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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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6.06.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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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대구 남구 앞산자락길
▲ 앞산케이블카.

#여행 #대구 #앞산자락길 #은적사 #케이블카 #왕건굴

대구에 앞산이 있다. 뒷산 앞산 할 때 그 앞산이다. 일제강점기에 지명 개편할 때 한자로 바꾸면서 前山(전산)이 됐었다. 그랬다가 다시 앞산이 됐다. 풍수지리 용어 중 주산, 조산, 안산이 있는데 안산에 해당되는 산이었다. 안산이 앞산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앞산 산기슭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는 산길 15㎞에 앞산자락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중 고산골 메타세쿼이아길부터 맨발산책길, 이팝나무길, 호국선열의길, 꽃무릇길을 지나 안지랑골까지 6.6㎞를 걷는다. 
 

▲ 앞산자락길이 시작되는 메타세쿼이아길 입구.

메타세쿼이아길과 공룡의 흔적

▲ 앞산자락길 이정표.

반월당역 버스정류장에서 349번 시내버스를 타고(대구한의대학교부속한방병원 방향) 대구한의대학교부속한방병원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그 다음 앞산순환로 방향으로 걷는다. 상동교를 건너서 고가도로 밑을 지나면 앞산자락길 이정표가 있다. 

길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고산골 입구에서 이팝나무길 입구까지는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길이 넓다. 어린 메타세쿼이아나무가 길 양쪽 옆에 줄을 지어 서있는 길을 걷는다. 

길 옆에 도랑 같은 작은 계곡이 있다. 계곡 너럭바위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그 옆에는 물결무늬화석도 보인다. 공룡이 살던 시절 이곳은 넓은 호수의 가장자리였다. 

공룡의 흔적을 보고 다시 길로 나와 걷던 방향으로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열화석지를 만난다. 건열은 지층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수축하여 생기는 다각형의 무늬를 말한다.  

▲ 위 너럭바위에 파인 곳이 공룡발자국화석이고 아래 너럭바위에 있는 물결 무늬가 물결무늬화석이다.

쌈지조각공원을 지나서 맨발산책길로 접어든다. 이름이 맨발산책길이지만 맨발로 걷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맨발산책길이 끝나는 곳에 강당골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있다. 그리고 그 초입에 솟대가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입구를 상징하는 문을 세웠다. 이곳부터 이팝나무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 숲길.

은적사와 왕건굴
이팝나무길부터 숲길이다. 호젓한 오솔길에 숲의 향기가 가득하다. 산기슭에 난 길이지만 약간의 오르막이 있어 땀이 흐른다. 땀이 흘러 오히려 상쾌하다. 

푸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푸르다. 평일 낮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발걸음들이 여유 있다. 말소리가 도토리 같다.  

▲ 숲길에서 본 도시.

그런 길을 걸어서 은적사에 도착했다. 은적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견훤이 있는 후백제의 세력이 당시에는 막강했다. 

▲ 은적사 왕건굴.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의 군대가 신라를 침공했다. 당시 신라의 왕은 경애왕이었다. 후백제의 군대를 막을 힘이 없었던 경애왕은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왕건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견훤의 후백제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일진일퇴의 전투는 끝날 줄 몰랐다. 그러던 중 공산전투에서 왕건의 군대가 패한다. 후백제군에 쫓기던 왕건은 신숭겸의 지략으로 지금의 은적사에 부근에 있는 굴에서 3일 동안 숨어있게 됐다. 

3일 동안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았고 굴 앞에 거미가 줄을 쳐서 왕건은 안전하게 숨어 있다가 탈출 할 수 있었다. 

왕건의 생명을 지켜준 그 굴을 왕건굴이라고 한다. 지금도 은적사에는 왕건이 숨었던 굴이 남아 있다. 

은적사에서 나와 걷던 방향으로 걷는다. 300~400m 정도 걸으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온다. 

▲ 은적사.
▲ 은적사 아래 숲.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 즐기는 대구 전망
앞산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5분~10분 정도 걸으면 앞산전망대가 나온다. 

앞산전망대에 서면 대구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정면 멀리 팔공산 등 웅장한 산줄기들이 물결치듯 이어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 앞산전망대에서 본 대구 시내.
▲ 앞산전망대에서 본 낙동강.
▲ 앞산전망대에서 본 숲. 숲 가운데 은적사가 보인다.
▲ 앞산전망대 난간에 매달린 하트 모양 자물쇠.

왼쪽에는 굽이치며 흘러가는 낙동강이 보인다. 오른쪽은 그동안 걸어왔던 앞산의 숲이다. 초록의 바다에 기와집 몇 채가 둥지를 틀었다. 방금 전에 들렀던 은적사다. 

상쾌하고 통쾌한 전망을 오랫동안 즐긴다.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추슬러 돌아서는 데 전망대 난간에 하트 모양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사랑의 맹세가 이곳에서 인상 깊다.  

나부끼는 바람을 남기고 돌아섰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서 걷는다. 이곳부터 호국선열의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호국선열의 길 다음은 꽃무릇길이다. 추석 무렵이면 귀족 같은 꽃무릇이 피어 길을 붉게 물들이겠다.  

▲ 꽃무릇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문.

꽃무릇길이 끝나는 곳이 안지랑골이다. 이곳 물로 약재를 다려 먹으면 앉은뱅이도 일어선다고 해서 안지랑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대왕지렁이의 후예인 견훤에 얽인 설화 때문에 안지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안지랑골에서 내려와서 고가도로 밑을 지나면 대덕식당이 보인다. 대덕식당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안지랑곱창거리가 나온다. 곱창집이 길 양쪽에 수두룩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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