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각작품전 “나무와 만나다” 전후 한국 현대 목조각의 흐름
목조각작품전 “나무와 만나다” 전후 한국 현대 목조각의 흐름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7.10.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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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인 작가 참여, 블루메미술관서 11월 5일까지

[나무신문] 블루메미술관은 지난달 16일부터 11월5일까지 블루메미술관 전관에서 <나무와 만나다-전후 한국현대 목조각의 흐름>을 주제로 목조각 작품전을 열고 있다.

▲ 전시 포스터.

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이번 목조각 작품전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모란미술관, 대구대백프라자갤러리 등에서 협찬하고, 김봉구, 김정숙, 김종영, 김찬식, 나점수, 문신, 박희선, 백연수, 신년식, 심문섭, 윤석남, 오귀원, 이수홍, 이영림, 이재효, 정관모, 정현  등 총 17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살아있는 나무를 품고 지어진 미술관에서 나무조각을 이야기하다. 100여년 된 기존의 나무를 베지 않고 이를 감싸안 듯 지은 건축 안에서 블루메미술관은 나무와 ‘조각하다’라는 사람의 행위에 주목한다. 이곳의 나무는 사람의 시간을 넘어서 있는 그 존재자체보다도 이를 둘러싼 건축적 행위, 나무와의 공간과 시간을 다듬고 쌓아온 사람과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의미로 말을 건넨다. 나무와 인간의 삶이 맞닿아 있는 공간에서 이 전시는 시원에서부터 존재해온 하나의 물질적 재료로서의 나무와 이를 마주해온 인간으로서의 조각가를 돌아보고자 한다.

▲ 미술관 파사드.

돌, 금속과 달리 나무는 살아있는 자연의 재료이다. ‘깎는다(carving)’라는 조각의 본질적 행위에 가장 가까운 재료이면서 정으로 치면 정확히 떨어져 나가는 돌과 달리 휘고 갈라지는 물질 본연의 저항이 강한 재료이기도 하다. 그 자체의 생명력이 이를 대하는 조각가의 태도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나무와 만나고, 부딪치고, 나무를 기다리고, 몰아치고, 나무에 이끌리거나 제어하는 조각가와 나무와의 여러 관계방식들이 한국 조각사의 한 흐름을 만들어왔다. ‘조각(sculpture)’이라는 단어가 라틴어 어원에 나무조각가(sculptores)에서 비롯된 것처럼 목조는 ‘조각하다’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며 동시대 현장을 읽어내는데 유효하면서도 흥미로운 해석점을 보여준다. 

작품의 연대기적 나열을 지양하며 나무라는 재료에 대한 조각가의 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이 전시는 특정 시대나 인물 중심이기보다 굴복, 동화, 발견, 존중, 개입, 대결, 극복, 지배, 학대와 같은 동사형의 주제어로 서로 다른 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해석한다. 추상이라는 조형방법을 통해 재현적인 형상에 구속되어 온 조각재료의 물질성을 수면위로 떠올린 전후의 한국 현대 목조각들은 물질성에 대한 인식과 수용의 층위는 다르지만 물질적 재료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살펴봄으로써 조각가들의 다양한 언어를 읽어내고 정리해 볼 수 있다.

늘 나무를 주로 앞에 끌어다 놓는 조각가, 나무를 통해 새로운 표상을 구현해 간 작가 등 나무라는 재료를 만나게 된 한국현대조각가들의 계기와 성향은 각각이나 이 물질적 대상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 변화의 양상이 보인다. 밀어내고 튕겨내고 때로 강요하기도 하는 나무의 에너지가 작가를 이끌도록 허용하는 순응, 타협, 대화의 태도를 지닌 조각가들이 있는가 하면, 조형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느리고 온화한 대상 또는 원시적 대결, 도전할만한 통제의 대상으로 나무를 정의하는 작가들이 있다. 늘 인간의 삶에 가까이 있던 나무에 나를 겹쳐놓는 이입의 대상으로서 나무를 바라보며 관계 맺는 작가들도 있다.

▲ 故 박희선 작가의 작업실.

나무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가 유사하더라도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쓰여지던 1960년대 나무와 만나고 있던 이와 세기의 변화를 맞던 2000년대 나무를 다루고 있는 작가의 대상에 대한 관점은 다를 것이다. 이처럼 이 전시는 목조의 흐름을 정리하며 아직 많은 부분 연구되지 않고 주로 회화의 흐름에 기대어 있는 한국 현대조각사를 돌아보고자 한다. 나무라는 물질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중심으로 20세기와 동시대 한국의 조각을 살펴보는 것은 탈장르와 탈매체가 가장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각분야에 다시금 환원주의적 관점을 도입하고자 함이 아니라, 확장의 단초이자 여전히 그 중심에 서있는 조각가를 재주목해 보고자 함이다.

