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물 위 하늘에는 초생달이 뜨고
저녁 강물 위 하늘에는 초생달이 뜨고
  • 나무신문
  • 승인 2017.08.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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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영동군

충북 영동군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을 걸으며

▲ 강선대로 가는 구름다리.

충북 영동군 송호국민관광지 주변 양산팔경으로 알려진 이름 난 몇 곳을 지나는 길이 올 봄에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곳을 다녀왔다. 

송호국민관광지 송호리 송림에서 출발해서 여의정, 봉곡교, 강선대, 함벽정, 봉양정, 수두교,  금강 둔치길을 지나 다시 송호국민관광지 송호리 송림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코스 6㎞에 붙은 이름은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이다. 

▲ 강가 산기슭에 난 길로 걷는다.

올갱이국과 와인
오랜만에 충북 영동군을 찾았다. 영동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 바로 옆에 있는 시내버스 종점을 찾아갔다. 송호국민관광지로 가는 시내버스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송호국민관광지를 지나는 버스는 하루 8회 운행 하는데, 20분 뒤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었다. 배가 고팠다. 20분 안에 점심 먹을 식당이 있는 영동읍내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영동읍내를 지나는 아무 버스나 타고 읍내에 내려서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고 송호국민관광지까지 가기로 했다.  

영동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올갱이국이다. 영동에서 올갱이국으로 유명한 식당은 영동읍내와 황간면에 있다. 읍내에 있는 여러 식당 가운데 한 곳을 찾아갔다. 옛 그 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올갱이국을 팔고 있었다. 

▲ 올갱이국.

올갱이가 몸에 좋다는 홍보 포스터가 식당 벽에 붙어있었지만 그 내용을 읽을 필요는 없었다. 올갱이국을 먹어보면 몸이 먼저 안다. 영동 올갱이국으로 마음이 뿌듯해 졌다.    

송호국민관광지로 가는 택시 안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비는 그렇게 오락가락했지만 곧 파란 하늘과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여행자를 반겼다. 

양산팔경 금강둘레길의 시작지점은 송호국민관광지 매표소다. 2000원을 내고 들어가니 와인체험장이 나를 반긴다. 영동의 특산품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맛보고 살 수도 있는 곳이다. 

▲ 와인체험관.

와인에 대한 역사와 영동의 와인에 대해 알아보고 와인을 맛봤다. 와인 시음은 무료다. ‘컨츄리 산머루 와인 드라이’, ‘컨츄리 캠벨와인 스위트’ 등 두 개의 와인을 맛봤다. ‘컨츄리’라는 이름의 포도농장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 두 종류를 시음 한 것이다. ‘컨츄리 캠벨와인 스위트’가 내 입에 맞았다.  
  

▲ 와인체험관. 와인 시음도 할 수 있고, 와인도 살 수 있다.
▲ 와인체험관에서 와인을 시음한다.

송호리 송림 지나 봉곡교에서 본 풍경
와인 향이 코끝에서 떠나지 않는다. 숨 쉴 때마다 향긋한 향이 느껴진다. 그렇게 소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이곳 소나무숲은 약 300~400년 전에 만들어 졌다. 그 옛날 금강 둔치에 소나무를 심어 숲을 가꾼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신라가요 양산가의 배경무대이기도 하다.  

▲ 송호리 송림.
▲ 송호리 송림 소나무.

655년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해서 신라를 공격하자 신라는 당나라와 군사 공조를 맺는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공격했고, 고구려의 주력부대가 당나라와 싸우는 사이 신라는 백제와의 결전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김춘추는 백제의 수도 사비(지금의 부여)성 함락을 계획하고 그의 사위 김흠운을 낭당대감으로 내세워 군사를 이끌게 했다. 

김흠운이 이끄는 신라군은 국경을 넘어 백제 땅 양산 금강 가에 진을 쳤다. 백제는 신라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양산 금강 가에 신라군이 군영을 친 것을 확인한 백제군은 그날 밤에 선제공격을 했다. 기습공격을 받은 신라군은 완패 했고 김흠운은 전사했다. 

