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사람들
기찻길 옆 사람들
  • 나무신문
  • 승인 2016.08.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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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동해 바다 열차와 해파랑길 33코스
▲ 해변의 기찻길.

#여행 #장태동 #강원도 #동해 #바다열차 #해파랑길33코스

강원도 동해 묵호역에서 추암역까지 바다 열차를 타고, 추암역에서 묵호역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33코스 13.3㎞를 걷는다.  

식후경
바닷가에 놓인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유리창 밖 해변 풍경을 즐기는 바다 열차를 타기로 했다. 

▲ 바다열차를 타고 바깥 풍경을 즐긴다.

바다 열차는 정동진역에서 삼척역을 오간다. 원래는 강릉역에서 출발하지만, 강릉역 사정상 정동진역에서 출발한다. 대중교통으로 정동진역까지 접근하기 어려워 묵호역에서 바다 열차를 타기로 했다. (바다 열차는 예약을 해야 한다. 당일이었지만 자리가 비어있어서 전화로 예약하고 입금을 하는 식으로 예약을 마쳤다) 

바다 열차 승차 시간이 남아서 식당으로 향했다. 강원도와 충북 북부지역에서 유명한 음식이 만두와 장 칼국수다. 개인적으로 만두와 장 칼국수를 다 좋아한다. 

만두는 집에서 담근 김치로 만든 김치만두가 최고이며, 장 칼국수는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푼 것이어야 한다.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집이 오뚜기칼국수집이었다. 

▲ 오뚜기칼국수의 장칼만둣국.

식탁에 나온 ‘장칼만둣국’의 뻘건 국물만으로도 침이 솟는다. 만두를 건져 한입 크게 베어 문다. 잘 익은 김치의 향과 칼칼하게 매운맛이 입안에 퍼진다. 씹을수록 우러나는 김치만두의 맛을 느끼고 뜨거운 장 칼국수 국물을 한술 뜬다. 숟가락을 멈출 수 없다. 연거푸 이어지는 숟가락질에 잘 익은 고추장으로 낸 국물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만두를 다 먹은 뒤 면발을 건져 올린다. 한 젓가락 길어 올린 면발을 입에 넣고 흡입한다. 빨려드는 면발의 촉감을 입술로 느낀 뒤 씹는다. 밀가루 향기가 고추장 향기와 섞인다. 또다시 국물을 몇 숟가락 뜬다. 

이런 국물 앞에서 공깃밥을 시키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집에서는 밥그릇에 반 정도 밥을 퍼서 기본으로 상에 낸다. 숱한 시절 손님과 주인의 소통을 통해 ‘공기밥 반 공기’의 정석이 뿌리내린 것이다. 이렇게 다 해서 4000원이다. 

▲ 바다열차.

바다 열차 
플랫폼에 서면 설렌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다른 기분이다.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를 플랫폼에 서서 본다. 기차가 멈추고 사람들은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출발한다. 무슨 이별을 하는 냥 텅 빈 플랫폼을 바라본다. 

창밖 풍경에 바다가 있다. 바다와 바다 사이에 마을이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길이 있다. 기찻길 옆 밭이 푸르고 산도 푸르다. 낡은 집 몇 채도 풍경처럼 서 있다. 

땡볕보다 뜨거운 열기에 허리 굽혀 일하는 농사꾼의 한낮이 만들어내는 사실주의 생활이 기차 안에 있는 내게는 낭만주의 풍경으로 느껴진다.  

종착역인 삼척역 전에 추암역이 있다. 해파랑길 33코스의 출발지점이 추암역이기 때문에 추암역에서 내린다. 

묵호역에서 추암역까지 바다 열차를 타고 온 길 만큼 추암역에서 묵호역까지 걷는 것이다. 출발 전에 추암역 앞 추암해변을 돌아본다. 

▲ 추암해변 기암절벽.

추암해변은 촛대바위로 유명하다. 옛날 텔레비전 방송이 끝나거나 시작할 때 나오는 애국가의 배경 화면 중 하나가 추암해변 촛대바위 일출 장면이었다. 지금도 촛대바위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추암해변에는 기암절벽이 있다. 타오르는 불꽃을 닮은 바닷가 기암괴석 앞에서 사람들은 잠시 멈추었다 간다.

