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계곡, 숲길을 걷다
덕산계곡, 숲길을 걷다
  • 나무신문
  • 승인 2017.07.04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북 장수군
▲ 방화폭포. 방화폭포는 인공폭포다. 절벽 위로 물을 끌어올려 절벽 아래로 흘러내려보낸다고 한다.

밀목치 고개를 넘다
이름 없는 고갯마루를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장수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으로 알려진 전북의 고원 지대 중 장수의 덕산계곡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장수 읍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한우로 유명한 장수지만, 음식으로 먹는 한우 보다 농가를 지키는 가축으로 더 유명했다. 그래서 장수 한우 요리가 여행자들에게 알려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사리, 숙주, 파와 함께 결 좋은 고기가 들어간 전통 육개장으로 점심을 먹고 덕산계곡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봤다. 덕산계곡 입구에서 약 4~5㎞ 떨어진 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아주 드물었다. 택시를 탔다. 

▲ 덕산계곡 입구.

택시 기사님은 관광해설사 모드로 장수군의 일반적인 이야기와 덕산계곡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덕산계곡 중간에 물길을 막아 덕산제를 만들면서 계곡이 잘렸는데, 내가 가는 곳이 계곡의 중하류 정도 된다고 했다. 덕산제 위쪽에도 계곡은 있는데, 그쪽은 계곡을 찾는 사람들 보다 장안산 등산객이 많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덕산계곡을 가자고 했을 때 기사님이 ‘등산하러 가냐’ 아니면 ‘계곡을 찾아가냐’고 물었던 게 이해됐다. 

택시가 밀목치 고갯마루를 넘어 내리막으로 접어들 때, 기사님이 오른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마을이 수몰지구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해서 사는 마을이에요”라신다. 덕산제가 생기면서 덕산마을이 물 아래 잠긴 것이다. 

마을 돌담, 울타리 안 감나무, 골목길, 오래된 기와, 처마 끝에서 떨어지던 빗방울의 추억까지, 이제는 갈 수 없는 마을이 물 아래 남아 있다.      

덕산제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 했다. 좌회전하면 마을이 나오고, 장안산 등산로도 그곳에 있다고 한다. 

덕산계곡 입구에 도착해서 덕산계곡에서 방화동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지는 약 4.5㎞의 계곡길 안내도를 보고 숲으로 들어갔다. 

덕산계곡의 백미, 윗용소와 아랫용소
계곡 바로 옆에 난 길을 걷는다. 계곡도 길도 다 숲으로 덮였다. 숲길의 입구가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늘을 가린 숲은 한여름 오후 2시의 계곡길을 어둑하게 만들었다. 

▲ 숲길.

숲 밖은 산이다. 간혹 하늘이 보이는 곳이 나오는데,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람은 계곡을 따라 불다가도, 방향을 바꿔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계곡을 덮은 숲이 한꺼번에 일렁이는 듯했다. 

혼자 걷는 숲길이 낯설었지만 경계의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순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담갔다. 폭염도 그곳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 숲속 데크길.

길이 없는 곳에는 데크로 길을 냈다. 데크 옆 계곡에 안반바위가 드러나고 그 위로 계곡물이 흐른다. 윗용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빛이 짙어지면 시커멓게 변한다. 윗용소 옆 너럭바위에 앉아 간신히 용소의 가장 깊은 곳을 보고 있는데, 순간 아찔했다. 시커먼 용소의 목구멍이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용소는 넓지 않았지만, 깊은 곳의 그 아득한 빛깔에 현기증이 일었다. 

▲ 윗용소.

윗용소에서 300여 미터 정도 내려가면 아랫용소가 있다. 윗용소 보다 규모가 크다. 웅덩이 주변이 바위절벽이다. 물이 흐르는 안반바위와 절벽의 바위가 하나로 이어졌다. 오랜 세월 계곡물에 깎인 바위의 곡선이 부드럽게 빛난다. 아랫용소는 영화 <남부군>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계곡 길 중 아랫용소에서 처음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용소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에 카메라를 메고 계곡 위에서 불쑥 나타난 나를 보고 먼저 말을 건넨다. “계곡 위는 어때요?” 

