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의 유래 | 방의 사회적·공간적 의미
온돌의 유래 | 방의 사회적·공간적 의미
  • 홍예지 기자
  • 승인 2016.09.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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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한옥 고치는 책1 “대청과 방” - 1. 소개편 CHAPTER 2. 방의 이해 - 1,2 / 글·사진 = 국가한옥센터 auri
▲ 아산 맹씨행단 전경.

1. 온돌의 유래 

북방 주거문화의 특징인 온돌 
[나무신문 | 국가한옥센터 auri] 온돌은 순수 우리말로 ‘구들’이라고 하며, 이는 ‘구운 돌’의 약자로 즉, 온돌은 구운 돌로 바닥을 데우는 난방법을 의미한다. 온돌은 옥스퍼드 사전에도 ‘ondol’로 등재되어 있으며, 2008년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술위원회에서 온돌 국제표준안이 채택 될 정도로 그 우수성이 입증되었다. 

▲ 아산 맹씨행단 전경.

온돌은 한국의 추운 북쪽 지방에서 발달한 방식으로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온돌은 고구려 장갱(長坑)으로 부터 유래되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온돌의 형태는 고려 말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부유층이나 노약자의 방에 사용하였는데 조선 후기에 와서 일반 민가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따라서 하나의 주거 공간 안에 온돌과 마루가 인접하여 나타나는 공간구성은 고려시대에 정형화되었을 것이라 추정하 고 있으며, 이는 충남 아산에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거인 맹씨행단(孟氏杏亶)에서 파악할 수 있다.4) 

▲ 온돌 내부 구성 및 원리.

온돌의 구성 및 원리 
초기의 온돌은 방 전체를 데우는 난방법이 아닌 방의 일부분만 데우는 쪽구들식 난방법이었으나, 고려에 이르러 방 전체를 데우는 현재의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 불기운이 구들장을 데우고, 데워진 구들장이 방바닥을 데워 그 열이 인체에 직접 전달되게 만들어진 난방법이다. 온돌의 원리는 열의 전도와 복사, 대류를 동시에 이용하는 방법으로 아궁이에서 직접적인 열원을 제거한 이 후에도 구들장에 열기가 장기간 축적되어 장기간 난방이 가능해 열효율이 높은 특징이 있다.* 

▲ 전주 양사재 아궁이.

온돌의 내부구조는 크게 직접적인 열원이 발생하는 아궁이와 화기(火氣)가 지나가는 길인 고래로 구성된다.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열기는 부넘기를 지나 고래로 퍼지게 되고 개자리를 지나 굴뚝으로 빠지게 된다. 

부넘기는 아궁이와 고래의 연결부위로서 뜨거운 열이 상승하는 것을 이용하여 열기를 고래쪽으로 빠르고 쉽게 유입시키고, 열기가 다시 아궁이쪽으로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궁이 에서 고래쪽으로 높게 경사를 만든다. 

▲ 고래모습.
▲ 고래 구성 유형.

고래는 구들장 밑으로 열기가 지나가는 길로서 고래의 구성방식에 따라 열효율이 달라지게 되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열기가 지나가는 길의 개수에 따라 1로식, 2로식, 다로식, 다주식으로 구분되며, 고래의 형태에 따라 줄고래, 굽은고래, 선자고래, 허튼고래로 나뉘기도 한다. 

 

2. 방의 사회적·공간적 의미 

▲ 명재고택 안채 전경.

유교 원리에 입각한 공간구성 
온돌보급에 의해 좌식생활이 일반화되었고 이로 인해 실내 가구의 크기 및 공간의 크기 역시 좌식생활에 맞춰지게 되었으며, 아궁이와 가까운 아랫목이 상좌로 되면서 웃어른이나 외부 손님이 올 경우 아랫목에 자리를 마련하는 등 방안에서도 유교에 따른 위계질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생활공간은 자연에 대응하는 거주공간의 한 형태로 나타났 지만, 사회·문화적 의미와 결부되면서 한옥공간의 구성 및 위계에 있어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다. 

우선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통주택은 여러 채의 건물과 많은 공간으로 분화되어 있는데, 이것은 대가족을 수용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유교이념이 생활원리로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물이기도 하다. 특히 내외구별, 장유유서 등 사대부의 성리학적 규범들을 지키기 위해 남녀의 공간이 채로 구분되었는데 남자는 밖에서, 여자는 안에서 생활한다는 성별 분리원칙에 따라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 거주하였다. 안채에는 안방과 건넌방, 안 대청과 부엌, 곳간으로 구성되어 안방은 안주인의 일상 생활공간으로 이용되었고, 건넌방은 큰며느리가 사용했으며, 주택 내 에서 가장 은밀한 공간으로서 직계존속 이외의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되었다. 

