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걷기 좋은 길
생각 없이 걷기 좋은 길
  • 나무신문
  • 승인 2017.06.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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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대전 계족산 황톳길

#여행 #장태동 #대전 #계족산 #계족산성 #황톳길

▲ 황톳길과 숲의 색이 잘 어울린다.

잘 정비 된 임도 16㎞, 길 한쪽에 황토를 깔았다. 맨발로 황토를 밟으며 걸어도 되고 그냥 걸어도 된다. 특별하게 아름다운 경치는 없지만, 그 길에 들어서면 까닭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계족산 황톳길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 좋은 길이다.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
새벽부터 서둘렀다. 산길 16㎞를 걸을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 선 것이다. 해발고도가 높다거나 산길이 험한 것은 아닌데도 일단 16㎞라는 거리가 부담이 됐던 건 사실이다. 

오전 9시에 계족산 황톳길이 시작되는 장동산림욕장 초입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어야했지만 차가 오가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어 마음 놓고 걷는다. 

아침이지만 벌써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선한 바람 맞으며 걷는 사이 금세 장동산림욕장 입구가 보인다. 

산림욕장 입구를 지나 황톳길이 시작되는 곳 옆에 야생화단지가 보인다. 금낭화가 피었다.  산국, 금낭화, 얼레지 등을 안내하는 팻말이 십여 개 보인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반기는 것이다. 

▲ 장동산림욕장 입구 지나 황톳길 시작하는 곳에 있는 야생화단지에 핀 금낭화.

금낭화의 배웅을 받으며 황톳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준비해온 비닐봉지에 넣는다. 그리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다. 아줌마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맨발로 황토를 밟으며 걷는 느낌이 좋은가 보다. 

맨발로 황토를 밟으며 걸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부드럽고 찰진 황토가 발바닥을 감싸는 그 느낌을…

▲ 사방댐과 숲

오래 전에 만든 사방댐 주변 풍경이 고즈넉하다. 잔잔한 수면에 햇볕이 부서지고 작은 호수 주변에 숲이 가득하다. 역광 비치는 오전의 호수 풍경이 그윽하다. 사방댐 옆 의자에 앉아 쉬는 사이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초록빛 숲 아래 붉은 황톳길, 색의 대비가 조화롭다. 그 길을 걷는 사이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라는 제목이 붙은 작은 조형물 앞에 도착했다. 

어미 코끼리와 새끼 코끼리가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을 철판으로 만들었다. 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휴식을 알리는 상징 같았다.  

▲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이지만 길이 넓고 잘 정비돼 걷기에 어렵지 않다. 그렇게 걸어서 순환형 임도 앞에 도착했다. 대청호두메마을과 계족산성·봉황정 방향 이정표가 보인다. 어느 쪽으로 가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순환형 임도다. 

계족산성
계족산성·봉황정 방향으로 걷기시작 했다. 순환형 임도까지 오는 길은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길이었지만 순환형 임도에 들어서면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넓고 잘 정비된 길이라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경치는 없지만 길 자체가 걷고 싶게 만든다. 

순환형 임도만 치면 약 14~15㎞ 정도 된다. 오르막길이 거의 없지만 14~15㎞ 정도를 걸어야 하니 산책하듯 걸으며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서 쉬어가는 게 좋다. 

▲ 계족산성. 성곽에서 대덕구 일대가 보인다.

사람들이 쉼터에 앉아 물을 마시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있다. 계족산성으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이었다. 계족산성으로 가는 길은 황톳길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간다. 가파른 계단이다. 

계단을 올라서면 오솔길이 나온다. 다리가 팍팍해질 때쯤 숲길 앞에 산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족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성이다. 지금도 대전은 교통의 요지이자 대한민국 중부의 핵심 도시다. 예전에도 그랬다. 계족산성에서 보이는 낮은 산에 다른 산성이 몇 개 더 있었다. 세종시까지 치면 산성은 더 많았다. 계족산성은 그 산성 중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동쪽과 남쪽, 서쪽에 문이 있었다.(지금은 터만 남았다.) 일부 성벽은 1992년부터 복원한 것이다. 

계족산성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굽이치는 산줄기와 그 산줄기에 싸인 대덕구와 금강줄기가 보인다. 

산성을 따라 서성거렸다.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 황톳길에 다시 섰다. 산성에 올라갔다 온 사이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 황톳길을 걷다보면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온다.

숲속의 음악회
임도삼거리 쉼터에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점심 먹을 때였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각자  싸온 음식을 꺼내 나눠 먹는다. 혼자 걷는 나는 먹을 것이 없었다. 물 한 병이 다였다. 

쉬지 않고 걸었다. 이 길을 다 걷고 나서 인근에 있는 옛 구즉마을 주변에서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먹을 생각이었다. 재개발 때문에 사라진 마을, 구즉마을은 60여 년 전부터 도토리묵과 동동주가 유명했다. 

절고개를 지나니 오가는 사람들이 뜸하다. 중간에 산 아래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 길로 내려가거나 왔던 길로 돌아간 것 같다. 

▲ 길가 숲에 보랏빛 꽃이 피어났다.

한적한 산모퉁이를 걷는데 향긋한 꽃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보랏빛 꽃이 눈높이부터 나무 꼭대기까지 피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 같았다. 넝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피웠는데, 무슨 꽃인지는 잘 몰았다. 확실하지 않지만 등꽃 같았다.   

산모퉁이 숲이 전부 보랏빛 꽃으로 덮였다. ‘꽃폭포’ 같았다. 그 아래 서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꽃향기를 맡았다. 

▲ 순환형 황톳길이 시작되는 곳

순환형 임도길, 출발했던 곳에 도착했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다.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걷는 걷는데 음악소리가 들린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부르는 남녀의 노래소리였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숲속음악회였다. 

숲속에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고, 그 앞에 마련된 작은 무대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도 잠깐 앉아 있었다.  

아침에 도착했던 장동산림욕장 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렀다. 옛 구즉마을 부근 60년도 넘은 도토리묵집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다. 

▲ 옛날부터 유명한 구즉 도토리묵
▲ 옛날부터 유명한 구즉 동동주.

돌담에 기와집이 있었던 옛 구즉마을 도토리묵집은 재개발로 아파트단지로 변했지만, 마을에 있던 도토리묵집들은 다 다른 곳으로 옮겨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중 60년이 넘은 묵집을 찾아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 묵집을 다닌 지 20년이 됐다. 할머니 손맛을 가족이 잇고 있지만, 옛 돌담 기와집의 낭만이 아쉬웠다. 직접 만든 두부에 동동주 한 동이를 먹고 도토리묵밥으로 마무리했다. 그 자리에서 한 잠 자고 싶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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