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이 있는 서울의 마을, 무수골
논이 있는 서울의 마을, 무수골
  • 나무신문
  • 승인 2017.06.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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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시 도봉구
▲ 논에 모를 냈다. 어린 벼포기가 자란다.

24절기 중 9번째 절기인 망종이 지난 6월5일이었다. 예로부터 망종을 전후로 보리 베고 모를 심었다. 오죽 바쁘고 일손이 필요하면 이 시기에는 부지깽이도 농사일을 돕는다는 말이 있다.  

봄가뭄에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다는 뉴스가 들린다. 비가 한 차례 내렸지만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그 비 덕에 모를 낸 곳이 있었으니 다행이다.    

논이 있고, 그 논에 모를 심고, 벼가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을이 서울에도 있다. 그곳이 바로 서울시 도봉구 도봉1동 무수골이다.  

벽화가 있는 무수골 아랫마을 골목 마다 텃밭이 없는 곳이 없다. 도봉초등학교 담장 아래에도 고추와 상추가 보인다. 마을 중간에 있는 넓은 터는 주말농장이다. 윗마을에는 논이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를 냈다. 농사짓는 서울의 마을, 무수골을 찾아간다.  

▲ 무수골 벽화마을에 있는 밭.

500여 년 역사의 마을, 무수골
도봉08 마을버스를 타고 무수골로 간다. ‘도봉1파출소 정류장’을 지나면서 창밖 풍경이 바뀐다. 무수천이 흐르고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의 능선이 보인다. 지붕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은 공기도 맑다.  

무수골은 조선시대 세종의 아홉 째 아들인 영해군(1435~1477)의 묘를 만들면서 생긴 마을이다. 처음에는 수철동(水鐵洞)이라고 했는데 세월이 흘러 무수동(無愁洞)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철’이란 무쇠를 말하는 것이고, ‘무수’란 시름이 없는 것을 뜻한다. 두 말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았지만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다만, 한자 이름인 ‘수철’을 한글 이름인 ‘무쇠’로 고쳐부르다 음이 바뀌어 ‘무수’가 된 건 아닐까? 라는 추측만 해본다. 이름이야 어쨌든 시름이 없다는 뜻의 ‘무수’라는 이름이 낫지 않을까? 

▲ 무수골 벽화마을 오래된 집 지붕.

무수동은 ‘무시울’ ‘무수골’ 등으로도 불렀다. 지금은 무수골로 부른다. 무수골은 아랫마을, 중간마을, 윗마을로 나뉘었었는데 윗마을은 전주 이씨가 살던 마을이었다.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이 윗마을에 있다. 영해군의 묘를 만들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을이 생긴지 500년이 넘은 것이다. 지금도 전주 이씨 집안 사람이 윗마을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 윗마을에는 250년 정도 된 느티나무도 있다.  

▲ 무수골 벽화마을에 있는 작은 가게.
▲ 무수골 벽화마을에 있는 작은 가게에 추억의 군것질꺼리가 있다.

텃밭과 벽화가 있는 마을
도봉08 마을버스를 타고 도봉초등학교 앞에서 내린다. 학교 앞 작은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구와 과자를 파는 옛날 가게다. 지금 주인아줌마가 이 가게를 맡은 지 20년이 지났고, 그 이전에도 다른 사람이 가게를 했었다. 

학교에서 끝난 아이들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가게를 들락거린다. ‘아폴로’ ‘쫀드기’ 같은, 40여 년 전에도 있었던 과자도 있다. ‘아폴로’를 손에 든 아이 얼굴이 밝다. 더위를 식히는 슬러시도 인기다. 

아이들이 지나는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졌다. 벽 한 쪽에는 연탄재가 쌓여있고 그 옆에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로 시작하는 시가 벽에 적혀있다. 그 골목에는 연탄을 때는 집도 있는가 보다. 

담장 아래 텃밭에 상추가 자란다. 벽화가 그려진 벽 앞 밭에 줄맞춰 고추를 심었다. 이 마을은 벽화와 함께 텃밭이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손바닥만한 터만 있으면 채소를 심는다. 