▲ 아랫용소.

그 말에 ‘고생하십니다.’ ‘뭐 하시는 분이신데 혼자 다니세요?’ ‘어디서부터 걸어오신 거예요?’ ‘윗용소는 어때요?’ 등의 질문도 묻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용소 주변을 이리저리 다니며 사진을 찍는 동안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랫용소를 지난 계곡물은 맑고 푸른빛의 웅덩이를 곳곳에 만들어 놓고 아래로 흘러간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에 돌다리를 건넌다. 방화동 자연휴양림에 가까워질수록 숲이 엷어진다. 

▲ 크고 작은 돌과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

방화동 자연휴양림,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
잔잔하게 흐르는 냇물과 절벽이 어울린 풍경 앞에 안내판이 보인다. 방화폭포다. 이 폭포는 물을 끌어올려 절벽 위에서 흘려보내는 인공폭포다. 성수기에만 가동한다고 한다. 물 흘러내리지 않는 절벽도 그 아래 냇물과 어울려 볼 만 했다. 

방화동 자연휴양림에는 야영장과 오토캠핑장도 있다. 깊은 산 맑은 물과 함께 보내는 야영의 밤도 좋겠다. 

▲ 계곡 옆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오토캠핑장을 지나 휴양림 매표소에 도착했다. 매표소 부근에서 방화동 자연휴양림이 있는 숲을 한 눈에 바라본다. 겹겹이 싸인 숲이 깊다. 

장수 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휴양림 아래 마을까지 가야 탈 수 있다. 한 3~4㎞ 정도 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데, 버스가 드물다고 한다.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덕산계곡 입구로 올 때 탄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당신이 못 오시고 다른 분을 보내겠다 신다.   

서울 가는 버스 막차가 4시30분이었다. 택시는 이곳까지 오는 데만 20분 정도 걸린단다. 왕복 40분이다. 시간만 놓고 보면 서울 행 버스 막차시간 안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없었다. 기사님께 서둘러달라고 간곡하게 부탁 했다.  

서울 행 버스 막차시간을 14분 남겨놓고 택시가 휴양림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님께 조심스럽게 “4시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나요?”라고 묻고 사정을 얘기했다. 기사님은 그 안에 도착하기 어려우니 전주나 다른 곳으로 가는 차를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빨리 가달라고 부탁에 부탁을 했다. 그러는 사이 경찰차 한 대가 택시 앞을 지나 규정속도를 잘 지키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글렀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 경찰차는 다른 길로 빠졌다.

그 사이 기사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기사님과 나는 007 영화 속 제임스본드와 그를 도와주는 파트너가 된 것 같은 분위기였고, 달리고 달렸다. 하지만 지각이었다. 막차시간 보다 1분 늦게 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행이었다. 서울 행 버스 막차가 막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버스가 아직 있는 것을 본 택시 기사님은 “언능 표 끊어 오시오. 내가 버스를 막고 있을텡께”라시며 택시를 급하게 멈췄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표 파는 곳으로 뛰어갔다. 

▲ 계곡물을 따라 걷는다.

‘서울 남부’를 외치며 표 파는 창구에 카드를 던지듯 건네는 순간, 표 파는 총각은 “아부지 차 잡어 차”라고 외쳤고, 아버지로 보이는 분은 버스로 달려갔다. 표 파는 총각은 번개 보다 빠르게 표를 끊어줬고, 나는 순간이동하는 마음으로 버스로 달려갔다. 

그 짧은 시간이 내 머릿속에서는 슬로우모션으로 펼쳐졌다. 그 모든 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타는 중이었지만 그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기다려준 버스운전기사님께도 죄송하고 고맙다며 인사에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울 행 버스는 천천히 출발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