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서정-서울시 마포구 난지생명길 1코스
만추서정-서울시 마포구 난지생명길 1코스
  • 나무신문
  • 승인 2016.12.0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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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마포구

#여행 #장태동 #만추 #난지생명길 #난지공원 #하늘공원 #평화의공원 #산책 #메타세쿼이아

가을이 가는 게 하루 차이로 느껴진다. 어제 본 단풍잎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풍성한 나뭇가지가 하루가 다르게 앙상해진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서둘러 가을로 다녀왔다. 

▲ 월드컵경기장역.

가을 숲 갈색 숲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해서 같은 곳에서 끝나는 14.4km 길에 난지생명길(마포난지생명길 1코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윽한 향기를 지닌 난초와 지초가 무성했던 한강의 섬, 난지도.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시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되면서 불모의 땅이 된 곳, 난지도. 난꽃 위에 버려진 쓰레기가 산을 이루었다. ‘쓰레기산’에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1996년부터 생태공원으로 가꾸기 시작했고 2002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해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신록이 오르며 가을이면 단풍 물들고 억새가 피어나는 이곳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길이 마포난지생명길 1코스다. 

▲ 매봉산.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로 나와서 월드컵경기장 앞에 서면 매봉산이 보인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해발 100m가 채 안 된다. 붉은빛 단풍 물든 나무 옆에 정자가 보인다. 정자와 나무 사이로 난 길로 들어간다. 갈색 단풍 가득한 갈색 가을 숲이다.

▲ 매봉산 숲길.

하늘을 가린 가지에 달려 있는 잎도 갈색으로 물들고 길에 뒹구는 낙엽도 갈색으로 빛난다.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온통 ‘가을색’ 사이로 아직도 푸르른 잎을 피워내는 나무도 있다. 완강하게 생을 움켜쥔 푸른빛이 강렬하다. 

▲ 매봉산 숲길에 있는 초가. 대장간을 재현한 것이다.

숲에 초가가 한 채 보인다. 대장간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월드컵경기장 주변 마을 옛 이름이 풀무골이었다.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불어 넣는 기구다. 예전에 이 부근에 엽전을 만드는 대장간이 많았다. 대장간을 상징하는 기구 중 하나가 풀무다. 그래서 이 마을 이름이 풀무골이었다. 풀무골 대장간을 재현한 초가가 가을 숲에서 더 가을 같다. 

초가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지 말고 좌회전하면 나무데크길을 만난다. 그길로 조금만 가면 전망 좋은 곳에 도착한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도로와 건물들이 한 눈에 보인다. 

▲ 매봉산. 전망 좋은 곳.

매봉산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을 다 내려서면 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해서 난지천공원으로 접어든다. 

인조잔디축구장을 지나면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건널목을 건너 조금 가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 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노을공원이다.    

▲ 노을공원으로 가는 길.

노을 앞에 서다

▲ 노을공원에 있는 조형물.

노을공원의 풍경은 노을로 완성된다. 해 지고 나면 이 길의 나머지 구간을 걷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해 질 때를 맞춰 와야 했던 것은 노을공원의 노을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날이 궂더니 오늘은 화창하다. 이 가을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있을까 싶어서 오늘 노을을 보기로 했다. 

노을공원으로 가는 길은 지루하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하는데 주변 풍경도 그다지 볼만한 게 없다. 그저 걸어야 하니 걷는다. 

노을공원에 도착할 무렵 해는 지고 있었다. 전망대가 700여 미터 정도 남았다. 해를 가늠해보니 노을 피어나는 걸 볼 수 있겠다.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노을빛을 배경으로 서 있는 커다란 수양버들과 전망대 난간 목책의 실루엣이 서정적이다. 

▲ 노을공원 전망대와 노을.

실루엣 속으로 들어간다. 해는 멀리서 지고 있었지만 그 빛은 세상을 다 비추고 있었다. 방화대교를 지나 행주산성 산기슭 아래로 흐르는 한강에 어둠이 내린다. 해질녘 강물은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강물 위로 햇빛 기둥이 길게 드리운다. 

하늘과 땅 사이 장막처럼 낀 구름으로 해가 떨어진다. 해는 사라지고 빛만 남는다. 그 빛에 의지해 노을공원에서 내려온다. 사위는 어두워지고 남은 길은 날 좋을 때 다시 걷기로 했다. 

▲ 메타세쿼이아와 이태리포플러가 있는 길.

메타세쿼이아와 이태리포플러 사이길
궂은 날을 보내고 맑은 날을 골라 다시 길을 나섰다. 노을공원에서 이어지는 길은 메타세쿼이아와 아태리포플러가 있는 길이다. 

하늘 높이 자라난 이태리포플러와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섰다. 성벽과 성벽 사이, 혹은 어느 협곡에 난 길을 걷는 기분이다.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좁은 길로 먼저 걷는다. 이 길에 서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이도 좋고, 아주 오래된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도 좋겠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길이다. 

▲ 메타세쿼이아길.

나무껍질이 햇볕을 흡수했다가 천천히 빛을 발산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빛이 안개처럼 퍼지는 것 같다. 흡수되지 못한 빛은 날카롭게 부서져 파편처럼 튕겨난다. 그럴 때 빛은 날카롭다.   

메타세쿼이아길 옆으로 나가면 이태리포플러가 줄을 지어 서있다. 낡은 자전거 한 대 쯤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하늘공원 억새밭 전망대에서 본 풍경. 북한산이 보인다.

억새밭 그리고 마지막 단풍
길은 하늘공원으로 이어진다.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억새밭이 온통 흰빛이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숲으로 사람들이 드나든다. 억새밭에 난 여러 갈래 길을 정해 놓은 곳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전망 좋은 곳이 여러 곳 있다. 전망을 즐기며 걷다가 억새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 하늘공원에서 본 풍경.

전망대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사방이 온통 억새밭이고 억새밭이 끝나는 곳 그 뒤로 서울의 다양한 풍경이 겹쳐진다. 

억새밭을 두고 돌아서기 어렵다. 뒤돌아 본 풍경이 더 아름다운 건 이곳도 마찬가지다. 내려가는 발길을 멈추게 하고 다시 몇 걸음 돌아가게 만드는 건 햇볕에 비쳐 빛나는 억새꽃 이었다. 

▲ 하늘공원에서 억새밭.

평화의 공원으로 가는 계단으로 내려간다. 계단 위에서 평화의 공원이 한 눈에 보인다. 울긋불긋 마지막 단풍이 불타오른다. 

▲ 평화의 공원 호수.
▲ 평화의 공원 단풍

계단을 내려가 구름다리를 건너면 불타는 ‘단풍숲’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단풍은 마지막까지 안간힘으로 불탄다. 다 태우고 태워 검게 그을린 잎도 있고 타다 만 잎이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뒹굴기도 한다. 만추의 서정이 가득한 길을 걸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월드컵경기장역으로 가는 길. 불광천변 단풍.
▲ 평화의 공원 산책로.
▲ 평화의 공원에 있는 조형물.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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