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냇가에서
그 여름 냇가에서
  • 나무신문
  • 승인 2017.07.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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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천렵
▲ 여름 냇가.

어항에 된장 발라 물살에 쓸려가지 않게 돌로 받쳐 놓고 반도에 매달려 개울을 가로지르고 물속에서 뒹굴며 놀던 여름이 있었다. 잡은 물고기와 이것저것을 막 넣고 끓여 먹던 이른바 ‘막무가내식 천렵잡탕’의 맛이 그 여름 냇가 물비린내와 함께 생각난다.  

사철 놀이터였던 개울
나무막대기 하나, 돌멩이 하나로도 세상 다 가진 것 같이 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동네 개울은 사철 놀이터였다. 지금의 ‘놀이동산’ ‘워터파크’ 보다 더 재미있고 스릴 넘쳤다. 

겨울이면 꽁꽁 언 개울에서 썰매를 지치고 팽이를 치고 연을 날렸다. 썰매 날은 굵은 철사와 낡은 스케이트 날 두 종류였다. 굵은 철사를 단 썰매는 속도는 느렸지만 회전성이 좋았다. 얼음을 지치던 썰매송곳(나무막대기 끝에 못을 박아서 얼음을 찍어 썰매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던 기구) 중 한 쪽 송곳으로 얼음을 찍어서 축을 만들고 다른 한 쪽 송곳으로 얼음을 지치면 원하는 쪽으로 금세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360도, 혹은 그 이상의 제자리 회전도 가능했다. 스케이트 날을 단 썰매는 직진 속도는 뛰어났지만 회전성이 부족했다. 

꽁꽁 언 개울이 풀리고 돼지풀이 자라고 뜨거운 여름이 오면 썰매를 지치던 개울은 물놀이장으로 변했다. 

땅 짚고 헤엄을 치든, 개헤엄을 치든, 물에 머리를 넣고 잠수를 하든, 그냥 물에서 뒹굴면서 놀든, 물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었다. 

소년이 되면서 형들이나 삼촌 고모들과 이른바 천렵을 다녔다. 천렵 가는 길, 미루나무 그림자가 송곳처럼 박히던 한 여름 오후 두 시 신작로에서도 신났다. 마을 앞 개울도 좋았고 완행버스를 타고 가야했던 먼 거리 개울도 좋았다.

어항에 된장 발라 몫 좋은 곳에 놓고 냇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돌로 고정시켰다. 어항 놓은 곳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반도를 들고 냇물 아래위로 뛰어다니며 고기를 잡았다. 한쪽에서는 물고기를 몰고 반대편에서는 반도를 들고 이리 쑤시고 저리 쑤시며 냇물을 누볐다. 십중팔구는 물풀과 돌멩이가 전부였지만 간혹 들어올린 반도 안에는 피라미 꺾지 빠가사리 같은 것이 들어있기도 했다. 우리는 엄청난 보물이라도 찾아낸 양 소리를 질렀고 신이 났다. 

여름은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났다. 조금 더 커서는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넣고 라면도 끓여 먹고 국수도 삶아 먹고 잡탕찌개도 끓여먹었다. 맛 보다는 그런 날들이 좋았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냇가의 여름은 ‘옛날에 그랬지’라는 추억 속에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친구가 외국에 몇 년 다녀온다고 해서 환송의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는데, 그 환송회를 열었던 곳이 충북 괴강이었다.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어항을 놓고 반도를 들고 냇가를 뛰어다녔다. 옛날에는 없었던 낚시도구도 준비했지만 잠깐 손에 쥔 게 다다. 그냥 옛날처럼 반도를 들고 냇물을 오르내리며 텀벙거리며 놀았다. 

▲ 충북 옥천 금강 풍경.

그 여름 그 향기 그 풍경
30여 년 전 냇가에 텐트를 치고 고기를 잡던 날이 생각난다. 캠핑 보다는 야영이었다. 캠핑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때였다. 텐트라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수백만 원짜리 텐트가 아니었다. 그저 이슬 피할 작은 천막 정도였다. 

버너가 있었지만 드물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없어서 고체연료를 준비했다. 먹을 것은 라면뿐이었다. 

어항을 놓고 반도를 들고 냇물에서 뒹굴며 놀았다. 잡은 물고기를 손질해서 라면에 넣고 끓여 먹었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을 수 없던 그 시절, 이른바 ‘피라미라면’은 별미였다. 준비해간 고추장을 풀어서 끓여먹기도 했다. 

