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기다리며
친구를 기다리며
  • 나무신문
  • 승인 2017.03.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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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부산시 금정산
▲ 산어귀전망대에서 본 풍경

#여행 #장태동 #부산 #금정산 #동래온천 #노천족탕

부산의 금정산을 가기로 한 날 산 보다 더 기다려지는 건 친구였다. 고등학교 졸업반 친구인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간혹 전화로 안부를 묻기는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감질났다. 친구가 끝날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산에 오르기로 했다. 

금정산에서 옛 일을 생각하다

▲ 부산 어린이대공원 입구 조형물

금정산은 부산시 금정구와 양산시 동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802m로 부산의 진산이다. 산줄기가 부산의 북서쪽에 남북으로 뻗었다.  

금정산의 등산코스는 여러 개인데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성지곡수원지를 지나 남문 방향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부산어린이대공원 입구 조형물을 지난다. 오래된 여행지의 관록이 묻어난다.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마당에서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을 보았다.  

1940년 경남학도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군 심판관이 한국 학생들을 차별하고 편파적인 판정을 일삼자 한국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동래고와 개성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학생이 심판장이었던 일본군 육군 대좌 노다이의 관사를 습격했다. 200여 명의 학생이 체포되고 15명은 투옥됐다. 

▲ 숲길.

산으로 오르는 길이지만 포장이 잘 됐다. 편백나무가 하늘 높이 자란 숲 옆길로 올라 도착한 곳이 성지곡수원지다. 

풍수지리가 성지라는 사람이 현재 성지곡수원지가 있는 곳에서 명당을 찾고서 가지고 있던 철장을 꽂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래서 이곳 이름이 성지곡이 됐고 그곳에 1909년 수원지를 만들었다.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1985년에 용수공급을 중단했다. 

▲ 성지곡수원지

성지곡수원지 위에 있는 사명대사상을 돌아보고 숲으로 들어간다. 숲길이지만 넓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어린이대공원 뒤 만덕고개’ 방향으로 간다. 

빼곡하게 자란 나무가 하늘을 가렸다. 그 사이로 길이 났다. 걷고 싶은 마음이 인다. 그저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풍경이 그렇게 만든다. 

이제 정오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다. 친구도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고등학교 3학년, 웬만하면 공부가 전부였던 시절에 친구와 나와 또 다른 몇몇 친구들이 모여 여행을 떠났다.

쌀과 김치는 각자 먹을 양만큼 개인적으로 준비하기로 하고 야영도구(요즘은 캠핑이라는 말이 대세지만 당시에는 야영이었다. 텐트도 지금처럼 몇 백만 원 짜리, 집 한 채를 옮겨 놓은 것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이슬을 피할 정도의 작은 천막이었다.)는 분담했다. 

나는 막내삼촌이 쓰던 텐트가 있어서 텐트를 준비했다. 방수도 안 되는 낡은 천을 철제 폴대에 묶는 오래된 텐트였다. 누구는 낚싯대, 누구는 카메라, 누구는 석유버너, 누구는 칼과 코펠... 그리고 시키지도 않은 소주 댓병을 준비해온 친구도 있었다. 

강에 도착한 우리들은 후다닥 텐트를 치고 짐을 부린 뒤 각자 하고 싶은 걸 했다. 누구는 낚시를 하고, 누구는 반도를 들고 강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누구는 된장을 바른 어항을 놓고, 누구는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고...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좋았다.

강에서 잡은 피라미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일찌감치 모닥불을 피우고 소주를 돌렸다. 한여름이었지만 강가는 시원했다. 작은 텐트에 다섯 명이 구겨져서 잤다.   

그날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산어귀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에서 시야가 시원하게 열렸다. 윤산, 북장대, 동래읍성, 장산, 동장대, 동래역, 온천천, 배산, 광안대교, 금련산, 황령산, 종합운동장 등이 보인다. 

▲ 남문

동문지나 동래온천노천족탕까지

▲ 남문마을에서 만난 개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오르막길도 경사가 급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서 도착한 남문마을에서 나를 반기는 건 작은 개 한 마리였다. 

개 이름은 똘이였다.(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걸 보고 주인이 귀찮게하지 말라며 개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똘이라는 걸 알았다.) 똘이는 오랫동안 두고 본 친구처럼 나를 보자마자 졸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개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똘이가 엉기는 건 귀여웠다. 

남문마을은 백년 도 더 된 마을이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어 내가 걸어왔던 만덕고개를 넘어 구포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렸었다. 남문 아래까지 케이블카를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식당이 생겼다. 지금은 대부분의 집에서 음식을 판다.    

▲ 남문마을

마을을 벗어나 남문으로 오른다. 남문을 지나 동문방향으로 가는 길 중간에서 대륙봉을 만났다. 해발 520m의 봉우리인데 너럭바위가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 대륙봉에서 본 풍경.

대륙봉에서 전망을 즐기며 잠시 쉬었다가 동문방향으로 출발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동문에 도착했다. 산길은 북으로 달려 부채바위, 의상봉, 원효봉을 지나 정상에 다다르게 되는데 동문에서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 동문

친구와 만날 시간은 여유 있었지만 동문에서 내려가는 게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동문에서 300m 정도만 내려가면 온천장역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동문을 통과하면 갖은 표정을 짓고 있는 크고 작은 장승들을 볼 수 있다. 장승 앞을 지나 조금만 더 내려가면 도로가 나온다.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온천장역으로 가는 203번 버스를 타고 온천시장에서 내렸다. 

▲ 동문 밖 장승
▲ 동래온천노천족탕

온천시장 일대가 동래온천지구다. 동래온천은 신라시대의 기록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된 온천이다. 조선시대에 온천시설을 개보수했다는 기록을 새긴 비석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온천시설을 개보수하면서 남탕과 여탕을 나누어 9칸 짜리 건물을 지었다. 건물은 꿩이 나는 형상이었다.   

온천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간단하게 족욕을 하기로 하고 온천지구에 있는 노천족탕을 찾아갔다. 누구나 무료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뜨끈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앞에 앉은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줌마는 족욕 단골이었다. 동래온천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줌마 말처럼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친구를 만나다
친구가 퇴근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친구의 직장 근처로 내가 가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약속 시간은 30분 남았다. 먼저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구가 올 때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내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을 테니 일 다 보고 천천히 오라고 했더니 친구는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혼자 막걸리 먹는 사람 어디 앉았냐고 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내가 앉은 자리까지 들렸다. 방에서 벌떡 일어나 친구를 맞이했다. 

친구는 눈가 주름 몇 개 빼고는 고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였다. 살도 더 찌지도 빠지지도 않았다. 마지막 봤을 때와 똑 같은 모습이었다. 

친구는 술을 잘 못하지만 내가 술잔을 들 때마다 함께 잔을 들고 건배를 외쳐주는 것이었다. 막걸리, 소주, 맥주, 청하... 식당에 있는 술을 종류대로 섭렵해나갔다. 못 본 세월의 이야기가 술잔에 찰 때마다 건배를 했고 밤은 깊어갔다. 

사실 그날 늦은 밤차라도 타고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날 일찍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전화로 사정을 얘기하고 약속을 미뤘다. 그 분도 나와 내 친구가 만난 이 자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하는 듯 했다. 흔쾌히 약속을 미뤄주었다.   

밤이 새벽이 되었고 친구가 마련해준 숙소에서 마지막 술잔을 기울였다. 친구는 출근을 했고 나는 늦게 일어났다. 늦은 아침 햇살이 숙소에 가득 찼다. 

잘 보고 간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부터 친구는 나를 나는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또 시작되는 것이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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