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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에 살어리랏다!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완도군 청산면 나무신문l승인2017.09.13l수정2017.09.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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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청산도 슬로길 5코스와 4코스를 이어 걸으며

▲ 청계리 중촌

청계리 중촌 마을과 장기미해변
완도항에서 첫배를 타고 청산도 도청항에 도착했다. 청산도의 아침 햇살은 맑고 투명했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청산도 주요 도로와 마을을 오가는 버스가 항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에 걷기로 한 청산도 슬로길 5코스가 시작되는 마을인 청계리 입구에도 버스가 선다고 버스기사님이 얘기했는데,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항구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 청산도 도청항 여객선터미널 뒤 건어물가게 골목

여객선터미널 뒤에 건어물을 파는 골목이 있었다. 골목이라고 하지만 상점이 세 집 밖에 없었다. 청산도 바다에서 난 김, 미역, 꼬시래기 같은 해초류 말린 것과 청산도에서 채취해서 말린 표고버섯, 도라지, 고사리 등이 구색을 맞추고 있었다. 가게 아줌마께 청산도 구경하고 가는 길에 사러오겠다고 하고 택시를 불렀다. 

출발 지점인 청계리 중촌 들샘 앞에 도착했다. 구경 잘하시라는 택시기사님의 인사말이 순박한 시골마을을 닮았다. 인사 한 마디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 청계리 중촌 들샘

청계리 중촌 들샘은 마을 공동우물이다. 사람 사는 데 꼭 필요한 물, 우물은 마을의 역사와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돌담과 낮은 지붕이 초록의 숲, 초록의 들판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꽃도 핀 자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성기게 쌓은 돌담 틈에서 피어난 꽃들이 맑다. 

우물을 지나면 골목이 갈라진다. 오른쪽 골목으로 올라간다. 얼마정도 걷다가 돌아보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포장된 도로지만 주변 자연이 싱그러워 걷는 맛이 좋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장기미해변 방향으로 간다. 

돌을 쌓아 만든 논 옆에 작은 안내판이 보인다. ‘청산도 구들장논 통수로’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구들장 놓듯 돌을 쌓아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논을 만든 것이 ‘청산도 구들장논’이다. 구들장논에 물을 가두거나 빼기 위해 통수로를 만든 것이다. 

▲ 장기미해변으로 가는 길

길에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원두막을 지나 도착한 곳이 장기미해변이다. 크고 작은 둥근 돌이 해변에 가득했다. 돌들이 공룡 알 같다고 해서 ‘공룡알해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해변의 돌 사이로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갈 때 마다 소리가 공명한다. 바닷가 절벽에 부딪힌 그 소리는 다시 한 번 공중에서 울렸다 바다로 내려앉는다. 여느 몽돌해변의 그 소리와 다른 느낌이었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부서진 포말이 안개 같았다. 산란하는 햇볕도 그 풍경을 물들였다. 나는 오전 9시28분에 그 해변에 앉아 있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바로 그날 그때 오전 9시28분이었다.

▲ 장기미해변

범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최고의 풍경
장기미해변에서 범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산길이다. 바다에서 출발하는 셈이니, 해발 고도 0m에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범바위가 해발 200m가 넘는 곳에 있으니 그 수치를 고스란히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나무 그늘도 없다. 보폭을 줄이고 호흡을 유지하며 천천히 걷는다. 더위에 구슬땀이 흐른다. 이른 오전 바다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만이 친절하다. 

▲ 장기미해변에서 범바위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전망바위. 장기미해변이 작게 보인다.

그 길 중간에 이른바 ‘전망바위’가 있었다. 절벽 위에 바다 쪽으로 머리를 내민 너럭바위다. 길옆에 있는 그 바위 위에 섰다. 공명하는 파도소리와 안개가 된 포말, 산란하는 햇볕을 느끼며 앉아있던 장기미해변이 작게 보인다. 바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남은 길을 걸었다. 산길은 범바위 300m 전에 있는 주차장에서 찻길과 만난다.    

범바위는 해발 200m가 넘는 산 위에 있는 커다란 바위다. 웅크린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범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장기미해변에서 범바위로 올라가는 산길에서 돌아본 풍경. 저 아래 바다에서부터 올라왔다.
▲ 범바위와 나침반들. 나침반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범바위 앞에는 수십 개의 작은 나침반을 올려놓은 설치물이 있다. 나침반 자침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르다. 범바위를 이루고 있는 광물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10시가 넘은 시간,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폭염경보가 울렸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 폭염경보였을 것이다. 

▲ 사진 오른쪽에 범바위 전망대와 범바위가 있다. 망망한 바다가 좋다.

범바위 전망대에 매점이 없었으면, 폭염경보의 날씨 속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밀고나가야 했다. 범바위 전망대의 에어컨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몸 속에 가득한 열기를 식혔다.

청산도 행 첫 배를 타기 위해 새벽 5시에 아침을 먹었더니 11시도 안 됐는데 배가 고팠다. 봉지라면이 보여서 매점 아주머니께 라면을 끓여주기도 하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아주머니는 라면에 표고버섯과 만두 계란을 넣어서 한 냄비 끓여냈다. 표고버섯 찌개에 라면사리를 넣었다고 해도 되고, 만두전골에 라면사리를 넣었다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당신이 드시려고 싸온 도시락밥을 내놓으시면서 먹을 만큼 덜라신다. 거기에 전라도 특유의 김치까지…

▲ 범바위

아주머니는 아마도 온몸이 땀에 쩐 내 모습이 안쓰러웠나 보다. 매점을 들른 다른 사람들은 땀 한 방울 없이 뽀송뽀송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차를 타고 범바위 주차장까지 올라와서 300m만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식후경’, 참 좋은 말이다. 정과 인심이 듬뿍 담긴 점심에 눈이 맑아지고 밝아졌다. 전망대로 올라갔다.

