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에 살던 사람들
유달산에 살던 사람들
  • 나무신문
  • 승인 2016.09.0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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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목포 유달산둘레길
▲ 자생식물원 유리온실과 유달산 철거민탑.

#여행 #장태동 #목포  #유달산  #둘레길  #김대중  #독립운동  #목포의눈물  #이난영

유달산공영주차장 위 유달산순환도로에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유달산 둘레 4.7㎞를 한 바퀴 도는 유달산둘레길이 그곳에서 시작된다. 유달산둘레길에는 유달산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을사신춘유감’
유달산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 위 유달산일주도로로 올라간다. 유달산둘레길로 들어가는 입구가 도로 건너편에 보인다. 

▲ 유달산둘레길 시작부분.

유달산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에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도로 옆 숲길이라 자동차가 오갈 때면 차 소리가 들리지만 숲이 하늘을 가려 숲 향기가 제법 난다. 

이 길에서 처음 만나는 옛 사람의 흔적은 목포시사다. 이곳은 1890년에 여규향, 허석제, 박만취 등이 유산정이라는 집을 짓고 시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지금 남아 있는 집은 1907년에 정만조가 지은 것이다. 

이곳은 지금도 한시백일장을 열고 있을 만큼 예부터 지금까지 한시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은 한시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1965년에 <을사신춘유감>이라는 제목의 한시를 지었다. 그 한시를 적은 안내판이 목포시사 앞 길가에 있다. 한글로 옮긴 <을사신춘유감>을 적는다.

[부끄러운 재능으로 선량에 천거되어/약장에 공적 없이 두 해가 지났구려/축록에 재주 모자람 스스로 알았지/고기 잡는 통발 이미 잊은 건 아니라오/풍진 의구하여 나랏일 걱정/세월 따라 새봄 맞아 고향생각 난다오/어찌하면 청제처럼 덕을 베풀어/사방 이웃에 골고루 따스한 향기를 나눠 줄꼬] -1965년 목포시사 발행 <목포풍아집>-

목포시사를 지나면 ‘3.1독립운동탑’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1일 서울 평양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독립만세운동은 확산되어 3월2일 다른 도시에서도 일어났다.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미리 계획된 거사였다. 목포의 독립만세운동은 4월8일에 일어났다.       

▲ 3.1독립운동탑

사람이 살았었네!
3.1독립운동탑 다음에 달성사가 나온다. 달성사는 1915년 노련대사가 세웠다. 오래된 절은 아니지만 이곳에는 신비한 우물, ‘옥정’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위에 30척 깊이의 구멍을 뚫어서 만든 샘이 ‘옥정’이다. 100일 만에 샘물이 솟아올랐다고 전해진다. 부정한 사람이 우물을 사용하면 우물물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달성사 우물.

높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절이지만 절 마당에 서면 목포시내가 보인다. 절 마당에서 잠깐 쉬었다 출발한다. 

유달산철거민탑이 여행자를 반긴다. 유달산에 많은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었다. 지금도 죽교동, 온금동 등의 일부는 유달산자락에 걸쳐 있다. 

▲ 달성사 삼성각
▲ 달성사 삼성각에서 본 풍경. 절집 기와지붕 사이로 목포시내가 보인다.

1970년대 후반에 유달산에 공원을 만들면서 산에 살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588세대가 유달산을 떠났다. 사람들이 살던 집에서 나온 돌로 1979년에 두 개의 탑을 쌓고 유달산철거민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달산철거민탑은 3.1독립운동탑을 지나서 하나 있고, 자생식물원 유리온실 앞에 또 하나 있다. 

자생식물원 정자에 서면 양을산, 입암산, 삼학도, 노적봉 등과 함께 목포시내가 보인다. 전망을 즐긴 뒤 걸음을 옮기면 바로 조각공원이 나온다. 공원에 있는 조각들을 구경하면서 잠시 쉰다.  
 

▲ 달성공원 정자에서 본 노적봉
▲ 유달산 철거민 탑

바다를 보며 걷는 길
조각공원을 뒤에 두고 걷는 길에 돌담의 흔적이 보인다. 옛날에 이곳까지 올라와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다. 옛 사람들이 살던 돌담 앞 길가에 작은 꽃이 피었다. 

우거진 숲길을 걷다보면 시야가 트이는 곳이 나온다. 바다가 보인다. 옛날에 뒷개(뒤에 있는 포구)라고 불리던 곳에 지금은 북항이 들어섰다. 

▲ 길을 걷다보면 바다가 보이는 곳이 나온다. 멀리 목포대교가 보인다.

바다를 보고 걷는 길에서 샘터를 만났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샘물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유달산에 살던 사람들의 생명수였다. 20~30년 전까지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길은 낙조대로 이어진다. 낙조대 정자에 올라 풍경을 감상한다. 육지와 고하도를 잇는 목포대교가 한 눈에 보인다. 항구로 돌아오는 배가 고하도 옆 목포대교 아래를 지나는 풍경이 운치 있다. 

▲ 낙조대에서 본 목포대교

낙조대라는 이름만큼 이곳은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고 먼저 와서 쉬고 있는 마을사람이 이야기 한다. 남은 길이 있어 해지는 풍경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다시 길에 나선다. 

유달산둘레길에서 가장 높은 아리랑고개를 넘는다. 고개라고는 하지만 해발 100m 정도 되는 곳이다. 

▲ 옛 제2수원지

아리랑고개를 넘으면 일제강점기에 수원지였던 곳이 나온다. 1985년까지 사용하다가 폐쇄했다. 
유달산 기슭에 자리잡은 조용한 마을을 지나면 유달산휴게소가 나온다. 유달산휴게소는 갈림길에 있다. 가던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출발했던 곳이 나온다. 유달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노적봉 방향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유달산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은 건 순전히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 때문이었다. 

유달산휴게소 위에 ‘이난영 노래비’가 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듣고 그냥 돌아서서 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중에 떠다니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계단을 오른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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