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뚫고 만난 바닷가 마을
비바람 뚫고 만난 바닷가 마을
  • 나무신문
  • 승인 2016.07.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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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북 영덕 해파랑길21코스
▲ 해안절벽을 따라 걷다가 만난 작은 백사장.

#여행 #영덕 #대게 #해파랑길

영덕의 일출 명소 영덕해맞이공원을 출발해서 대탄리, 오보해변, 노물리, 석리, 경정리, 죽도산전망대를 지나 축산항에서 끝나는 해파랑길21코스 12.8㎞를 걷는다. 이 길에서 바닷가 절벽, 솔숲, 바닷가 작은 마을과 포구 그리고 백사장을 만난다. 

비바람 속으로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했는데 영덕에 도착하니 점심 먹을 때가 다 됐다. 영덕버스터미널 주변에 있는 몇몇 식당 가운데 눈에 띄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대게 마을 영덕의 자부심인가? 짬뽕에 작은 게 한 마리가 떡하니 올라갔다. 게살이 적었지만 국물로 스며든 게 향으로 만족했다. 

▲ 보통 짬뽕에 작은 게 한 마리가 들어간다.
▲ 대게원조마을 비석.

짬뽕을 먹는데 중국집 현관문이 바람에 흔들린다. 밖이 어두워진다. 일기예보에 강수확률 30%였는데 그 30%에 딱 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출발지점인 영덕해맞이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있지만 버스시간을 기다리기에 날씨가 심상찮다. 택시를 탔다. 

▲ 먹구름은 더 낮게 내려오고 비바람이 분다.

먹구름은 더 짙어지고 바람도 거세진다. 택시에서 내리는 마음이 분주하다. ‘에이, 엿됐네!’ 이 한마디로 일기예보 탓은 마무리하고 바람 앞에 섰다. 

영덕해맞이공원의 상징인 창포말등대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길 오른쪽에 해파랑길21코스 출발지점이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간다. 바닷가 갯바위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 영덕 해맞이공원. 창포말등대.

망망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걷는다. 길은 갯바위와 바닷가 절벽을 오르내린다. 부서진 바위가 널브러진 곳에서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거대한 바위가 머리를 내밀었다. 고개를 숙여 길을 지나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에는 계단을 놓았다. 벌써부터 온몸이 다 땀으로 젖었다. 

▲ 바다 절벽을 오르내리며 걷는다.

바람을 버티며 걷는데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열기 오른 얼굴이 시원하다. 땀과 빗방울이 섞여 얼굴 타고 흘러내린다. 말 그대로 이제부터 비바람을 뚫고 걸어야 한다. 

바닷가 포장마차
오히려 그 편이 좋았다. 절벽 솔숲을 지나는 바람이 ‘훙훙’ 소리를 낸다. 바람은 길을 잃고 숲 전체를 훑고 지난다. 빗방울은 숲에 맺힐 새도 없이 소나무 가지 사이로 화살처럼 떨어져 내린다. 달아오른 몸을 비바람이 식혀준다. 

시원하고 통쾌하다. 솔숲을 나서서 절벽에 난 길을 걸을 때는 비바람 앞에 온몸이 노출된다. 

▲ 바닷가 갯바위. 사진 중앙부에 바다에서 솟은 작은 봉우리가 죽도산이다.
▲ 길은 바닷가 절벽으로 계속 이어진다.

갯바위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파도의 포말이 바람을 타고 절벽 위까지 날린다. 땀과 비 바람에 이어 포말까지 얼굴을 적신다. 모자 끈을 조이고 얼굴을 찡그리며 그 모든 것을 밀면서 걷는다. 

대탄리 바닷가에 작은 건물이 보인다. ‘행복포차’라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내가 알고 있는 포장마차 가운데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포장마차였다. 

▲ 바닷가 포장마차.

‘바다’와 ‘포장마차’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촉촉해 지는데 실제로 내 앞에 ‘바다’와 ‘포장마차’가 나란히 있는 것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소주 한 잔 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어 그냥 지나친다. 아쉬움을 뒤에 두고 걷는 길 앞에 비바람이 잦아든다.

차가 다니는 길을 걸어야 하지만 바다가 옆에 있어 걸을 만 했다. 오보해변, 노물리를 지나는 길에 바닷가 작은 집들이 옹송옹송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 바닷가 절벽에 놓인 계단.

노물리를 지난다. 길은 바닷가 언덕을 거쳐 다시 기암괴석이 펼쳐진 바닷가로 이어진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길이 바닷가 몽돌해변으로 났다. 비가 많이 올 때는 갯가에 냇물이 생겨 길을 돌아가야 한다. 잠시 길 위로 올라갔다가 해변으로 내려온다. 

바닷가 절벽으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비바람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열린다. 길도 더 이상 절벽으로 내닫지 않고 평온한 마을과 백사장으로 이어진다. 

▲ 바닷가 작은 포구가 있는 마을.

죽도산전망대에 오르다
비바람 몰아치던 절벽의 길을 걷다가 파란 하늘 아래 백사장과 도로를 걷고 있으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 블루로드다리를 건너 죽도산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걸어 대게로 유명한 경정리 마을을 지난다. 마지막 숲길을 지나면 백사장이 나온다. 죽도산전망대로 가는 블루로드다리를 건넌다.   

▲ 죽도산전망대로 올라가다가 뒤돌아 본 풍경. 저 멀리 바다로 나온 산기슭이 출발지점인 영덕해맞이공원이다.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에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지나온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영덕해맞이공원 산기슭에 있는 풍차가 보인다. 거대한 풍차가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다. 

전망대 주변 난간에서 축산리와 축산항을 본다. 오후의 햇볕이 마을과 항구, 바다와 시냇물에 골고루 퍼진다. 반짝이지 않는 곳이 없다.     

목이 마른데 물병은 비었다. 물 한 모금 참고 이렇게 서서 풍경을 바라보며 살랑거리는 바람과 온화해진 햇볕을 즐긴다. 

▲ 죽도산과 전망대. 전망대에 올랐다가 축산항으로 내려가면 된다.

축산항으로 내려가는 길에 낮달을 보았다. 오후의 항구에 고깃배 한 척이 들어와 짐을 부린다. 예닐곱 명의 사내들과 아줌마 몇 명이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낡은 항구의 오후가 그렇게 기울어 가고 나는 항구의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오늘 여행을 마무리 한다. 

▲ 죽도산전망대에서 본 축산리.
▲ 죽도산전망대에서 본 축산항.

영덕버스터미널로 가는 농어촌버스의 막차가 끊겼다. 식당 보다 다방이 많은 항구 옆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가 철 지난 대구탕 한 그릇으로 저녁을 먹는다. 이제야 소주 한 잔 넘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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