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을 아십니까?
효창공원을 아십니까?
  • 나무신문
  • 승인 2017.04.28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

#여행 #장태동 #효창공원 #백범기념관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묘역
서울, 인천, 공주, 예산, 부산, 제주도, 진해, 한산도, 여수, 순천, 보성, 광주, 함평, 나주, 김해, 창원, 진주, 전주, 목포, 군산, 강경, 춘천, 무의도, 강화, 개성, 연안, 장단, 평양, 서울 경교장. 

광복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선생은 그토록 밟고 싶었던 조국의 땅을 밟고, 만나고 싶었던 조국의 동포들을 만나기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1919년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1932년 항저우, 1933년 자싱, 1935년 전장, 1936년 난징, 1937년 창사, 1938년 광저우, 1938년 류저우, 1939년 치장, 1940년 충칭 등으로 거점을 옮겨야 했던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1932년 1월8일 이봉창 의사는 동경에서 일본 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의거는 실패했다. 이봉창 의사는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 백범 김구 선생 묘역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목숨을 건 항일독립투쟁에 일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의사의 의거 배후에 김구 선생이 있다고 단정한 일제는 김구 선생을 잡으려 현상금을 걸었다. 1차로 내건 현상금은 20만 원이었다. 거액의 현상금에도 불구하고 김구 선생은 잡히지 않았다. 이에 일본 외무성, 조선총독부, 상하이 주둔군 사령부가 합작해서 현상금을 60만원으로 올렸다. 같은 해 4월29일 윤봉길 의사는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겸 상하이사변 전승 축하 기념식에 참가한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인 요인들에게 폭탄을 던져 중상을 입혔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12월19일 순국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이 될 때까지 잡히지 않았다. 미국인 피치 목사의 집에 은거하기도 했고, 중국인 추푸청의 도움으로 자싱으로 피신해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 일제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도 했다. 

당시 현상금 60만원의 가치를 2002년에 환산한 적이 있었는데 그 가치가 198억 원 정도 됐다고 한다.   

그렇게 고국으로 돌아온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은 경교장에서 자주·독립의 새 나라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백범기념관 내부에 있는 백범 김구 상

그러던 중 1949년 6월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열흘 동안 장례식장을 다녀간 조문객이 120여 만 명이었다. 7월5일 장례식에는 40~5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의 암살을 두고 그동안 많은 의혹과 소문들이 있었는데,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에서 낸 자료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 국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안두희 개인이 저지른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사전에 모의하고 계획한 조직적인 범죄라는 게 드러났다. 

안두희의 배후에는 군부가 있었고, 서북청년단도 개입됐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의 배후 또는 연관된 사람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일본군과 일제의 경찰로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과 북을 나누어 신탁통치하려는 것을 반대했다. 또한 김구 선생은 친일세력과 그 잔재를 청산하려 했다. 김구 선생의 행보는 그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큰 위협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 했던 김구 선생은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그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암살당한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7월5일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에 묻혔다. 먼저 돌아가신 부인 최준례 여사와 1999년 4월12일 합장했다. 

1876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은 동학에 가입하여 부패한 조선 왕조의 폭정에 항거했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이에 항거하는 뜻으로 일본군 장교 스치다를 처단한 김구 선생이었다.  

▲ 삼의사 묘역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과 삼의사 묘역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 묘역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세 명의 묘역이 있다. 묘역에는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선생, 군무부장 조성환 선생, 비서부장 차리석 선생이 잠들어 있다. 

이동녕 선생은 1906년 북간도로 망명, 서전의숙을 설립하여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했다. 1907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신민회를 조직하는 데 함께 했으며 언론과 교육 부문의 활동을 통해 항일구국운동을 전재했다. 1910년에 서간도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3.1만세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참여했다.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국무위원, 주석 등을 역임했다. 1940년 중국 치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김구 선생이 효창공원에 모셨다.  

▲ 안중근 의사의 가묘

조성환 선생은 신민회에서 활동했다. 1912년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를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 했다.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3.1만세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군무차장을 지냈다. 만주북로군정서에서 군무부장을 역임하면서 청산리전투 등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광복군 창설에도 기여했다.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 

차리석 선생도 신민회에서 활동했다. 3.1만세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 창간에 참여하고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다. 임시의정원 의원, 국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1935년 국무위원회를 조직하고 비서장에 선출됐다. 1945년 광복 이후 환국을 준비하던 중 중국 충칭에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김구 선생이 효창공원에 모셨다. 

효창공원에는 삼의사 묘역도 있다. 삼의사 묘역에는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를 모셨다. 

▲ 백범기념관

이봉창 의사는 김구 선생과 일본 국왕을 폭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의거의 날은 1932년 1월8일이었다. 일본 동경에서 일본 국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 의거는 실패했다. 그해 10월10일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겸 상하이사변 전승 축하 기념식에 참가한 시라카와 대장 이하 일본 요인들을 폭살, 중상을 입혔다. 일본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12월19일 순국했다. 

백정기 의사는 3.1만세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하여 노동자운동과 일본상품 배격운동을 지도했다. 일본 시설물 파괴공작과 요인사살, 친일파 숙청 등을 목표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1933년 상하이에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를 습격하려다 실패했다. 무기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6월5일 지병으로 순국했다. 

그런데 삼의사 묘역에는 무덤이 하나 더 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무덤 옆에 있는 또 하나의 무덤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모시기 위해 1946년에 만들었다. 

▲ 효창공원 벚꽃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시대 정조임금의 맏아들인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당시에 효창묘라고 불렀다. 이후 왕가의 묘가 더 늘어났고 효창원으로 승격됐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대가 이곳에 불법으로 주둔하면서 효창원을 훼손했다. 효창원에 있는 무덤을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공원을 만들었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 묘역,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묘역, 삼의사 묘역과 함께 백범 김구 선생의 일대기와 대한민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기록과 자료를 볼 수 있는 백범기념관이 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등 7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도 있다. 

광복70주년 기념광장에 가면 10개의 태극기를 볼 수 있다. 광복70주년을 맞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10개의 태극기와 태극조형물을 설치했다. 

▲ 김구 선생 서명문 태극기

그곳에 가면 불원복태극기, 태극기 목판, 남상락 자수 태극기, 대한민국만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 등을 볼 수 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