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포항 #선바위 #모리국수
복 중에 복은 사람 복이다. 이리저리 떠돌다 도착한 포항에서 사람 좋은 사람 만났다. 저녁 9시 쯤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했더니 시간 맞춰 마중까지 나왔다. 그의 차에 몸을 실고 그가 이끄는 대로 도착한 식당에서 구수한 곰탕 한 그릇으로 몸을 풀었다. 내일을 기약하고 잠든 포항의 밤은 아늑했다.
이런 아침
푹 잤다. 웬만큼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데, 고단하지 않았는데도 잠을 잘 잤다.
아침햇살이 반짝인다는 것도 참 오랜만에 느껴본다. 창으로 드는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은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다.
아이가 된 기분이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진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맞이하는 아침이 순수하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바라는 마음도 없다.
잔디밭 초록이 나무를 타고 숲으로 번진다. 사방이 온통 초록이다. 거대한 침엽수가 줄을 지어 서 있는 잔디밭을 걸으면 풋풋해진다.
초록 세상 가운데 연못이 있다. 공중으로 솟구친 물줄기가 일정한 높이에서 넓게 퍼지며 떨어진다.
물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파문 위에 파문을 그린다. 물결이 물결을 밀어내고 다시 물결을 만든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들도 넓어지며 희미해지는 수면 위 동심원처럼 잊힌다. 사라진 생각의 공간을 아무것으로도 채우지 않는다.
벌써 정오다. 그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어떤 여행지를 선택해서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선바위
도착한 곳은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다. 마을이 고즈넉하다. 대문 없는 집 마당에 엎드린 개는 눈만 껌벅거린다. 게으른 햇볕이 해초를 말리는 평상에서 뒹굴거린다.
입암, 선바위다. 큰 바위가 서 있는 곳이다. 아마도 옛날에는 선돌마을이라고 불렀겠지! 바닷가에 커다란 바위가 실제로 서있다. 그곳부터 바닷가 절벽을 따라 1km 정도 바다 위에 데크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걷기로 했다.
선바위 앞에 안내판이 보인다. 바위 높이가 6m란다. 아주 오래전 옛날에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바위다. 원래는 더 컸었는데 벼락을 맞아 모양이 바뀌고 크기가 조금 작아졌다.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바다에 푸른 해초가 지문처럼 박혔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해안절벽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감정이 풍부해진다.
폭포바위, 킹콩바위…추상의 바위가 이름을 얻으면 그 이름의 형상처럼 보인다. 동굴이 있는 하얀 절벽에는 힌디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노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집안과 마을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을 이름을 ‘흥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흥덕’이라는 음이 변하여 힌디기가 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도 있다. 화산활동으로 인해 흰 바위절벽이 생겼고 ‘흰 바위 언덕’이라는 뜻으로 ‘힌디기’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쨌든 공상과학영화의 외계종족이 살 것 같은 힌디기 풍경 앞에서 한 참을 머물렀다.
힌디기 바닷가에서 미역과 군소를 포대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를 만났다. 수렵과 채취의 삶의 방식이 21세기에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들 부부의 행복한 얼굴 때문이리라!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바다가 육지 안으로 움푹 들어갔다. 영일만이다. 멀리 포스코 굴뚝에서 연기가 수더분하게 피어오른다.
모리국수
여행은 사람과 말없이 더 가까워지는 일이다. 서로의 발길을 배려하는 마음이 구룡포전통시장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장이 서는 날도 아니고 평일이라서 장거리는 한산했다. 문 닫은 가게나 식당 사이에 드문드문 문을 연 식당이 있다.
허름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은 골방 같았다. 방바닥에 앉아서 먹는 식탁이다. 식탁 두 개가 전부다. 주방도 코앞이다.
아까부터 소주 광고 벽보에서 아가씨가 환하게 웃는다. 한 쪽 구석에 있는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다. 가파른 삶의 언덕을 살아왔을 것 같은 주인아줌마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환하게 웃는다.
웃는 얼굴로 모리국수를 삶아 낸 아줌마가 슬쩍 자리를 비운다. 서로 등대고 앉아야 하는 좁은 골방에서 마음 편하게 국수를 먹으라는 주인아줌마의 배려 때문에 국수가 더 맛있다.
그런데 왜 모리국수일까? 이것저것 모아 넣어서 한 솥에서 끓였다고 해서 모리국수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합의 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한 솥에서 끓고 있는 것일까? 이것저것이 모여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치가 시장골목 골방 식탁 위에서 끓고 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