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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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6.06.28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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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탑골공원과 수운회관

#여행 #장태동 #서울 #탑골공원 #원각사지삼층석탑 

▲ 탑골공원 정문.

중년의 남자들과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이 모여 소일하는 탑골공원은 1919년 3월1일 수천 명의 민중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곳이며 국보 제2호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탑골공원에서 약 600m 거리에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수운회관이 있다. 이곳은 1919년 독립선언문을 나누어주던 곳이며 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 사회개조와 항일의식 고취를 내걸고 신문화운동을 펼쳤던 월간지 <개벽>을 발행했던 곳이다. 

탑골공원에서 인사동을 거쳐 수운회관까지 돌아본다.

▲ 원각사지십층석탑. 국보 제2호다.

국보 제2호과 보물 제3호
탑골공원 정문으로 들어간다. 의암 손병희 동상과 독립선언서가 새겨진 3.1운동 기념탑 등이 보인다. 

손병희 동상을 지나면 팔각정이 나온다. 그 뒤에 국보 제2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이 거대한 유리구조물 안에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세조가 세운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다. 1465년(세조11)에 흥복사 터를 확장해서 원각사를 세웠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절이 있었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탑은 절을 세우고 2년 뒤에 만들었다.

기단은 亞(아)자 모양으로 세 겹이다. 용과 연꽃 무늬를 새긴 기단이 있고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인도에서 불법을 구해 오는 과정도 새겼다. 법회 장면을 조각한 것도 있다. 지금은 10층 석탑으로 부르지만 기록에는 13층 석탑으로 나온다. 

▲ 원각사지십층석탑. 석탑 곳곳에 부처상을 양각했다.

보물 제3호로 지정된 대원각사비도 있다. 이 비석은 1471년(성종2)에 성종이 세조가 원각사를 창건한 경위를 새겨 세운 비석이다. 비석 전체 높이가 5미터 가까이 된다. 

▲ 보물 제3호로 지정된 대원각사비.

공원에는 이밖에도 원각사 탑 주위를 호위하던 신장상, 보살상으로 추정되는 석재유구가 있다. 

▲ 탑골공원 석재유구.

‘복청교’라고 음각된 석재가 있는데, 복청교는 현재 광화문우체국 부근에 있던 다리다. 원래 이름은 혜정교였다. 혜정교는 탐관오리를 공개처형하던 곳이었다. 1926년 혜정교를 개축하면서 이름을 복청교로 바꾼 것이다. 

민중의 함성으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
공원 가운데 있는 팔각정은 1902년(광무6)에 지었다.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3호다. 

시인이자 스님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만해 한용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만해용운당대선사비’도 있다.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과 만해 한용운 선생의 비석, 3.1운동 기념탑 등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3.1만세운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919년 3월1일 낮 12시 탑골공원에 학생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민중이 모인다.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민중의 대열을 총칼로 제압하는 일제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공원 한 쪽에 있다. 

보국안민 광제창생
탑골공원을 나와 수운회관으로 가는 길에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는다. 인사동에 가면 들르는 식당 중 한 곳인 툇마루집에서 강된장비빔밥을 먹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바람 덕에 밭일 끝내고 앉아있는 원두막을 떠올려 본다. 

▲ 인사동 툇마루집 강된장비빔밥.

식사를 마치고 수운회관에 도착했다. 수운회관 안쪽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 천도교 중앙대교당이다.

▲ 천도교 중앙대교당.
▲ 천도교 중앙대교당 내부 모습.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의 뜻으로 일어선 동학이 1905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다. 당시 천도교 교조는 손병희였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손병희의 주관 아래 1921년 완공 됐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옆 빌딩이 수운회관이다. 이곳은 천도교소년회 사무소 터다.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김기전과 방정환을 중심이 되어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기반으로 어린이의 인격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어린이라는 말도 어린이날도 이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다. 수운회관 정문 옆에 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를 알리는 비석이 있다. 

▲ 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 비석과 수운회관.

수운회관 정문 기둥에는 개벽사가 있었던 곳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었다. 1920년 천도교에서 사회개조와 항일사상 고취 등을 내세우며 만든 잡지 <개벽>을 발행한 곳이다. 

이곳에서 계급주의 경향의 김기진과 박영희 민족주의 경향의 현진건 염상섭, 어린이를 위한 삶을 살았던 방정환 등이 활동했다.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뜻, 보국안민. 고통 받는 민중을 널리 구제한다는 뜻, 광제창생. 

임진왜란 의병봉기 때에도 일제강점기 만세운동 때에도 백성들은, 민중들은 일어섰다. 그들은 나라가 위기에 몰렸을 때 그들의 삶이 더 이상 피폐해질 것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일어섰을 뿐이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