▲ 나무와 만나다 전시전경_이재효와 신년식 작.

목조는 조각가에게 열린 방식을 요구한다. 애써 완벽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가능하지 않게 하는 나무라는 살아있는 재료를 만나는 조각가들의 사유와 태도 그리고 그 행위 안에서 우리는 물질을 초월한 개념주의, 물질 그대로에 모든 것을 내맡기거나 그 안에서 적절히 인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등 다른 매체를 다루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다양한 모습 또한 비추어볼 수 있다. 사람냄새를 찾기 힘든 요즘 현대미술에서 조각가, 사람의 흔적을 이야기하는 이 전시에서 나무는 수직적 성장으로 가장 인간과 닮아있는 조각재료로 그 앞에 마주한 조각가의 흔들림과 고집, 소통의 언어들을 섬세하고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 故김봉구, 무제5, 1987,티크, 135x50x35㎝, 유족소장.

주요 작품 이미지

● 김종영, 작품 66-1, 1966, 느티나무, 58x14x11c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런 따위의 생각은 갖고 싶지 않다. 기술과 작품의 형식은 예술을 위해서 사용되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능한 단순한 것이 좋다.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
- 김종영 

● 문신, 무제, 1993, 흑단, 127x33x18cm, 개인소장

“가장 강한 목재인 흑단과 가장 강한 철인 스테인레스에 내가 집착하게 되는 것은 여간해서 극복할 수 없는 그 강한 물체에 대한 정복욕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나는 강한 상대와 씨름하며 철두철미하게 이겨내려 하지요”
- 문신

●이수홍, 2006, Inside/Outside/Interside, 느티나무, 40x44x51cm

“그의 작품들은 천연적인 것과 가공적인 것의 대비 혹은 실제와 모조(simulacrum)의 대비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선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김정숙, 토르소, 1962, 나무, 74.5x32x2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의 대부분의 방법이 쪼아서 형태를 태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여성으로서의 모체의식이 극히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법으로 변주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잉태된 것이란 표현이 걸맞아 보인다. 하나의 정서가 어떤 물질 속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서 말이다.” 
- 오광수 ‘생명주의와 자유의지-김정숙 예술을 돌아보며’ (1991년)

●정현, 서있는 사람, 2015,침목, 320x75x25cm

“침목은 그 자체가 작품이며 자갈에 찢기고 위에서는 기차가 짓누르는 가운데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수십년을 버텨온 침목 자체가 이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재료가 가진 자기 이야기,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존중하는 쪽으로 작업한다. 
재료를 지배하는 것에서 작업이 나왔을 때 거기에는 나만 보이는 것 같았다.”
- 정현

●심문섭, 목신(木神), 나무, 170x92x62cm

“나무는 다른 소재와 비교해서 인간과 가깝다. 즉 이쪽의 참여를 잘 받아들인다.
나무는 그 자신이 혼자 걸어가고 있는 부분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로 끌어당기려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내 작업에 잘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무를 보고 상상하는 것으로 나는 일을 시작한다. 나무가 가장 나무처럼 될 때와 나무가 나무에서 벗어날 때 작업에 힘이 넘친다. 나의 작품은 나무가 본래 있었던 상태로부터 새롭게 존재하는 상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인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인간과 저항없이 섞일 수 있는 접점에 존재하는 구조물과도 같다.” - 심문섭

●나점수, 식물적 사유, 2016, 나무에 채색, 30x30x350cm 

●박희선, 한반도, 1996, 육송, 95x16x75cm, 유족소장

“그는 작품 속에 거의 일관되게 한국의 역사를 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사건이나 사실의 증언, 기록, 복원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한국의 현실을 추상화된 형태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집중적으로 파고든 주제는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이다.” 
- 최태만 평론중에서

● 윤석남, 소리없이, 2000-2004, 나무에 아크릴, 가변설치 (높이127cm)

● 백연수,생수통, 2012,소나무, 크레파스,33×30×20cm 

“한동안 나무를 다루는데 있어서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나무라는 재료가 나의 모든 사고를 구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무를 다루는 나의 모든 행위가 수동적이고 버릇처럼 느껴젔고 작업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쓰지 않고 두었던 작은 소나무 조각으로 작업을 다시 하면서 나무라는 재료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이 단순한 버릇이나 구속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 백연수

● 오귀원, 그 안에 별, 2005, mixed media, 118.2x58.2cm

“공사장에서 버려진 몰딩 파편들, 반복되어 사용되며 생긴 그 흠들을 표시해가며 숨겨진, 잊혀진, 희미해 져가는 그러나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존재를 발굴해낸다는 느낌을 받는다. 
흠집에 밝은 색이나 금박을 입히며 그것들을 빛나게 만든다. 나에게 흠집이나 닳아져 가는 것은 또한 모든 세상을 살아숨쉬게 만드는 에너지이기도 하다.”
- 오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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