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찾아서
보물을 찾아서
  • 나무신문
  • 승인 2017.11.0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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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북 안동시
▲ 낙동강 건너편에 임청각이 보인다.

낙동강이 흐르는 경북 안동 시내에 직선거리 2㎞, 길 따라 걷는 거리 3㎞ 사이를 두고 7개의 보물이 있다. 보물을 찾아가는 길, 가을비가 내렸다. 비 맞은 나그네를 따듯하게 맞이해준 커피집 아주머니의 보물 같은 마음이 있어 그날 안동은 따듯했다.   

석빙고와 선성현객사, 그리고 월영대 비석
가을이 깊어가는 시간에 다시 찾은 안동은 차분하게 물든 단풍처럼 아늑했다. 이번에도 안동댐 아래 월영교가 여행의 출발지점이었다. 

▲ 안동호반나들이길에서 본 월영교

언제나 그렇듯, 떠나기 전 그 지역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왔을 때는 안동간고등어와 헛제사밥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안동국시다. 

소고기를 갈아 볶고, 호박을 채 썰어 볶고, 계란 지단을 채 썰어 고명으로 얹었다. 깨와 김가루가 그 위를 덮었다. 구수한 국물에 고소한 고명, 부드러운 면발이 합을 이룬 맛이 딱 안동국시다. 간은 싱겁지 않았으나 함께 나온 양념간장을 넣었다. 양념간장이 국수의 맛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 

▲ 안동국시
▲ 안동 중앙신시장에서 50여 년 째 내려오는 옥야식당 해장국

식당 앞 월영공원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잔디밭이며 길가에서 뒹구는 낙엽도 또 거기서 하나의 단풍으로 빛난다. 단풍잎을 밟으며 단풍 그늘 아래로 걸어서 월영교에 도착했다.    

월영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왼쪽에 숲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석빙고가 나왔다. 낙동강 가에 자리 잡은 첫 번째 보물이다. 

▲ 안동물문화관 전망대에서 본 풍경. 월영공원 단풍과 낙동강 건너편 물가의 단풍이 볼만하다.

석빙고는 보물 제305호다. 원래는 도산면 동부리 산기슭에 있었는데 안동댐을 만들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예안군 읍지인 ‘선성지’에 현감 이매신이 1737년(조선 영조13년)에 사재를 털어 석빙고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낙동강에서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 석빙고

석빙고를 지나면 두 번째 보물인 ‘월영대’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보인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달빛을 감상하던 암벽에 새긴 이름으로,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이다. 원래는 안동 월곡면 사월리의 소나무숲에 ‘금하재’라는 정자와 함께 있었다.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197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월영대’ 글자가 새겨진 비석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다. 

‘월영대’ 비석을 지나면 바로 선성현객사가 나온다. 객사는 관아건물이다. 선성현객사의 건립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1712년(조선 숙종 38년)에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1976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다. 낙동강 가 숲 속의 건물, 선성현객사가 세 번째 보물이다. 

▲ 낙동강 건너편에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이 보인다.

이 세 개의 보물은 모두 원래의 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는 게 같다. 석빙고의 원래자리는 현재 안동호의 북부 서쪽이다. 지금도 그 부근에는 휴양림이 들어설 정도로 숲이 좋다. 

월영대 비석의 원래 자리는 현재 안동호의 남부 동쪽이다. 안동댐을 만들면서 비석이 있던 고을이 사라졌다. 그 고을 이름이 월곡리였다. 달이 비치는 계곡이란 뜻이다. 고을 이름이 그러하니 옛 사람들이 정자를 세우고 ‘월영대’라는 비석으로 달빛을 맞이할만한 곳 아니었겠는가?  

석빙고를 지나 강가로 내려오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주변 풍경과 어울려있었던 세 개의 보물을 상상해 본다. 

▲ 선성현객사 건물.
▲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

커피 한 잔의 마음
강물을 따라, 강가에 놓인 데크길을 걸어 내려간다. 상류 안동댐 위 하늘이 요동친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스산한 바람에 숲이 일렁인다. 공중에 뿌옇게 보이는 건 아마도 흩뿌리는 빗방울일 것이다. 