그날도 형들, 어른들을 따라다녔던 천렵의 날들이 생각났다. 땡볕에 하얗게 빛나던 냇가의 돌멩이들, 물비린내, 햇볕에 마른 풀과 흙의 냄새, 산모퉁이 돌아오는 완행버스의 ‘와갈와갈’하는 엔진소리, 그리고 완행버스 뒤로 풀풀 날리던 신작로의 흙먼지… 그때 냇가에서 끓여먹던 국수의 밀가루 향과 맛, 냇물에 담가 놓았다가 썰어 먹던 수박 향과 맛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진다. 

전국을 떠돌며 갖은 음식을 먹는다. 그중에 이른바 ‘천렵의 음식’이 있다. 그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옛날 냇가의 그 향기와 풍경이 생각난다. 

천렵의 음식들
냇물에 들어가 하루 종일 놀던 날들, 그때 냇가에서 먹던 음식들, 그런 우리를 가만히 지켜주던 시골의 풍경과 향기들… 그런 것들이 생각나는 여름 ‘천렵의 음식’이 있다. 

충북 괴산에는 괴강이 흐른다. 그 강기슭에서 매운탕을 파는 식당이 몇 곳 있다. 옛날에 냇가에서 끓여 먹던 ‘막무가내식 천렵잡탕’처럼 이것저것 다 넣고 끓인 잡어탕이 최고다. 쏘가리 가물치 등등 이름값을 한다는 물고기 보다 개인적으로 피라미 꺾지 빠가사리 모래무지 같은 작은 물고기를 이것저것 넣어 끓인 잡어탕이 최고다. 

▲ 다슬기(충청도 사투리로 올갱이 또는 올뱅이라고 한다)

괴강줄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올갱이다. 표준어는 다슬기다. 그러나 ‘다슬기’하면 국어사전에서만 사는 이름 같다. 정이 안 간다. ‘올갱이’라고 해야 그 느낌이 산다.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 올갱이

오래 전 충북 청천 뒷뜰로 천렵을 갔었다. 밤에 냇물에 들어가 플래시를 비추며 올갱이를 잡았다. 여럿이 잡은 것을 모으니 작은 코펠에 가득 찼다. 몇몇이 앉아 삶은 올갱이에서 알맹이를 하나하나 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간혹 올갱이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올갱이로 된장국을 끓였다. 충북 괴산은 올갱이국도 유명하다. 괴산 읍내에 올갱이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몇 곳 있다.  

▲ 충북 괴산 올갱이국

올갱이국으로 유명한 곳은 괴산만이 아니다. 남한강이 흐르는 충북 충주도 올갱이국으로 유명하다. 충주 시내에 올갱이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몇 곳 있다.

또 금강이 흐르는 충북 옥천과 영동도 올갱이국으로 유명하다. 올갱이무침을 안주로 술 한 잔 하고 다음 날 올갱이국으로 해장을 한다. 옥천 읍내와 영동읍내에 올갱이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몇 집 있다. 

▲ 충북 옥천 올갱이무침

옥천에서 맛본 마주조림은 별식이었다. ‘마주’란 모래무지를 말한다. 모래무지와 채소, 갖은 양념을 넣고 만든다. ‘조림’이지만 매운탕 겸 조림요리라고 보면 된다. 국물이 자글자글하게 있으면서 진한 양념 맛이 모래무지의 부드러운 살맛과 잘 어울린다.  

▲ 충북 옥천 마주조림

충북 옥천과 영동은 올갱이와 함께 어죽과 생선국수도 유명하다. 옛날에 냇가에서 국수나 라면에 잡은 물고기를 넣어 함께 끓여 먹던 그 맛이 떠오른다. 맛 자체로 따지면 옛날에 끓여먹던 것보다 식당에서 파는 어죽과 생선국수가 백배 낫다. 

하지만 맛은 입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오감을 열리게 했던 그 시냇가 풍경과 향기, 그 속에서 먹었던 그 맛은 이제는 더 이상 맛 볼 수 없을 것 같다. 

▲ 충북 옥천 생선국수

어죽이나 생선국수를 파는 집은 웬만하면 도리뱅뱅이도 판다. 도리뱅뱅이란 피라미를 잡아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낸 뒤 기름에 튀겨서 만드는 요리다. 기름에 초벌로 튀긴 뒤 고추장 양념을 발라 한 번 살짝 열을 가한 뒤 손님상에 내는데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 도리뱅뱅이.

같은 금강 줄기에 있는 충남 금산에는 일반 어죽과 함께 인삼어죽이 유명하다. 금산의 특산품인 인삼을 어죽에 접목시킨 것이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 중 하나인 적벽강가에 인삼어죽을 파는 집이 몇 곳 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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