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 나무신문
  • 승인 2016.08.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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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평창 오대산 노인봉
▲ 노인봉 가는 길 초반부 고원 평원.

#여행 #장태동 #강원도 #오대산 #평창

엊그제 일 같은데 그게 벌써 4~5년이나 됐구나! 4~5년 맞나?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러니까 일은 그렇게 시작 된 것이다. 

노는 사람들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다가 접은 사람 A, 국내에서 사업을 하다가 쉬게 된 사람 B, 학원에서 일하다가 일을 놓은 사람 C, 그리고 일 있을 땐 프리랜서고 일 없으면 백수인 나, 이렇게 넷이 모이다 보니 우연치 않게 무슨무슨 모임 아닌 모임이 된 거다. 

나야 십여 년 전부터 ‘반 백수’였지만 셋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다 일손을 놓은 거다. 

좋게 말하면 다음 사업을 위한 준비 기간이자 그동안 고생한 자신의 몸과 마음에게 주는 휴가인 셈이고 그냥 막 말하면 ‘좀 놀자’였다. 

우리들은 평일 주말 낮 밤을 가리지 않고 누구 하나가 “야! 어디어디로 몇 시까지 모여”하면 그 한 마디에 어디로든 떠났다. 

이른바 우리는 ‘노는 사람들’이 되었고 그렇게 떠돌았다. 그런데 모여서 보니 네 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 거였다. 모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체형의 ‘우량아?’가 아니라 ‘우량어른’이었다. 

옛날 쌀 한 가마니의 무게를 기준으로 봤을 때 기준점을 넘어 상당히 상회하는 무게의 ‘우량어른’들이 모여서 한다는 일이 자가용을 타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들쑤시고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에 동서고금을 막론한 주(酒)님을 영접하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만나면 만날수록 날씬(?)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더 우량해지는 거였다. 그날도 이것저것 음식을 시키고 엄청 먹어대고 있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자신의 신체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스스로 발톱을 깎을 수 없다느니, 사우나에 들어가면 답답하고 죽을 거 같아서 1분도 못 버틴다느니, 코골이에 무호흡 증상까지 더해져 옆에서 자는 사람을 놀라게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느니... 

혈압 수치와 당 지수 이야기 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말들이 수 없이 쏟아졌다. 좀처럼 끊이지 않을 것 같은 말 중간에 누가 이렇게 외쳤다. “야! 산에 가자” 그렇게 노는 사람들의 산행은 시작 되었다. 

▲ 고원 평원.

산사람이 되는 듯 했다
한 사람은 군대에 있을 때 산악구보의 달인이었다며 너스레를 떨고, 나는 소싯적에 ‘지리산 다람쥐’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머지 둘은 안 그래도 요즘 동네 뒷산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꺼냈다. 

호기 좋게 찾아간 관악산에서 넷은 퍼졌다. 정상은 아예 꿈도 꿀 게 아니었다. 중턱도 못가서 퍼졌다. 퍼진 게 아니라 아예 퍼질러졌다. 산악구보의 달인도 지리산 다람쥐도 마찬가지였고 동네 뒷산을 다녔다던 두 명이 간신히 살아남아 완전히 퍼질러진 둘에게 커피도 타 주고 먹을 것도 건네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산행은 ‘죽기살기’의 산행이 되었고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산을 올랐다. 어떨 땐 연속 이틀 삼일 산을 찾았다. 그래도 정상은 쉽게 넘볼 일이 아니었지만 고도를 조금씩 높여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관악산 정상에 첫발을 디디는 날이 왔다. 관악산 정상에 처음 올랐던 그 순간 바람이 온 몸을 애무하며 지나가는데, 그 느낌이 그 촉감 그 향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북한산을 밟았고 경기도 권으로 넓혀서 운악산, 명지산, 축령산, 예봉산~운길산 등등... ‘노는 사람들’이 ‘산사람’이 되는 듯 했다. 

다시 오대산
산에 다니면서도 먹을 것 다 먹고 마실 것 다 마셨다. 산에서 내려오면 산 아래 식당에 들러 배가 터지도록 먹고 취하도록 마셨다. 그게 일이었고 그게 좋았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그렇게 먹고 놀았던 거다. 

노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다행히 술을 못 먹기도 하고 안 마시기도 했으므로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도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먹고 놀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해를 두 번 넘겼고 그 사이에 노는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자기 일을 찾았다. 간혹 만나기는 했으나 서울이 고작이었고 산이 아니라 술집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연통이 날라 왔다. “야! 오대산 가자”

생업전선에서 지친 사장님들이 날린 SOS 신호였다. ‘새벽 5시20분, 서울 모처로 집결’. 곤지암에서 ‘소머리국밥 특’으로 이른 아침을 한 그릇씩 먹고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30분. 

▲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서 노인봉 가는 길 입구.

매점에서 물과 음료 간식꺼리를 잔뜩 사서 배낭에 넣고 출발. 왕복 8km, 고도차 500m 정도 되는 산행에 비하면 먹을 것이 과했다. 

‘산사람’이 될 뻔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해발 900m에 펼쳐진 산 속 평원지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는 데 벌써 ‘헉, 헉’ 대기 시작한다. 

▲ 노인봉 가는 숲길.

초반부터 등장한 가파른 계단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퍼질러졌던 관악산 그 산길이 생각났다. 그때는 나와 또 다른 한 사람이 그렇게 퍼질러졌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이 그 지경이 되기 직전이다. 

5분 걷고 5분 쉬기를 반복하며 억지로 계단을 올랐다. 급기야 “야! 니네 갔다와라 난 여기서 쉴테니!”란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을 봤다. 그 말이 안 나올 수 없는 얼굴이었다. 

▲ 노인봉 정상 하늘을 나는 까마귀 두 마리.

관악산에서처럼 물과 음료를 마시며 충분히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아마도 그때 숨이 트인 것 같다. 몸이 산을 기억하는 지 조금씩 정상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오대산 노인봉 정상에 섰다. 한참 동안 정상에 부는 바람을 즐겼다. 관악산 정상을 처음 밟았을 때처럼. 

▲ 노인봉 정상에서 본 풍경.
▲ 노인봉 정상에서 본 풍경.사진 좌측이 대관령풍력발전단지 풍차다. 오른쪽 산 정상이 황병산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누구는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고 발뒤꿈치에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얼굴은 오대산 공기처럼 해맑게 빛났다. 

▲ 하산길에 만난 꽃.

벌써부터 배가 고픈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진고개에서 강릉방향으로 차를 달리다가 고개길 옆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노는 사람들’이 한참 놀고다닐 때 언제나 그랬듯이 ‘밥 추가 반찬 추가’를 외치는 소리가 오대산 자락에 가득했다.

▲ 진고개 정상 휴게소로 내려가는 길.
▲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
▲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산채비빔밥.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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