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찾다
소를 찾다
  • 나무신문
  • 승인 2016.06.01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성북구 북정마을
▲ 골목에서는 아주 작은 꽃도 잘 보인다.

#여행 #심우장 #성곽 #북정마을 #한양도성

심우장에서
[ 나는 내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다 한 것이니 벌을 받을 리 없을 줄 안다 ] - 경성지방법원 취조록 中-
[ 각 민족의 독립 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써 전 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누가 이를 억제하고 누가 이것을 막을 것인가 ] -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中 -

심우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문구들에 골목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항일과 조국 광복을 위한 삶을 살다 간 만해 한용운의 임종을 지킨 집, 심우장으로 들어선다. 곧게 뻗은 향나무가 만해가 떠난 그곳을 지키고 있다. 

▲ 심우장.
▲ 심우장. 만해가 거처했던 방이다.

전국을 떠돌며 살던 만해를 위해 지인들이 뜻을 모아 만해의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심우장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 모퉁이를 보면 향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만해가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심었다는 나무다. 

▲ 심우장 향나무.
▲ 만해 한용운의 친필.

선 수행의 열 단계를 표현한 심우도 중 첫 번째 그림이 ‘심우도’다. 동자가 소를 찾아 산 속을 헤매는 그림이란다. 각성의 첫 마음을 언제나 간직하겠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만해는 이곳에서 1944년 6월29일 세상을 뜬다. 그가 세상을 뜨기 전에 얻은 병 중 하나가 영양실조였다.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살겠냐’던 그였다. 신문사에 연재하던 소설이나 글들도 일제의 검열 때문에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살던 그는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말과 글은 서릿발처럼 살아있다. 

[ 만일 내가 단두대에 나감으로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면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다 ]

▲ 좁고 어두운 골목길 끝이 환하다.

북정마을 골목길
심우장을 나서면서 오른쪽 골목길로 올라간다. 심우장 위에 있는 북정마을로 가는 길이다. 갈라진 벽 틈을 메운 건 아무렇게나 개서 손으로 바른 시멘트다. 실리콘으로 틈을 메운 창틀이 뒤틀렸다. 그런 골목 계단 한 쪽 옆에 꽃잎 소복하게 뭉쳐 피어난 꽃 한 송이가 웃자랐다. 

▲ 심우장에서 북정마을로 가는 계단 옆 꽃.

골목이 끝나는 곳은 언덕 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도로다. 마을버스가 힘겹게 오르내린다. 도로 한쪽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물 한 병을 사서 마신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였다. 부은 다리는 다 나았냐는 말로 인사를 하는 걸 보면 어르신들이 모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이다. 

마을 골목길 구경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녀야 하냐고 물었다. “여기 골목이 하도 많아서 어떻게 다 얘기해줄 수 없다”며 손가락으로 골목을 가리키는 할아버지의 손끝을 따랐다.

골목은 넓어졌다 좁아지기도 하고 계속 이어지는 골목이 있는가 하면 막다른 골목도 만났다. 

골목에서는 길을 찾지 않아도 된다. 막다른 골목 끝집 앞 화분에 피어난 꽃송이는 막다르지 않다. 아저씨 한 분이 세수를 한 대야를 들고 나와 화분에 물을 준다. 흙을 적신 물이 비탈을 타고 골목을 내려간다. 

▲ 한양도성의 성곽과 북정마을을 한 눈에 본다.

그 물줄기를 따라 나도 내려간다. 절벽 같은 옹벽 위 집 대문은 파란색이다. 계단으로 올라서서 대문을 열어야 하니까 대문은 공중에서 하늘을 향해 열리는 것이다. 대문을 하늘색을 닮은 파란색으로 칠한 마음이 읽힌다. 

대문 아래 계단 옆에서 자라는 꽃 한 송이가 저 아래 마을 아파트 단지를 향해 피었다. 꽃 위에는 녹슨 우편함이 매달렸다. 오래 된 소식 한 통이 담겨 있을 것 같다. 

뒷집 옹벽과 앞집 지붕이 닿아 햇볕을 막는다. 햇볕 들지 않는 좁은 골목길 끝에서 환하게 햇볕이 퍼진다. 

비바람 막기 위해 두꺼운 비닐천막으로 지붕을 덮었다. 큰 블록 십 수개를 올려 마무리를 했다. 
골목 끝 뒤로 보이는 건 마을 집들의 지붕 위 공중이다. 그 건너 저 편에 600년 한양도성을 지키고 있는 성곽이 보인다. 

▲ 꽃과 녹슨 우편함.

국수 한 그릇
골목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골목을 벗어나 성곽 아래에 서서 돌아다녔던 골목이 있는 북정마을을 내려다보는데 그 동안 멈추었던 시간이 나도 모르는 찰나에 흘렀는지 칼날 같던 햇볕이 순해진 것을 느낀다. 

성곽 안으로도 걸을 수 있고 밖으로도 걸을 수 있다. 안쪽으로 걸으면 북정마을을 온전하게 볼 수 없다. 성 밖에 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북정마을을 본다. 

▲ 북정마을.

북정마을 아래 성북동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집들과 그 외연에 수 없이 박힌 건물도 한 눈에 넣는다. 

기와지붕이 무너진 집의 내력을 상상한다. 텃밭에서 자란 푸른 생명의 직설보다 서까래까지 주저앉은 그 집의 은유가 명쾌하다. 

지나왔던 성벽길을 따라 마을로 돌아간다. 걸었던 골목을 따라 더 넓은 길로 내려간다. 길은 물줄기와 같다. 도랑 같은 오솔길, 시냇물 같은 골목, 강 같은 도로, 바다 같은 대로, 그 순서대로 돌아가는 길에 앉아서 쉬고 싶은 국수집을 찾았다. 

▲ 국수집. 면과 고명이 있는 그릇에 육수를 붓는다.

부산 구포에서 만든 국수 면발을 쓴다는 아줌마의 말을 믿기로 했다. 국수 면발과 고명이 나오고 주전자에 있는 육수를 부어 준다. 국수타래 풀어지듯 마음도 풀어진다. 풀어져 흩어진다. 흩어져 없어진다. 없어진 마음에 소주 한 잔 붓는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