범바위 뒤로 망망한 바다가 펼쳐졌다. 범바위 아래 바닷가 마을은 청산도 슬로길 5코스와 4코스가 만나는 권덕리다. 저 멀리 아스라하게 보이는 마을은 읍리고 그 바로 뒤에 방파제는 아마도 아침에 도착한 도청항일 것이다. 그 먼 풍경이 아지랑이에 흔들려 어른거렸다. 

▲ 범바위 전망대에서 본 권덕리.

먼 바다, 먼 마을, 눈 앞의 바위, 눈 아래 바닷가 마을, 어느 것 하나 이 풍경에 이물은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 하나 되는 풍경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서 마음으로 옮겨가 감동이 된다. 

권덕리의 시간, 그리고 낭길
범바위 바로 아래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서 산을 내려가면 권덕리가 나온다. 

기상청이 알려준 최고 온도는 33.4도였다. 권덕리 버스정류장 앞 나무그늘에 앉아 짐을 다 내려놓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 한 잔에 더위를 식혀본다. 

▲ 권덕리 돌담과 우물

마을을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내리 쬐는 땡볕 줄기마저 ‘짜작’하며 갈라질 것 같았다. 권덕리의 오후 2시가 그렇게 지났다. 미지근한 물 한 모금으로 더위를 식혀보지만, 바람마저 뜨거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권덕리 백구. 백구 뒤로 범바위와 범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폭염이 편해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땡볕의 정적 속에 가끔 들리는 새소리가 정적을 더 깊게 한다. 깊어지는 정적이 마음으로 들어와 침잠한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아늑해지고, 넉넉해진다. 누구에게라도 그 마음을 나누어주고 싶었다. 

바람에 실린 뜨거운 기운이 사그라질 때 쯤 마을 길에 사람이 보인다. 인사를 하고 나무 그늘 옆 자리를 내주었다. 권덕리 청년회장이었다. 인사가 끝나고 이어진 첫 마디가 날씨 얘기였다. 내가 오늘 이곳 최고 온도가 33도가 넘었다고 하니까, 청년회장님이 우리 집 벽에 붙은 온도계는 35도가 넘었다고 일러준다. 

그렇게 앉아 우리는 마을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사이 시간은 흘러 4시가 넘었다. 날선 햇살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권덕리는 청산도 슬로길 5코스와 4코스가 만나는 마을이다. 4코스로 접어들었다. 4코스의 이름은 낭길이다. 벼랑길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바닷가 절벽 위에 난 오솔길이다. 바다가 보이는 쪽에 나무가 자라서 절벽 같다는 생각이 안 들지만 낭떠러지가 있는 길이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걷는다. 간혹 위험한 구간도 있는데, 그런 곳에는 굵은 밧줄로 난간을 만들었다. 

▲ 낭길은 낭떠러지길을 말하는 것이다. 권덕리와 구장리 사이를 잇는 길로,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다.

낭길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다. 권덕리와 구장리를 잇는 낭길은 옛날에 마을 사람들이 나뭇짐을 지고 오가던 길이며, 바닷일을 하러 다니던 길이다. 대처로 나가기 위해 항구로 가려는 사람들도 그 길로 다녔다.

시야가 열리는 곳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망망한 바다를 마음껏 바라본다. 그렇게 낭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청산도 슬로길 4코스와 3코스가 만나는 구장리다. 오늘 걷는 코스의 도착지점이다. 

▲ 낭길에서 바라본 권덕리.
▲ 낭길을 걷는다.
▲ 낭길이 끝나는 곳에 구장리 바다가 있다.

구장리 매점에서 맥주 한 잔하며 마을을 돌아봤다. 작은 갯마을, 녹슨 닻이 갯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아이들 자전거를 비추는 순해진 햇볕에 그림자가 길어진다.

구장리에서 도청항으로 가는 버스는 없다.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린다는데, 막배를 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 구장리 풍경.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막배 표를 끊고 아침에 들렀던 건어물 파는 골목으로 갔다. 아주머니들이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벌써 장을 걷으면 어떻게 하냐며 인사를 했더니 아주머니들이 웃으며 반긴다. 막배를 타고 완도로 나가는 바다 위에서 노을이 빛나고 있었다.  

▲ 구장리 갯가.

여행정보
전남 완도 청산면, 청산도 슬로길 중 5코스와 4코스를 이어서 걷는다. 5코스 5.5km, 4코스 1.8km, 총 7.3km 거리다. 5코스는 2시간30분 정도, 4코스는 1시간 정도, 총 3시간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5코스 청계리 중촌 들샘에서 출발해서, 장기미해변, 범바위를 지나 5코스와 4코스가 만나는 권덕리에 도착한다. 권덕리에서 4코스 낭길로 접어들어 4코스와 3코스가 만나는 구장리에 도착하면 끝이다. 
숙소와 식당, 가게는 완도항 주변에도 있고, 청산도 도청항 주변에도 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청산도 도청항에 도착한다. 청산도 슬로길을 걷고 청산도에 더 머물려면 도청항 주변 숙소 또는 권덕리와 구장리 민박을 이용하면 된다. 청산도 주요 도로와 마을을 오가는 버스가 있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청산도 택시 : 061-552-8519. 개인택시(010-6552-8747). 청산택시(010-9569-5522. 011-608-1502)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나무신문  imwood@im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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