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에서
북한강에서
  • 나무신문
  • 승인 2017.11.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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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화천군
▲ 화천박물관 테라스에서 본 북한강과 화천읍내.

강원도 화천의 기억은 참 맑고 달콤하다. 그 기억은 순전히 화천의 맑은 공기, 맑은 물 때문이었다. 들이 쉬는 공기가 맑다 못해 달았다. 그 화천을 또 가게 됐다. 그냥 맑은 바람만 쐬는 것만으로도 화천은 괜찮다.  

▲ 붕어섬

붕어섬과 화천의 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춘천 행 버스를 탔다. 화천으로 가는 경유지 중 한 곳이 춘천이었다. 춘천버스터미널에는 예상대로 화천으로 가는 군인들이 많았다. 화천 행 버스를 타는 곳 앞에 군인들이 줄을 섰다. 나는 맨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화천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시장이 있었으나, 북한강으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산골 해가 일찍 기울고 있었다. 

▲ 붕어섬 단풍과 재미있는 글

붕어섬으로 가는 길, 강가에 연인이 키스하는 동상을 만들어 놓았다. 푸른 물줄기, 맑은 공기, 풍요로운 황금빛 햇살을 배경으로 동상의 연인이 나누는 키스가 따듯해 보였다. 그 뒤로 북한강에 떠 있는 붕어섬이 보였다. 

▲ 화천읍내 북한강에 키스 하는 동상이 있다. 뒤에 붕어섬이 보인다.

붕어섬은 춘천댐을 만들면서 섬이 된 곳이다. 섬이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붕어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놀이기구 운영 시간이 끝난 붕어섬은 한적했다. 나무에 남은 잎새 보다 떨어진 낙엽이 더 많은 붕어섬은 걷기 좋았다. 

물가에 난 큰 길로 걷다가 섬 가운데 길로 접어들었다. 레일바이크가 오가는 기찻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간혹 울긋불긋한 잎새를 간직한 나무들이 있었다. 

다른 곳 보다 가을이 일찍 찾아와 일찍 떠나고 있는 붕어섬에서 그 나무들은 겨울로 가는 길목의 쉼표였다. 

▲ 붕어섬 레일바이크 철로

햇볕이 수그러들면서 빛 속에 숨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쪽 달이었다. 달을 보며 걷는 데 앙상한 나뭇가지 끝과 달의 곡선이 닿는 순간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달을 보았다. 반 발짝만 움직여도 나뭇가지와 달은 떨어졌다. 그렇게 한 오 분 그 자리에 서서 달과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산 그림자가 닿지 않는 먼 곳은 아직 환했으나 그늘진 붕어섬은 해거름 어스름이었다. 돌아 나오는 길, 붕어섬을 오가는 다리 위에서 화천의 늙은 어부 두 명이 낚싯대를 강에 드리우고 있었다. 그물망에 물고기 한 마리 없었다. 물고기를 낚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들 옆에 서서 기다렸다. 어떻게 왔냐고 묻지도 않았고 낚시가 잘 되는 지도 묻지 않았다. 

▲ 붕어섬 입구 붕어 조형물

순간 물비린내가 일었다. ‘저녁강’이 제 몸을 부풀리는 때였다. 두 강태공도 낚싯대를 걷으며, 안주거리를 마련하지 못했으니 시장가서 한 잔 하자며 그 자리를 떴다. 그들 뒤를 따라 나도 시장으로 향했다. 

여관방에 짐을 부리고 나서 시장 순대국밥집에 앉았다. 국밥집 손녀가 이모와 놀고 있었고, 주인아줌마는 국밥을 상에 올려주고 내일 장사거리를 사러 장터로 나갔다. 이어 군인 두 명이 와서 국밥만 먹고 갔고, 여군 한 명이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국밥에 소주를 나누었다. 시장사람으로 보이는 오십대 초반 남자 두 명이 늦게 와서 술을 마시며 소주병이 늘어가는 내 식탁을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 붕어섬 나무가지 끝에 반달이 매달렸다.
▲ 북한강 키스하는 동상 위에 낮달이 떴다.

