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보고 싶은 풍경
걷고 싶은 길, 보고 싶은 풍경
  • 나무신문
  • 승인 2016.11.0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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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북 고창군 고창읍
▲ 고창고인돌박물관 3층 옥상 야외전망대에서 본 풍경. 산기슭 아래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군락지가 있다.

#여행 #장태동 #고인돌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고창 #고인돌공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 군락지를 보러 고창으로 갔다. 고창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인돌이 있는 고인돌공원까지 약 6㎞ 정도를 걷기로 했다. 고창군은 그 길에 고인돌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고인돌 군락지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저 선사시대의 공동묘지 정도로 생각한 게 사실이다. 산기슭 여기저기에 있는 고인돌을 돌아봤다. 산에 있는 여느 돌과는 느낌이 달랐다. 어떤 것은 그 자체로 특별했다.  

차부 짜장면
시골에서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타는 곳을 차부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표를 끊는 곳은 보통 가게도 겸했다. 

규모가 좀 큰 차부는 버스 한 두 대 정도 머무를 수 있는 터가 있었지만 어떤 곳은 빈 터가 없어 버스를 그냥 길에 세우고 사람을 내려주고 태웠다. 웬만한 동네에는 차부 옆에 중국집이 있었다. 차부가 터미널로 바뀐 뒤에도 중국집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제부턴가 시골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하거나 시골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탈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차부 주변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는 버릇이 생겼다. 

고창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식당을 찾았다. 터미널 대합실 바로 옆에 중국집과 분식집이 있었다. 고민할 것 없이 중국집으로 들어가서 짜장면을 시켰다. 역시 차부 짜장면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 고창버스터미널 중국집에서 먹은 짜장면.

짜장면까지는 좋았는데 고인돌길 안내판이나 이정표를 찾을 수 없어서 출발지점부터 조금 헤맸다. 출발지점이 고창시외버스터미널이라면 적어도 터미널 대합실 주변에 고인돌길을 알리는 표시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직감이 가리키는 곳으로 움직였다. 터미널 앞 큰 길 가 택시 타는 곳 옆에 고인돌길을 비롯한 고창의 ‘걷기길’을 안내하는 종합 안내판이 있었다. 하지만 안내판의 안내만 보고는 고인돌길의 구체적인 코스는 알 수 없었다. 

▲ 고창읍내를 흐르는 고창천 둔치에 억새가 피었다.

억새 따라 걷는 고창천
안내판에서 터미널사거리 방향으로 걷는다. 터미널사거리에서 좌회전 한다. 직진하면 고창천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길 건너편에 이정표가 보인다. 길을 건너 이정표를 확인하니 고인돌공원이 5.1㎞ 남았다고 적혔다. 

이정표가 있는 곳부터 고인돌 공원까지는 고창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이정표 방향으로 걷는데 길에 주차한 차량과 아파트 공사장이 있어 어수선하다. 고창천 둔치로 내려가는 길을 만나 그곳으로 내려간다. 

▲ 고창천.

참새나 제비가 앉아야 할 전깃줄에 논이나 시냇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하얀 새가 앉았다. 장례식장 건물 뒤쪽이 보이는 시냇물가에 억새꽃이 피었다. 

오가는 사람 없는 길에서 파마머리 아줌마를 만났다. 이 시골마을에 뭐 볼게 있어 왔냐는 말에 천지가 다 볼 건데 내가 어떻게 안 오겠냐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아줌마가 웃는다. 

▲ 키 작은 풀들의 그림자.
▲ 햇볕에 나락을 말린다.

담장 밖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모과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담장 아래 펼쳐 놓은 나락에 햇볕이 골고루 내려앉는다. 어릴 때 먹었던 햇볕에 말린 쌀로 지은 밥맛이 생각났다. 털이 북실북실한 강아지가 마당을 돌아다닌다.   

▲ 고창천을 따라 걷는다.

고창천을 따라 걷다보니 석탄리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렇게나 자란 풀밭에 구불구불 길을 내며 시냇물이 흐른다. 물결 부서지는 여울에 햇볕이 반짝인다. 길가 담장 앞에 트랙터가 서 있고 그 옆에 둥그런 나무가 보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배경이다. 석탄리공동농기계보관창고, 감나무에 달린 주황빛 등불 같은 감, 추수 끝난 텅 빈 논, 시골마을 가을 풍경은 그렇게 완성 된다. 

▲ 석탄리 마을 . 트랙터와 나무가 있는 풍경.
▲ 억새가 있는 길.

석탄리 마을을 지났다. 시냇가에 억새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하얀 구름이 땅에서 일렁이는 것 같았다. 억새꽃 솜털이 햇볕 속에서 반짝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잔잔한 물에 비친다. 걷고 있었지만 걷고 싶었다.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풍경이다. 풍경 속에 있었지만 풍경과 하나 되고 싶었다.      

▲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 군락지에 있는 고인돌.

고인돌
시냇물 건너 들판에 건물이 하나 보인다. 고인돌박물관이다. 고인돌교를 건너 고인돌박물관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고인돌의 고장 고창의 고인돌과 선사시대 문화를 알 수 있는 곳이 고인돌박물관이다. 

▲ 고창고인돌박물관.

고인돌을 운반하는 상황을 재현한 조형물이 전시관을 찾은 사람들을 고인돌의 세계로 안내한다. 선사시대 마을과 수렵활동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조형물들과 함께 전시품과 설명글을 읽으면서 배운다. 

3층 옥상 야외전망대에 서면 고인돌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고인돌과 조형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멀리 산기슭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군락지도 보인다. 

고인돌군락지가 있는 고인돌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고인돌군락지에 있는 운곡습지탐방안내소 해설사에게 고창의 고인돌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고창에는 수천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중 일부만 발굴했고 발굴한 고인돌 가운데 447기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고인돌 군락지.

해설사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탐방안내소 앞에서 보이는 양쪽 산자락 끝에서 끝까지 산기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을 다 돌아보려면 몇 시간 걸릴 것 같다. 탐방안내소 옆 산기슭 풀밭에 있는 고인돌만 돌아보기로 했다.   

돌아보기 전에 고인돌의 형태에 따른 종류와 이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두 개의 판석을 세우고 그 위에 넓은 돌을 올려놓은 ‘탁자식’. 굄돌 네 개 위에 큰 돌을 올려놓은 ‘바둑판식’. 땅 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커다란 돌을 덮은 ‘개석식’. 낮은 판석이나 여러 개의 판석을 덧대어 지상에 석곽이나 석관 같은 구조를 만든 ‘지상석곽식’ 등이 있다. 

고인돌을 돌아보고 돌아가는 길에 해설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해설사는 고창에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 말고도 볼만한 고인돌이 많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고인돌공원까지 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고인돌박물관으로 가면서 콜택시를 불렀다. 

카메라에 배낭을 맨 나를 본 친절한 택시기사님이 저쪽 숲에 있는 고인돌이 볼만하다며 관광안내원을 자처하신다. 읍내로 나가는 길에 있으니 잠깐 들러서 사진 찍으면 좋을 거라며 적극 추천하신다. 

▲ 고인돌과 낮달. 고창에는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되지 않은 고인돌 중에도 볼만한 고인돌이 많다.

낮은 언덕 같은 숲속에 넓은 터가 있고 터 한 쪽에 고인돌이 딱 하나 있었다. 해설사에게 들은 ‘탁자식 고인돌’이었다. 고인돌 위 해지는 하늘에 낮달이 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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