찬물에 밥을 말아서 텃밭에서 갓 딴 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던 옛 생각이 났다. 갓 딴 상추에 밥을 얹고 쌈장을 발라 싸먹던 상추쌈의 싱그러운 맛도 떠올라 침이 고인다.   

벽화와 텃밭이 함께 있는 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보는데 어디서 ‘꼬끼요~’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논이 있는 마을로 가는 길
벽화가 있는 마을은 무수골 중 아랫동네다. 벽화마을 바로 위에 도봉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앞을 지나 무수천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무수골주말농장이 나온다. 

가뭄에 땡볕 아래에서도 농장을 찾은 가족들이 농사일에 바쁘다. 작은 조리개에 물을 담아와 채소에 물을 주는 아이도 있고, 고랑에 쪼그려 앉아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아줌마도 보인다. 일을 따 끝낸 가족은 이른바 ‘인증샷’ 찍기에 바쁘다.  

▲ 무수천

무수골주말농장 옆에 무수천이 흐른다. 바닥이 너럭바위다. 넓은 너럭바위가 거의 다 드러났다. 흐르는 물의 양은 적지만 이번 가뭄을 생각하면 물이 마르지 않은 게 다행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곳,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은 물에 발을 담그고 냇물을 오르내리며 놀기에 바쁘다. 농사를 끝내고 막걸리를 먹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옆에 작은 백로 한 마리가 날아와 앉더니 금세 자리를 뜬다.

비가 많이 내리면 무수천은 넘실대며 흐른다. 그럴 때면 무수천에 물구경 하러 갈만하겠는데, 이번 가뭄을 해결할 단비를 먼저 기다리는 게 옳겠다. 단비에 땅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이 목을 축이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구경, 물구경을 말할 수 있겠다.   

▲ 무수천에 내려 앉은 새 한 마리.

세일교에서 길은 세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가면 ‘북한산둘레길 18코스 도봉옛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북한산둘레길 19코스 방학동길’이다. 다리 건너 직진하면 논이 있는 마을 윗무수골이다. 

논이 있는 윗무수골로 가기 전에 ‘북한산둘레길 18코스 도봉옛길’을 만날 수 있는 오른쪽 길로 가본다. 그곳도 다 무수골이다. 

▲ 윗무수골 논.

벽화가 있는 마을에서도 그랬듯이, 이 곳도 길가 도랑 옆, 집 앞 텃밭에 채소를 심었다. 마을 사람들이 채소를 길러 판다. 

길 옆 담장 아래 작은 웅덩이에 붉은 꽃잎이 떠있다. 그 옆을 지나 올라가다 보니 ‘북한산둘레길 도봉옛길’ 입구가 나왔다. ‘도봉옛길’ 입구 옆에도 사람 사는 마을이 있다. 그곳도 다 윗무수골이다. 

‘도봉옛길’ 입구에서 되돌아 걷는다. 꽃잎 떠있는 웅덩이 앞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 옛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교회가 있는 자리에는 절이 있었다. 오십대인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논두렁을 지나야 했다. 택시 한 대 간신히 들어올 넓이의 길이 났을 때에는 택시 기사가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냐며 밤에는 무서워서 누가 이런 곳에 오겠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길은 조금씩 넓어져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 논이 있는 윗무수골 입구에 있는 다리.

다시 세일교로 돌아와 논이 있는 윗무수골로 향했다. 만세교를 지나면 논이 있는 마을, 윗무수골이 나온다. 마을에서 식당을 하는 전주 이씨 집안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마을이 생기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논이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내기를 했다. 도봉구민과 초등학생이 함께하는 모내기 행사도 열었다. 논에 어린 모가 줄을 맞춰 심겨졌다. 

▲ 윗무수골에 있는 느티나무. 약 250년 정도 됐다.

건듯 부는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초록빛 어린 모가 한여름 땡볕과 폭풍우를 이겨내고 자라나 어느 집 밥상에 올라 배고픈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 

논이 있는 마을 한쪽에 식당이 있다. 백숙 같은 것을 파는 곳이다. 나무 그늘 평상에 앉아 논을 바라보았다. 단비가 내리기를 바라며…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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