▲ 송호국민관광지 앞 금강. 사진 왼쪽이 송호리 송림이고 사진 오른쪽 기와지붕이 강선대 정자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 사람들은 김흠운의 죽음 앞에 애도의 시를 지어 바쳤다. 그게 바로 신라가요 <양산가>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양산가>의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충북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금강 일대다. 

전쟁의 그날을 말해주는 것은 비석 하나, 그날 그 자리에 이제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랐다. 강가 소나무숲을 걸어서 금강을 건너는 봉곡교에 도착했다. 다리 위에서 금강과 주변 풍경을 한 눈에 넣는다. 강 왼쪽이 송호리 송림이고 강 오른쪽에는 선녀들이 내려와서 놀았다던 강선대가 있다.  
 

▲ 금강 위 하늘에 노을이 피어나고 그 위에 초생달이 떴다.

금강 위 하늘에 피어나는 노을과 초생달 
강선대 위 정자에 앉아서 쉰다.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강에서 솟은 절벽에 소나무가 제 멋대로 자랐다. 비틀어진 굵은 줄기가 꿈틀거리는 용 같다. 바람에 땀을 말리고 본격적으로 숲길로 접어들었다. 

▲ 함벽정.

강선대에서 1.4㎞ 정도 걸으면 함벽정이 나온다. 강선대도 함벽정도 양산팔경에 속하는 곳이다. 옛날 사람들이 함벽정을 지어놓고 그곳에 앉아 풍경을 즐기고 놀았다고 한다. 옛 사람들이 놀던 그곳 앞에서 강물을 바라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산천에 사람만 모습을 바꾸어 그곳에 머무는 것이다. 

함벽정 다음에 봉양정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이명주라는 사람이 이곳 풍경이 좋아 열세 명의 친구들과 정자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 있는 건물은 1967년에 지은 것이다. 

▲ 봉양정.

강가 산기슭에 데크로 길을 만들었다. 숲이 열리고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쉼터를 마련했다. 금강과 비봉산, 그 사이에 사람 사는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이 푸근해 보인다. 흰 구름이 낮게 떠서 먼 산 꼭대기 위 하늘에 드리웠다.  

멀리 낮은 다리가 보인다. 다리 아래 사람들이 작게 보인다. 낚시도 하고, 올갱이도 따는 모양이다. 반짝이는 강물에 사람 모습이 그림자처럼 보인다. 

숲길을 벗어나니 숲에서 보았던 낮은 다리가 나왔다. 다리 이름이 수두교였다. 낮은 다리는 위압적이지 않아서, 마치 사람들에게 ‘어서 나를 밟고 이 강물을 건너세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는 나에게 보내는 갈채처럼 늦은 오후의 햇살이 물결 마다 부서져 반짝였다. 

▲ 수두교.
▲ 금강 둔치길.

수두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돌아 금강 둔치길로 접어든다. 해가 기울어지는 동안 나무 없는, 풀이 무성한 오솔길을 걸었다. 해가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고 있어서 나는 그림자처럼 길어졌다. 느린 발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출발했던 처음 그 자리, 송호국민관광지 송호리 송림이었다. 

해는 아직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그가 조금씩 낮은 곳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막걸리를 마셨다. 

▲ 금강 위 하늘에 노을이 피어났다. 노을 피어나는 하늘에 초생달이 떴다.

막걸리는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좀 더 유쾌하게 빠르게 하는 주술을 알고 있어서 나는 막걸리의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이다. 

막걸리의 주술이 막 시작될 무렵 나는 그가 모르게 그의 곁을 떠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봉곡교)위까지 유쾌하게 빠르게 걸었다. 드디어 막걸리의 주술에 걸린 해와 달과 별들이 그들만의 질서로 새로운 어둠과 빛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 노을빛 비친 구름이 금강 위 하늘에 머물렀다.

감은 하늘에 펼쳐지는 환희가 스스로 축전의 흥을 감출 수 있었던 건, 그 마지막 장의 이야기를 거기에 남겨둔 채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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