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푸른 길
언제나 푸른 길
  • 나무신문
  • 승인 2016.05.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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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서울 항동철길과 푸른수목원
▲ 항동철길 선로에 오후의 햇살이 비친다.

#여행 #항동철길 #푸른수목원 #기찻길 #꽃 #서울

라일락꽃이 지고 아카시아꽃이 피었으니 봄도 절정을 넘었다.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이 몸도 이지러지나보다. 마음은 언제나 푸른 봄이니 마음을 따라 늦봄 속으로 든다. 

기찻길을 걷는 사람들
서울 변방 마을 골목에 기찻길은 이질적이다. 이질은 낯설다. 낯선 풍경은 여행의 매력 중 으뜸이다. 

항동철길, 기찻길을 걷는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다. 청춘이 현재진행형인 저들은 여기서 왜 이럴까? 봄 중의 봄, 덩달아 나도 오늘은 봄 중의 봄이다. 

천왕역 2번 출구로 나와 300~400m 정도 앞으로 가다보면 큰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 부근에 철길이 있다. 

사거리에서 왼쪽을 보면 길 건너편에 ‘행복드림한우’ 간판이 보인다. ‘푸른수목원’ ‘항동철길’ 이정표 방향으로 기찻길을 따라간다. 

▲ 항동철길 시작 지점.

항동철길은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에서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까지 이어지는 4.5㎞ 철길이다. 

경기화학공업주식회가가 1954년 부천시 소사구 옥길동에 생기면서 원료와 생산물 등을 운송하기 위해 1959년에 철길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기찻길 위로 사람들이 걷는다. 

사람들이 걷는 구간은 ‘행복드림한우’부터 푸른수목원까지 약 1.3㎞ 구간이다. 시작지점에서 약 600m 구간은 빌라와 아파트 건물이 풍경을 대신한다. 보통 골목 풍경에 기찻길 하나 더했을 뿐인데 길이 풍성해 보인다. 

기찻길 옆 아이들은 기찻길에서 논다. 철로를 따라 뛰어갔다 뛰어온다. 통통거리며 쉬지 않고 달린다.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모양이 딱 봄이다. 

▲ 항동철길.

기찻길 옆 풍경이 건물에서 숲으로 바뀐다. 아이들은 풍경의 경계를 넘지 않는다. 아이들이 없는 공간은 청춘이 주인공이다. 

▲ 철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글귀. 봄 같은 첫사랑.

하늘거리는 치마가 명랑하다. 어깨동무도 푸르다. 평행선 철로에 올라서서 입을 맞추는 시간 동안 진공의 보호막이 그들을 감싸줄 것이다. 

오후의 햇볕이 게으르게 퍼지는 기찻길 지팡이 짚고 세 발로 걷는 할아버지, 그 봄 참 더디다. 

▲ 푸른수목원 정문.

봄 중에 봄
푸른수목원 후문을 지난다. 가상으로 만든 간이역, ‘항동철길역’이 그곳에 어울린다. 남으로 가면 해남이고 북으로 가면 개성에 닿는 단다. 

기찻길이 소실점으로 빨려든다. 풍경에 홀린 사람들은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 점이 되어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 항동철길이 끝나고 푸른수목원 정문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형물.

사람들은 수목원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우회전해서 수목원 정문으로 들어간다. 기찻길은 곧게 이어지지만 사람들은 봄이 가득한 수목원을 찾는다. 

▲ 푸른수목원 저수지.

봄이 머무는 곳에서 사람들은 쉰다. 기찻길 위의 봄은 흘러야 푸르고 수목원의 봄은 고여서 푸르다.  

정문 옆 저수지에 수양버들이 한들거린다. 물가 의자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앉았다. 저수지 둘레에 난 길을 따라 걷는다. 

▲ 하늘로 솟은 나무.

조팝나무꽃, 푸밀라붓꽃이 꽃길 초입에 피어 진달래꽃길로 안내한다. 붉은 꽃동산에서 흰색 원피스 차림의 긴 머리 소녀가 서성거린다. 

▲ 봄의 향기.

진달래 붉은 꽃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니 소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꽃밭을 걷는 소녀의 뒷모습이 봄 중에 봄이다. 

침엽수가 줄을 지어 서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메타세쿼이아 골드러시 황금빛 잎새가 빛난다. 

큰 나무기둥 아래 할미꽃이 실 같은 머리를 풀었다. 뱀 혀를 닮은 참뱀차즈기꽃의 꽃수술 끝에서 봄이 휘발한다. 
     

▲ 참뱀차즈기꽃.
▲ 푸밀라붓꽃.
▲ 할미꽃.

다시 철길 위에 서다

▲ 레일 옆에 핀 작은 꽃.

푸른수목원 후문으로 나가면 항동철길이다. 레일 위에 앉는다. 철길 위의 시간도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멈춘다. 햇살에 녹아 바람에 흩어지는 건 몸과 마음이 다 한가지다. 

오가는 사람 사이에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건 먼지가 되는 일이다. 먼지처럼 작은 꽃들이 녹슨 철길 아래에서 피었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 나서야 일어섰다. 몸과 마음의 간극이 불안하다. 낮과 밤의 경계가 그런 것처럼... 

불안은 평안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다. 변화는 쉬지 않는다. 평온한 안정보다 불안한 변화가 이 봄에 어울린다. 

기찻길을 따라 돌아가는 길, 집 보다 먼저 생각나는 건 시장골목 선술집이다. 천왕역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광명시장이 있는 광명사거리역이다. 

광명시장 순대국밥집은 벌써 왁자지껄하다. 빈자리 찾아 앉는다. 소주 한 잔에 눈이 맑아진다. 

늙은 사내들, 화장 짙은 중년 여성들, 더 이상 혁명을 꿈꾸지 못하는 그들의 봄은 시장 한 켠 선술집 푸른 형광등 아래에서 피어난다. 

광명시장 순대국밥집에 앉아 있는 사이 밤은 저 혼자 깊어 간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