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같았던 어느 날 하루
소풍 같았던 어느 날 하루
  • 나무신문
  • 승인 2017.04.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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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 옛길’
▲ 산막이마을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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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선에 선정된 ‘산막이 옛길’을 지난 3월 말에 처음 다녀왔다. 유명세가 꺾이고 사람들 발걸음이 줄어들 때를 기다린 것이다. 호젓하게 걷고 싶은 마음은 욕심이었다. 그곳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산막이 옛길’의 출발지점으로 가려면 괴산시내버스터미널에서 수전 가는 버스를 타고 수전에서 내리면 된다. 하루 8대 운행한다.  

▲ 괴산 시내버스

가는 날이 장날
괴산 가는 버스가 동서울터미널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센트럴시티터미널(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에도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오전 8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10시 5분에 도착했다. 

집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괴산에 오면 꼭 먹는 음식이 있다. 괴산 특산물 음식이기도 하고 내 입맛에도 딱 맞는 올갱이국이 바로 그것이다. 

올갱이의 표준말은 다슬기다. 그런데 다슬기국이라고 하면 왠지 맛이 없게 느껴진다. 올갱이국이라고 해야 올갱이국이 가진 그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도 다슬기국이라고 적지 않고 올갱이국이라고 적는다. 

괴산 읍내에 올갱이국으로 유명한 식당이 네 집 있다. 네 집 올갱이국 맛을 다 봤는데 집마다 맛이 비슷하면서 다 다르다. 

나는 그중 두 집을 단골로 삼고 있다. 괴산에 갈 때마다 두 집 중 한집은 꼭 들르니 단골임이 분명한데 괴산 갈 일이 많지 않아서 자주 못가니 단골 아닌 단골인 셈이다. 

괴산시외버스터미널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올갱이국을 먹었다. 구수한 된장국에 올갱이 특유의 향과 맛이 녹아있는 그 맛이 첫 술부터 몸 전체에 퍼진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내버스터미널로 가다보니 길거리가 들썩들썩하다. 괴산 장날이었다. 장날인 줄 몰랐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산막이 옛길이 있는 마을로 가는 시내버스 시간이 남아 ‘장구경’에 나섰다. 

후각 청각 시각을 공감각적으로 자극하는 장터의 감초, 뻥튀기 기계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다. 강냉이, 떡, 쌀이 담긴 분유통이 나란히 놓였다. 아저씨는 옛날처럼 ‘뻥이요’를 외치지 않았다. 호루라기를 불어서 ‘뻥’ 튀겨지는 그 순간을 알리는 것이었다. 어쩐지 옛날의 감흥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 괴산 오일장 뻥튀기

자욱한 연기 속에서 아저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배출구를 열고 튀밥을 쓸어 담는다. 주변에 떨어진 튀밥을 주섬주섬 모아서 구경꾼들에게 주는 정은 아직 그대로다. 그렇게 얻어먹는 튀밥은 예나 지금이나 맛있다. 

▲ 호랑이굴

호수가 보이는 벼랑길   
평일 정오인데도 산막이 옛길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예닐곱 대 보인다. 산막이 옛길 출발지점이 어디인지 찾을 필요 없이 사람들 꽁무니만 따라가면 됐다. 

산막이 옛길은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이어지는 옛길을 복원한 것이다. 그 길이 약 4㎞ 정도 된다.     

‘산막이’라는 이름은 높이 솟은 산이 첩첩 쌓인 모습에서 따왔다. 산막이 옛길 출발지점으로 가는 길에 표고버섯 판매점이 많다. 가게 앞 간이테이블에 시식용 표고버섯이 놓였다. 

▲ 표고버섯을 날 것으로 먹는다.

표고버섯 두 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걷는다. 진한 버섯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숨을 내쉴 때마다 코끝에서 버섯향이 퍼진다. 그 사이 산막이 옛길 비석과 관광안내소가 나왔다. 길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 곳이다.  

뿌리가 다른 나무의 줄기가 중간에서 하나로 합쳐져 자라는 나무를 연리지라고 한다. 그곳에도 연리지가 있었고, 사람들은 그 나무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붙였다. 

▲ 연리지

연리지를 지나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소나무숲에 설치된 출렁다리는 옆에서 보면 높아 보이지 않는데 막상 위에 올라서면 긴장 된다. 흔들거리는 나무판을 밟고 걸을 때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간다. 출렁다리 옆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다. 

▲ 출렁다리

출렁다리 옆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정사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가 있다. 갈라진 줄기 사이로 다른 한 줄기가 자라났다. 연리지가 정신적인 사랑으로 서로의 영혼이 하나 됨을 상징한다면, 정사목은 육체적인 사랑으로 온기를 나누어 하나 되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 칠성댐

널찍한 길이 좁아진다. 데크로 만든 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사실 데크가 놓인 곳은 벼랑길이다. 벼랑길을 안전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데크로 길을 낸 것이다. 오른쪽은 바위 벼랑이고 왼쪽은 호수다. 오른쪽은 바위에 피어난 꽃을 바라보는, 헌화가의 아찔한 풍경이고 왼쪽은 산 그림자 드리워진 고즈넉한 호수 풍경이다. 

앉은뱅이약수터에서 사람들이 쉰다. 먹을 수 있는 물이라는 것을 수질검사표가 알려준다. 사람들은 물통에 물을 받기도하고 바가지에 물을 받아 마시기도 한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 와서 물을 먹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다람쥐가 약수터 옆 이끼 낀 바위로 내려왔다.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도망가진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 앉은뱅이약수터
▲ 앉은뱅이약수터에서 만난 다람쥐.

산막이마을 
느티나무가 있는 쉼터, 병풍루를 지나면 꾀꼬리전망대가 나온다. 허공으로 머리를 내민 전망대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계단을 올라 전망대 앞에 섰다. 한 번에 두 사람 이상 가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보인다. 

▲ 꾀꼬리전망대
▲ 꾀꼬리전망대에서 본 풍경

전망대에 서서 풍경을 즐긴다. 발 아래는 허공이다. 도착지점인 산막이마을이 가깝게 보인다. 
산막이마을로 가는 길가 오두막에 물레방아가 돈다. 물이 차면 돌고, 돌아 넘치면서 비우는 물레방아 도는 내력을 짐작해 본다. 오두막에서 파는 인절미를 먹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짙은 농담 뒤로 물레방아는 계속 돌아간다.  

▲ 물레방아

산막이마을에 햇볕이 가득하다. 햇볕 잘 드는 곳에 산수유꽃과 매화가 피었다. 식당과 민박집이 있는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당산나무를 만났다. 

▲ 산막이마을 당산나무 밑동

200살이 넘은 밤나무가 당산나무다. 당산나무 옆에 금줄을 상징하는 새끼줄을 여러 가닥 설치했다. 새끼줄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리본이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 기원을 하늘에 전하듯 솟대의 새들이 고개를 세웠다.   

▲ 괴산호 유람선.

길은 더 이어진다. 산막이마을에서 약 1㎞ 정도 더 가면 호수를 가로지르는 연하협다리를 건너 다음 목적지로 갈 수 있다. 아니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도 좋다. 산막이마을 선착장에서 출발했던 곳 부근에 있는 선착장으로 가는 유람선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다 어릴 적 소풍 같다.    

▲ 괴산호 유람선이 산막이 마을로 가고 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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