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을 만든 자 진흙탕에 빠지다
진흙탕을 만든 자 진흙탕에 빠지다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7.05.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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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시즌 2

[나무신문] 스스로 만들어 놓은 진흙탕에 빠진 느낌이다. 최근 친환경인증을 둘러싸고 목재업계에 불어닥친 문제에 대한 한 업계 관계자의 자조 섞인 코멘트다. 

플로어링보드(시장명칭 후로링)의 조달 등록을 위해서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친환경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인증을 위해서는 FSC 인증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때문에 친환경인증 신청 시 이와 관련한 서류를 제출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재인증 과정에서 그간에 납품한 물품들의 FSC 인증 내역을 제시토록 하였더니 어느 한 곳 속시원하게 관련 자료를 내놓은 데가 없었다는 게 인증기관의 설명이다. 정말로 FSC 인증품을 사용했다면 관련 자료를 내놓지 못할 리 없다는 게 인증기관의 판단이다.

FSC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과, 그 산림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원목을 이용한 가공과 유통에 대한 인증이다. 한 해 수백만 원의 비용은 물론 장부관리 등 까다로운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인증 업체들로서는 인증 사실을 숨길 하등의 이유가 없을뿐더러 기왕에 관리되고 있는 자료이니 제출치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친환경인증 기관은 강변하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 나서서 홍보해도 시원찮을 판에 굳이 제출해달라고 하는 것까지 기피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친환경인증 기관은, 대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간 목재업계에서 FSC 인증을 받지 않은 물품들을 납품했을 것이라고까지 의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목재업계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설명은 좀 다르다. 요즘은 현지 생산 공장에서 직접 수입하는 목재수입상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중간상을 통해 수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중간상들은 자기들이 관리하는 현지 공장을 노출시키지 않는 게 관례다. 공장이 노출되면 이른바 ‘직접 치고 들어가는’ 국내 업체들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현상은 동남아나 중국, 남미, 유럽 등 거의 모든 목재 산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국내 수입상에서 조달에 납품하려고 하니 FSC 인증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중간상들에게 현지공장이 어디인지를 밝히라고 하는 것과 같다. 수입업체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진흙탕에 빠진 대목이다.

30㎜ 이상 정각재였던 한치각은 어느새 27㎜ 이하 제품이 시장을 장악했고, 40㎜에 육박하던 데크 두께도 요즘은 20㎜ 안팎으로까지 얇아졌다. 판상재도 루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처럼 1㎜씩 줄여서 옆집 이겨먹던 쏠쏠한 재미는 어느덧 전체적인 목재 소비량 감소라는 진흙탕으로 변했다. 

같은 면적에 목재가 시공돼도 두께가 줄어들었으니 예전의 절반이나 2/3만 있으면 가능해진 것이다. 거의 대부분 ㎥로 환산된 부피로 가격이 매겨지는 목재시장으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목재 소비가 준 게 아니라 목재 업계 스스로 그 두께를 깎아먹은 것이다. 인증기관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게 아니라 목재업계가 당연한 것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목재제품의 두께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도, 진흙탕을 단단한 운동장으로 만드는 일도 모두 목재업계 스스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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