▲ 추암해변 촛대바위.

추암해변에서 나오는 길옆에 낡은 한옥 한 채가 보인다. 고려 시대인 1361년(공민왕 10년)에 삼척 심 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지은 해암정이다.  

▲ 해암정.

해암정을 지나 추암해변을 드나드는 문 역할을 하는 굴다리를 통과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해파랑길 33코스를 걷는다. 

▲ 추암해변.

바다와 냇물과 논과 밭과 뒷골목을 지나며
기차가 오가는 굴다리를 지나 우회전한다. 도로 옆 가로수길에 소실점이 찍힌다. 지루함을 느낄 때쯤 길은 동해시 하수종말처리장 안으로 들어간다. 하수종말처리장을 통과해서 문을 나가자마자 우회전한다.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 풍경을 기대했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널브러진 공사 자재였다. 길은 그 뒤로 이어진다.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 전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
▲ 전천.

마고암의 전설이 내려오는 조형물을 지나면 동해시를 통과하며 흘러온 전천이 바다와 만나는 물길이 나타난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북평5일장터를 만났다. 장터는 물론이고 이면도로와 큰 도로가에도 장이 선다. 북평5일장은 태백 정선 삼척 동해 등 인근 지역에서 큰 장이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곳이기 때문에 산에서 나는 것들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에 공산품, 특산물까지 더해진 장이었다. 지금도 농산물 수산물 약초 토속품 공산품 등은 물론이고 길가에 크고 작은 옹기전도 서고 골동품 장사치도 보인다. 

▲ 기찻길과 논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장구경’을 더 하고 싶었지만 비구름이 모여들고 날이 흐려진다. 장터를 뒤로하고 전천 둔치길로 내려섰다. 해파랑길 이정표를 따라 낮은 다리를 건넌다. 도로를 건너고 고가다리, 컨테이너 아래로 난 길을 간신히 찾아 걷는다. 

기찻길 옆 고랑 긴 밭에 부부가 앉아 일한다. 흙투성이 신발에 긴팔 옷이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썼다. 장막을 친 구름에 세상이 다 온실이다. 등에 약통을 맨 아저씨가 손잡이를 움직이며 펌프질을 한다. 밭에 무엇인가 뿌리고 있다. 간혹 지나가는 열차와 함께 기찻길 옆 옥수수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만 한가하다.  

▲ 추암해변으로 드나드는 굴다리.

동해역 앞 편의점에서 냉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걷는다. 해군부대 앞을 지나 굴다리를 통과한 뒤 우회전하면 솔밭길이 나온다. 

▲ 솔밭길.
▲ 소나무 아래 의자에서 쉬었다 간다.

도로와 기찻길 사이에 솔밭길이 있다. 솔밭길이 끝날 무렵 정자가 있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해변과 기찻길, 도로와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로 들어온 바다의 원호를 따라 기찻길도 굽어지고 도로도 굽어 흐른다. 전망 좋은 곳에서 내려와 하평건널목을 건넌다. 

▲ 하평 건널목 건너서 바라본 풍경.

묵호역에서 바다 열차를 타고 지나쳤던 그 건널목이다. 건널목 옆 기찻길에 꽃이 피었다. 종이 울리고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간다. 멀리서 바다 열차가 달려온다. 묵호역으로 달려가는 바다 열차 뒤에 바다가 따라온다. 나는 그 바다 향기를 쫓아 묵호역까지 걷는다. 

▲ 2000원 짜리 비빔국수.

묵호역에 도착할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른 점심을 먹었던 오뚜기칼국수집 앞 도로 건너 시장 초입 오른쪽에 있는 까치분식으로 들어갔다. 비빔국수를 시켰다. 2000원이다. 미안해서 잔치국수도 시켰다. 1000원이다. 땀에 흠뻑 젖은 몰골로 국수를 먹는 나를 지켜보던 아줌마가 물병에 시원한 냉수를 채워 가라신다. 또 미안해서 찐계란은 얼마냐니까 4개에 1000원이란다. 뭘 키시면 그 게 더 미안한 식당이 이곳에도 있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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