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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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6.07.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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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남 논산
▲ 계백장군유적지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

#여행 #논산 #충남 #돈암서원 #충곡서원 #계백장군 #휴정서원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서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휴정서원까지 걷는다. 약 6㎞ 정도 되는 이 구간에 충곡서원과 계백장군유적지, 탑정호수변생태공원이 있다. 계백장군유적지에는 계백장군의 묘도 있다. 

▲ 돈암서원 응도당.

돈암서원
조선 말엽 고종 임금 집권 시기에 흥선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린다. 전국의 서원이 다 철폐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곳이 논산의 돈암서원이었다. 

▲ 돈암서원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

논산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돈암서원앞’ 정류장에서 내린다.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들판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 뒤로 겹겹이 겹쳐진 기와지붕이 보인다. 돈암서원이다. 

돈암서원은 조선시대 사람 사계 김장생을 모신 곳이다. 김장생은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을 스승으로 두고 예학과 성리학 등을 두루 익혔다. 그는 조정에 있으면서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계축옥사 등 환난의 시대를 산 인물이다. 현재 돈암서원에는 김장생과 함께 그의 아들 김집과 송준길, 송시열 등을 추가로 모셨다. 

▲ 돈암서원.

서원 경내에 건물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한 건물이 눈에 띈다. 보물로 지정된 응도당이다. 응도당은 1633년(인조 11년)에 건립됐다. 학문을 익히던 강당이었다. 원래 서원이 있던 옛 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 자리에 옮겨지었다.  

▲ 돈암서원 전사청 대청마루와 창문.

전사청으로 들어서는 데 초등학교 학생들이 건물을 청소하고 있다.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모양이다. 평소에는 전사청 대청마루 창문을 열어 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날은 아이들이 청소를 해야 하기에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활짝 열린 대청마루 창문 밖은 전사청 뒤안이다. 푸른 풀밭에 망초꽃이 피어났다. 그런 풍경이 열어 놓은 창문에 갇혔다. 풍경에 틀이 생겼다. 틀이 되는 대청마루 창문과 그 틀 안에 걸린 풍경이 서로 간섭하며 또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돈암서원에서 나와 담장을 따라 우회전한다. 담장 모퉁이 앞에 휴정서원, 충곡서원, 백제군사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간다. 돈암서원 담장과 개망초꽃 피어난 들판 사이로 길이 났다. 길은 산으로 접어든다. 오르막길을 올라서서 가다보면 충곡서원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충곡서원으로 내려간다. 

▲ 산길에 피어난 개망초꽃.

충곡서원에서 계백장군유적지까지  
충곡서원이 있는 충곡마을로 가는 길 산기슭 밭 옆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그 옆에 원두막이 자리잡았다. 

밭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는데 커다란 나무가 여행자를 반긴다. 나무를 지나 오른쪽 길로 조금만 더 가면 충곡서원이 나온다. 

▲ 충곡서원.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 건립한 충곡서원은 백제의 명장 계백장군을 모신 것이 특징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 철폐되었다가 1933년에 재건했다. 이후 소멸 됐다가 1977년에 복원했다. 

계백장군과 함께 조선시대 사육신도 모셨다. 세조(수양대군)가 조카인 단종을 왕에서 몰아내고 왕이 됐을 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죽은 사람들을 사육신이라고 하는데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 등이 그들이다. 지금은 11명의 현자를 추가로 모셨다.   

충곡서원까지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걷는다. 원두막과 커다란 나무가 있는 풍경을 지나 다시 산으로 들어가서 백제군사물관 방향으로 걷는다. 

▲ 계백장군유적지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
▲ 계백장군유적지에서 탑정호수변생태공원으로 가는 길.

백제군사박물관이 있는 곳을 통틀어 계백장군유적지라고 부른다. 그곳에는 계백장군 묘와 사당(충장사),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계백장군을 형상화한 상 등이 있다. 

660년 음력 7월, 황산벌에는 죽음을 각오한 백제군사 5000명이 있었다. 그들이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5만 명의 나당연합군이었다. 

강력한 백제와 거대한 제국 고구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게 된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군이 계백의 백제군과 대치하고 있던 곳이 황산벌이었다. 

▲ 계백장군 묘.
▲ 계백장군 사당.

황산벌에서 벌어진 다섯 번의 전투 중 네 번의 전투에서 백제군은 승리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 전투에서 계백은 전사하게 된다.   

백제군사박물관에 들러 계백장군의 황산벌 전투 이야기와 백제의 군사활동, 백제의 무기, 논산의 역사를 살펴본다. 

▲ 휴정서원.

휴정서원에서 여행을 끝내다
계백장군유적지에서 탑정호수변생태공원으로 간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탑정호수변생태공원이 나온다. 

연못과 습지에 수생식물들이 한여름 햇볕을 받으며 초록빛을 발산한다. 흙길의 흙냄새와 연못의 물비린내, 그리고 그곳에서 자라는 푸른 생명의 향기가 추억에 남아 있는 시골마을 시냇물 반짝이던 여름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 휴정서원이 있는 신풍리 마을 빈집.

햇볕이 기울어 그림자가 길어진다. 탑정호수변생태공원에서 나와서 큰길에서 우회전한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지만 길 가에 펼쳐진 푸른 논이 있어 팍팍하지만은 않다. 

도로에서 신풍마을로 들어선다. 신풍리 마을회관 앞으로 지나서 조금만 가면 휴정서원이 나온다. 

휴정서원은 1700년(숙종 26년)에 창건됐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없어졌다. 1919년에 서원을 다시 세웠다. 1944년 탑정호가 생기면서 서원이 있던 원래 자리가 수몰됨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서원에서 신풍리 마을회관으로 나오는 길, 길가 빈집 녹슨 대문 사이로 풀꽃 무성하게 자라난 마당이 보인다. 내가 빼꼼 열린 대문 사이로 들여다보는 줄 알았는데 풍경이 그 틈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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