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게 걷는 길 - 월출산 기찬묏길 2코스 왕인문화체험길
기차게 걷는 길 - 월출산 기찬묏길 2코스 왕인문화체험길
  • 나무신문
  • 승인 2016.10.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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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영암
▲ 전망대에서 본 풍경.

#여행 #장태동 #월출산 #기찬묏길 #왕인문화체험길

전남 영암에 있는 월출산 둘레에 난 기찬묏길 2코스 왕인문화체험길을 걷는다. 기찬랜드에서 출발해서 왕인박사유적지까지 7.44㎞를 걷는 동안 시골마을, 임도, 들판, 숲길을 지나게 된다. 이 길을 걸으며 월출산의 정기를 받는다.   
 
기찬랜드 
영암으로 가는 길이 멀다. 서울에서 첫 버스를 타도 영암에 도착하면 오후 1시 가까이 된다. 그 시간에 영암에 도착해서 밥 먹다 보면 길을 걸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그래서 목포를 거쳐 영암으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목포행 ktx를 타고 목포역에 도착한 뒤 목포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영암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기찬랜드에서 내린다. 

▲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 선생 상.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없었으나 하늘이 잔뜩 흐리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기찬랜드에 있는 가야금산조기념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찬랜드 주차장 위 한옥건물이 가야금산조기념관이다. 가야금산조는 조선 후기 영암 출신 김창조 선생이 창시한 것이다. 판소리와 시나위의 가락을 기악 독주곡으로 발전시킨 것이 가야금산조다. 

가야금산조와 관련된 유물과 자료, 다양한 가야금은 물론 각종 국악기도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전시품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가야금 연주로 유명한 국악인들의 가야금 연주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CD를 재생해서 가야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록 헤드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지만 가야금 소리가 좋다.  

가야금산조기념관을 나오니 날이 조금 갰다. 간혹 파란 하늘이 보였다. 기찬랜드 이곳저곳을 산책하는 동안 가수 하춘화 노래비를 찾았다. 하춘화는 영암아리랑, 월출산연가 등의 노래를 불렀다. 

▲ 가수 하춘화 노래비.

기찬묏길을 걷는 동안 밥 먹을 곳이 없을 것 같아 기찬랜드에 있는 매력한우명품관에서 설렁탕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설렁탕 가운데 내 입맛에 가장 잘 맞았다. 주인에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설렁탕 잘 먹고 간다.’며 인사를 건넸더니 ‘허허허’하고 웃는다. 

▲ 기찬랜드 매력한우명품관 설렁탕.

기찬묏길 2코스 왕인문화체험길
기찬랜드를 막 벗어나는데 길가에 장승이 서있다. 기찬묏길을 알리는 장승이다. 장승의 배웅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길을 걷는다. 

▲ 기찬묏길 장승.

논을 지나고 소박한 시골마을을 지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앞서 걷는다. 떨어진 밤송이를 발로 까서 밤을 줍는다. 마을길에 떨어진 밤송이를 줍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마을 여기저기 있는 사소한 것들까지 그냥 지나치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늦게 출발한 나 보다 늦어졌을 것이다.   

마을을 지나 대동제 나무데크길에서 아이와 함께 걷는 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대동제 저수지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저수지에 비친 산그림자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마을길에서 밤을 줍던 아주머니가 나를 지나쳐 숲길로 들어간다. 

▲ 대동제.
▲ 대동제에서 본 풍경.

저수지 끝에서 숲길은 시작된다. 습기를 머금은 숲 향기가 좋다. 숲속에서 나무다리를 만났다. 앞서간 아주머니가 나무다리에서 돌아온다. 

▲ 무지개목교.

길에서 몇 번 지나치면서 서로 얼굴을 익혀서 그랬던지 아주머니가 “5㎞는 남겨 두고 돌아갑니다.”라며 인사를 하고 나를 지나 돌아간다.   

나무다리 끝에 이정표가 있다. 기찬랜드에서 여기까지 2.44㎞이고, 도착지점까지 5㎞가 남았다. 그때서야 아주머니의 인사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월출산 기찬랜드에서 출발하는 기찬묏길. 2구간(도갑사방향)으로 출발.

숲 속에도 논이 있다. 숲 속 논 옆을 지나면 들판길이다. 들판길을 지나면 시멘트도로가 나온다. 임도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면 임도로 접어든다.  

임도 시작지점부터 도착지점인 왕인박사유적지까지 4.49㎞다. 넓은 임도가 걷기 좋다. 기찬묏길 장승이 여행자를 안내한다. 임도가 끝나면 논이 있는 길을 걷게 된다. 잠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지나서 숲으로 들어간다. 월록정을 지나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전망을 즐기며 잠깐 쉬었다 간다. 전망대에서 왕인박사유적지까지는 1.1㎞다.

▲ 도착지점인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박사유적지 전에 다목적광장이 먼저 나온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는지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왕인박사유적지로 내려간다. 커다란 돌 탑 두 개가 여행자를 반긴다. 기찬묏길 2코스 왕인문화체험길은 여기서 끝난다. 왕인박사유적지에 있는 전시관과 외부 전시물을 보며 왕인박사와 백제시대의 문화를 알아본다. 

▲ 천인천자문.

왕인은 백제시대 사람으로 현재 왕인박사유적지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 학문과 문화를 전파했다고 알려졌다. 

왕인박사유적지에는 왕인박사기념전시관인 영월관과 천인천자문, 망월정(전망대), 돌탑, 왕인박사 사당, 왕인박사묘비(오사카 히라카다시에 있는 왕인박사의 묘를 실제크기로 제작한 가묘) 등이 있다.

▲ 왕인박사유적지에 있는 천인천자문. 두번째 글자인 ‘地’자를 김대중 대통령이 썼다.

그중 야외에 전시된 천인천자문에 눈길이 머문다. 천자문과 논어를 일본에 전파한 왕인 박사의 뜻을 기려 천자문을 돌에 새기게 했는데, 한국과 중국 일본의 명사 1000명에게 부탁해서 각각 한 자씩 직접 쓴 것을 돌에 새긴 것이다. 

천인천자문을 만들 때 일화가 재미있다. 천인천자문 중 첫 글자인 ‘天’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부탁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첫 글자는 당시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이 쓰는 것이 도리라며 ‘地’자를 쓰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에 바빠서 ‘天’자를 쓰지 못하게 됐다. 이에 ‘天’자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부탁했으나 ‘地’자도 어렵게 썼으니 그대로 새기는 것이 좋겠다며 ‘天’자를 쓰는 것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에 논의 끝에 영암은 왕인박사의 고향이니 영암군수가 ‘天’자를 쓰고 영암군의회의장이 마지막자인 ‘也’자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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