▲ 명재고택 사랑채 누마루.
▲ 명재고택 사랑채.
▲ 민칠식가옥 사랑방.

사랑채는 사랑방, 대청과 누마루, 침방과 서고, 그리고 사랑마당으로 구성되는데, 사랑방은 바깥주인의 일상거처일 뿐만 아니라 내객의 접대 및 문객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특히 사랑(舍廊)은 조선 전기에는 사랑(斜廊)으로 불리며, 집 곁에 지은 작은 문간방으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이었다가 조선후기 가부장제 및 내외사상 등 유교이념의 강화로 인해 사랑채가 별개의 채로서 위용을 갖추면서 한자표기도 달라지게 되었다.5) 

서민주택 생활공간의 경우 안방은 식구가 적은 경우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사용하였고, 대가족일 경우 가장 연장자가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경우 노인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할머니가 어린 손자, 손녀와 함께 기거하였으나 홀로된 할아버지의 경우 방을 아들내외에게 넘겨주고 건넌방으로 거처를 옮 겼으며, 사랑방은 주로 홀로 된 할아버지나 장성한 아들이 사용하였다. 또한 접객의 경우, 사랑방이 있는 집은 사랑방에서 손님을 맞이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건넌방에서 손님을 맞이하여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였다. 

▲ 명재고택 사랑채 누마루.

대청공간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의식과 권위를 표현하는 상징 적인 공간인 동시에 안방과 건넌방, 그리고 마당과 방을 연결하는 전이공간으로 기능하였다. 대청의 크기는 조선조 중반까지는 남성중심인 사랑대청이 안대청보다 다소 높고 컸으나, 후기에 이르러 안대청이 가정의 중심이 되면서 그 용도와 크기가 확대되었다. 한편 대청공간은 평소에는 일상의 공간으로 이용되다가 불천위** 제사나 관혼상제에 따른 집안 행사가 있을 경우, 분합문을 통해 인접공간과 마당을 통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기능의 공간으로 이용되었으며, 서민주택의 경우 가사 노동의 공간과 여름철 휴게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공간의 통합적 이용 
한옥의 방은 창문을 열고 닫음으로써 개방성과 폐쇄성 또는 공간의 분할 및 통합이 자유롭게 조절되는 공간적 특성이 있다. 한옥의 입면은 대부분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어놓으면 마당 및 주변 환경을 끌어들여 개방성을 느낄 수 있으며, 닫으면 폐쇄성과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대청과 방에 설치된 분합문의 경우, 평소에는 대청과 방의 공간을 분리하는 벽체 역할을 하지만 집안 행사 등이 있을 때는 분합문을 들어올려 방과 대청을 통합하여 넓은 공간으로의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 학사재 대청과 방의 개방과 폐쇄. Ⓒ김도경
▲ 학사재 대청과 방의 개방과 폐쇄. Ⓒ김도경

이러한 방의 공간적 특성은 여름과 겨울의 상반된 계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방과 폐쇄라는 공간의 성격 전환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 결정체가 앞서 언급한 온돌과 마루의 공존이며, 공간의 분할 및 통합을 용이하도록 하기위해 창문의 형식이 발달하였다. 이를 통해 더운 계절 에는 벽이 없는 개방적 공간이 만들어지고 겨울에는 개별공간들로 전환될 수 있었다.  

 

* 구들장에 직접적으로 온도가 전 달되는 것은 열의 전도현상, 구들 장과 구들장 아래를 데워 발생하 는 열을 이용하는 것은 간접 복사, 바닥의 온도로 방의 공기를 데우는 것은 대류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 불천위(不遷位)는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학행이 높은 위(位)에 대 해서는 가문은 이를 기리기 위해 영 원히 위를 모셨는데 이를 불천위 또 는 부조위라고 하며, 매년 기일에 제사를 올리는 것을 불천위 제사 라고 한다.

참고문헌
4) 새로 쓴 한국 주거문화의 역사, 강영환, 기문당, 2002, p.67
5) 한옥의 공간문화, 한옥공간연구회, 교문사, 2004, p.51

자료제공 = 국가한옥센터 auri
(이 기사의 저작권은 국가한옥센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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