어둠이 내린 골목을 걸었다. 환한 곳 보다 어두운 곳을 먼저 찾았다. 화천시내버스터미널 옆 어두운 골목에 간신히 매달린 반짝이는 간판을 보았다. 노래도 하고 술도 먹는 가게였다. 기본 술상이 있었지만 기본을 바꾸기로 주인아줌마와 합의한 뒤에 노래를 먼저 불렀다. 술도 밤도 그렇게 깊어갔다. 

▲ 아침 북한강

화천 산소길을 걷다
맑은 공기 덕분인지,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서둘러 해장국을 먹고 강가로 나갔다. 이맘때 북한강의 아침은 산을 덮는 구름과 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전설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좀 더 일찍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도 산을 휘감은 구름과 물안개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 화천 산소길은 북한강 가에 나있다.

화천대교 위로 레미콘트럭과 덤프트럭이 마주보고 달리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강에서 피어나는 물안개는 다리까지 닿지 못했고, 산을 휘감은 구름은 점점 하늘로 증발하고 있었다. 

화천 산소길 중 화천생활체육공원에서 출발해서 그곳으로 돌아오는 8㎞ 코스를 걷기로 했다. 

▲ 화천생활체육공원 부근 은행나무 단풍

길은 강가에 났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인 살랑골 산기슭에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살랑골 산기슭을 지나 강을 건너는 물 위의 다리까지 4㎞ 구간 중 마지막 일부 구간은 물 위에 놓인 부교다. 

▲ 강을 건너는 물 위의 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를 건너 출발했던 화천생활체육공원으로 돌아간다.

물 위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강을 건너는 부교다. 강을 건너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그곳부터 길은 강가 둔치길이다. 강 건너 산기슭에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보인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가 지루해질 때쯤 둔치 한 쪽에 있는 미륵바위에 들렀다.   

미륵바위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다만 조선시대 후기에 이 부근에 절이 있었고, 미륵바위가 그 절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미륵바위는 모두 5개다. 소금을 싣고 북한강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미륵바위에 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미륵바위라고는 하지만 언뜻 보면 돌멩이다. 안내판에 무슨 형상을 하고 있다고 적혔지만 유추하기 어려웠다. 

한낮 햇살은 아직 따듯했다. 도착지점인 화천생활체육공원으로 가는 길, 옷이 땀에 젖는다. 그렇게 도착한 화천생활체육공원 옆에는 화천박물관이 있었다. 

위라리칠층석탑

▲ 위라리칠층석탑

화천박물관은 화천의 역사와 생활문화를 통시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1층 로비에서 옛 사람들이 살던 방을 재현한 것을 바닥유리를 통해 위에서 조감할 수 있었다. 다른 박물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화천의 역사를 한 눈에 보고 박물관 야외 테라스에 섰다. 박물관 앞에 있는 열차숙박시설 뒤로 북한강이 흐르고, 강 건너 화천읍내가 눈에 들어온다. 

한낮 쨍한 햇볕이 나른하다. 테라스에 앉아 잠깐 쉰다. 박물관에서 마련한 음악회가 테라스 옆 실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유리창을 열어 놓아 그 소리가 내가 앉아 있는 곳까지 다 들렸다. 연주의 선율이 햇볕 위에서 튕기고 있었다. 음악회가 끝나는 걸 보지 못하고 화천박물관 주변에 있는 위라리칠층석탑을 찾았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위라리칠층석탑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세워졌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게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탑의 지붕돌은 모두 원래의 것이다. 몸돌은 1층부터 3층까지만 원래의 것이며 나머지는 새로 만든 것이다. 

옛날에 탑이 있는 곳이 절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 절 이름도 알려진 것 없다. 

▲ 미륵바위

마을 한쪽 휑한 운동장에 탑은 서있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그 자리가 궁금했다. 나의 상상은 ‘아마도 그곳에 절이 있었던 건 아닐까?’에 머물기만 했다. 

탑이 있는 곳에서 내려와 다시 북한강을 건넌다. 햇볕도 게을러지는 오후 강가, 여전히 키스를 나누고 있는 동상의 연인이 나를 배웅해주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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