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은 자존심이 없나
산림청은 자존심이 없나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7.04.26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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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시즌 2

[나무신문] “마지막으로 그동안 내가 앉아서 일했던 책상을 향해 큰절을 하고 나왔습니다.”

존경해마지않는 목재업계의 한 사장님이 언젠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그때의 상황을 개미 다리 세 듯 자세하고 소상하게 상황마다 떼어 내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하면 이렇다.

이 사장님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어떤 목재업체에 직원으로 아주 오랫동안 일했었는데, 퇴사하면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나온 게 바로 자기가 일하던 책상이라는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벌이를 만들어주고, 무엇보다 내 평생의 업으로 삼을 목재를 알게 해 준 책상이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것은 또 내가 목재업계에서 만난 거의 모든 ‘목재인’들이 취하고 있는 목재에 대한 태도다. 
목재계를 크게 산업계와 학계와 관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들 모두는 특유한 자존심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 느끼기에는 어떤 업종보다 순도 깊고 강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학자는 학자대로 관리는 관리대로 목재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깊다.

그리고 산업계 종사자들의 이 자존심과 긍지는 ‘제품’이라는 확실한 현물로 실현되는 특징이 있다. 제품이 곧 자존심이고 긍지인 동시에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말해주는 전부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지금껏 ‘최고’가 아닌 목재제품을 파는 목재업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어떤 이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품질이 떨어지면 가격 경쟁력이라도 ‘최고’인 게 목재제품을 대하는 산업계 종사자들의 태도다. 이를 위해 목재산업인들은 타국만리 출장길도 마다하지 않고 독거미 우글거리는 정글 속을 뒤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이처럼 목숨처럼 여기는 ‘최고의 목재제품’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임학을 전공하고 수십 년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당당히 생산한 방부목을 방부목으로 팔지 않고 있다. 

전 생애는 물론 가족의 미래까지 걸고 집성재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던 사람이, 기자가 찾아가면 집성재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집성재를 집성재로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심정이 하룻밤 사이에 예수를 세 번 부정했던 베드로의 자괴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목재인들의 자긍심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산림청은 빨리 답을 내놓아야 한다. 나무신문의 관련 보도가 나간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아무런 해명이나 대안을 알려오지 않는다는 건 의지와 능력을 떠나서 ‘목재인’으로서 최소한자존심도 없다는 의미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기사를 낸 티를 내겠다는 게 아니다. 보도가 나간 신문을 통하는 게 관련한 대안이나 해명을 전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목재산업계의 지금 이 혼란이 안중에도 없는 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산림청 스스로 산림청임을 부정하는 행태는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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