같은 세상, 어떤 누가 그 세상을 알 수 있을까?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Tag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