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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6.05.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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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경북 포항시 선바위와 모리국수
▲ 바다 위에 놓인 다리를 따라 약 1km 정도 걷는다.

#여행 #포항 #선바위 #모리국수  

복 중에 복은 사람 복이다. 이리저리 떠돌다 도착한 포항에서 사람 좋은 사람 만났다. 저녁 9시 쯤 도착한다고 미리 연락했더니 시간 맞춰 마중까지 나왔다. 그의 차에 몸을 실고 그가 이끄는 대로 도착한 식당에서 구수한 곰탕 한 그릇으로 몸을 풀었다. 내일을 기약하고 잠든 포항의 밤은 아늑했다. 

이런 아침  
푹 잤다. 웬만큼 몸을 혹사시키지 않으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데, 고단하지 않았는데도 잠을 잘 잤다. 

아침햇살이 반짝인다는 것도 참 오랜만에 느껴본다. 창으로 드는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는 느낌은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다. 

아이가 된 기분이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진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맞이하는 아침이 순수하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바라는 마음도 없다.

잔디밭 초록이 나무를 타고 숲으로 번진다. 사방이 온통 초록이다. 거대한 침엽수가 줄을 지어 서 있는 잔디밭을 걸으면 풋풋해진다. 

초록 세상 가운데 연못이 있다. 공중으로 솟구친 물줄기가 일정한 높이에서 넓게 퍼지며 떨어진다. 

물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파문 위에 파문을 그린다. 물결이 물결을 밀어내고 다시 물결을 만든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들도 넓어지며 희미해지는 수면 위 동심원처럼 잊힌다. 사라진 생각의 공간을 아무것으로도 채우지 않는다.  

벌써 정오다. 그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어떤 여행지를 선택해서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 선바위.

선바위
도착한 곳은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다. 마을이 고즈넉하다. 대문 없는 집 마당에 엎드린 개는 눈만 껌벅거린다. 게으른 햇볕이 해초를 말리는 평상에서 뒹굴거린다. 

입암, 선바위다. 큰 바위가 서 있는 곳이다. 아마도 옛날에는 선돌마을이라고 불렀겠지! 바닷가에 커다란 바위가 실제로 서있다. 그곳부터 바닷가 절벽을 따라 1km 정도 바다 위에 데크길을 만들었다. 그 길을 걷기로 했다.

선바위 앞에 안내판이 보인다. 바위 높이가 6m란다. 아주 오래전 옛날에 화산활동에 의해 생긴 바위다. 원래는 더 컸었는데 벼락을 맞아 모양이 바뀌고 크기가 조금 작아졌다. 

▲ 선바위에서 시작해서 약 1km 정도 갔다가 다시 선바위로 돌아온다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바다에 푸른 해초가 지문처럼 박혔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해안절벽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감정이 풍부해진다. 

▲ 킹콩바위.
▲ 폭포바위.

폭포바위, 킹콩바위…추상의 바위가 이름을 얻으면 그 이름의 형상처럼 보인다. 동굴이 있는 하얀 절벽에는 힌디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날에 노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집안과 마을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을 이름을 ‘흥덕’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흥덕’이라는 음이 변하여 힌디기가 됐다는 얘기가 전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도 있다. 화산활동으로 인해 흰 바위절벽이 생겼고 ‘흰 바위 언덕’이라는 뜻으로 ‘힌디기’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쨌든 공상과학영화의 외계종족이 살 것 같은 힌디기 풍경 앞에서 한 참을 머물렀다. 

▲ 마을 사람이 잡은 군소를 보여주고 있다.

힌디기 바닷가에서 미역과 군소를 포대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를 만났다. 수렵과 채취의 삶의 방식이 21세기에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들 부부의 행복한 얼굴 때문이리라!

▲ 영일만.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바다가 육지 안으로 움푹 들어갔다. 영일만이다. 멀리 포스코 굴뚝에서 연기가 수더분하게 피어오른다. 

▲ 구룡포전통시장 모리국수.

모리국수
여행은 사람과 말없이 더 가까워지는 일이다. 서로의 발길을 배려하는 마음이 구룡포전통시장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장이 서는 날도 아니고 평일이라서 장거리는 한산했다. 문 닫은 가게나 식당 사이에 드문드문 문을 연 식당이 있다. 

허름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은 골방 같았다. 방바닥에 앉아서 먹는 식탁이다. 식탁 두 개가 전부다. 주방도 코앞이다. 

아까부터 소주 광고 벽보에서 아가씨가 환하게 웃는다. 한 쪽 구석에 있는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다. 가파른 삶의 언덕을 살아왔을 것 같은 주인아줌마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환하게 웃는다. 

웃는 얼굴로 모리국수를 삶아 낸 아줌마가 슬쩍 자리를 비운다. 서로 등대고 앉아야 하는 좁은 골방에서 마음 편하게 국수를 먹으라는 주인아줌마의 배려 때문에 국수가 더 맛있다. 

그런데 왜 모리국수일까? 이것저것 모아 넣어서 한 솥에서 끓였다고 해서 모리국수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합의 했다. 

지금 우리도 그렇게 한 솥에서 끓고 있는 것일까? 이것저것이 모여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치가 시장골목 골방 식탁 위에서 끓고 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