먹구름을 밀고 오는 바람이 내 걸음보다 빨랐던 지, 어느새 내가 걷는 데크길 위 숲도 비에 젖는다. 젖은 숲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몸을 적신다. 하늘이 열린 곳을 지날 때는 흩날리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이해야 했다.

단풍잎 몇 잎이 빗방울을 머금고 떨어진다. 잎이 젖어 단풍 물든 색이 더 선명하다. 배낭에 우산은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배낭도 젖고, 카메라도 젖고, 나도 다 젖었다. 

▲ 법흥교를 건너면서 본 풍경. 정면에 보조댐, 왼쪽에 임청각과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이 있다.

낙동강도, 월영교도, 안동댐도, 숲도, 나도 모두 다 빗속에 있었다. 흩뿌리는 빗줄기는 강물 위 공중에 안개처럼 주둔했다.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늘 푸른 식물들과 단풍 물든 잎, 젖은 숲에서 노래하는 새, 빗방울 맺힌 거미줄에서 안식하는 거미들…

비바람을 몰고 다니는 사람처럼 걸어서 법흥교 앞에 도착했다. 커피집이 보였다. 온 몸이 비에 젖은, 장발에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를 맞이해 준 건 커피집 아주머니의 환환 웃음이었다. 

▲ 낙동강과 월영교 그리고 단풍

아주머니는 내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수건을 가져다주셨다. 자리를 잡고 집을 부리고 화장실에서 씻고 닦고 나오니 아주머니는 또 다른 수건을 내오신다. 이번에는 젖은 가방과 카메라를 걱정하신다. 커피 한 잔 주문하고 나서 정리를 마칠 무렵, 이번에는 부드러운 작은 수건을 주시면서, 카메라는 이 걸로 한 번 더 닦으라신다. 

천장 높은 통유리 커피집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창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린다. 비 밖에서 바라보는 비 오는 풍경이 낯설어지면서 새롭게 보인다. 아주머니는 내게 커 피 한 잔을 더 내주셨다. 커피 향이 깊어지는 사이 비가 그친다. 
      
임청각과 법흥사지칠층석탑 
법흥교를 건너 임청각으로 가는 길, 빗방울 머금은 백일홍이 생의 마지막처럼 간절하게 빛나고 있었다. 

▲ 임청각

임청각은 보물 제182호다. 임청각은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다. 그의 아들과 손자 등 삼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임청각은 1515년(조선 중종10년)에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건립했다. 원래는 99간 집이었는데, 중앙선 철도공사로 인해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규모가 됐다.  

보존상태가 양호해서 보물로 지정된 군자정은 임청각의 별당이다. ‘丁’자 모양의 누각형 건물이다. 건물 둘레에 툇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으며, 돌층계를 밟고 오르내리며 드나들게 했다.  

임청각을 지나면 국가민속문화재 제185호인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이 나온다. 안동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의 본채는 1704년(조선 숙종30년)에 좌승지 이후식이 지었다. 문이 잠겨서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담장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중 언덕 위 한옥 건물 앞에 코스모스가 핀 풍경이 눈에 띈다.  

▲ 임청각 사랑채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 앞에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이 있다. 국보 제16호다. 전탑이란 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은 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법흥사를 건립하면서 탑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는데, 법흥사의 모든 건물이 없어지고 이 탑만 남았다. 

▲ 임청각 군자정

탑은 7층으로 이루어졌고, 높이가 16.8m다. 바로 옆에 있는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의 담장과 건물이 작게 보일 정도로 큰 탑이다. 탑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다만 기단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아쉬움을 남긴다.  

법흥사지칠층전탑을 쉽게 떠나지 못했다. 탑 둘레를 돌며 탑을 바라보다가, 그 옆 한옥 담장을 따라 걷다가, 멀리서 다시 탑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오래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3㎞ 거리에 있는 7개의 보물도 나와 함께 어둠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걸어 밥 짓는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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