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로맨스
아찔한 로맨스
  • 나무신문
  • 승인 2016.04.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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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정선 귤암리
▲ 동강할미꽃.

#강원도 #여행 #장태동 #정선 #뱅뱅이재 #동강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빨랫줄을 걸어도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강원도 정선 산골로 간다. 

귤암리 사람들이 살기 위해 넘어야 했던 뱅뱅이재를 넘는다. 동강 절벽에서 피어나는 동강할미꽃과 동강할배꽃의 아찔한 로맨스가 이 봄에 화사하다.    

▲ 경사가 심한 산길을 오르내리기 위해 갈지(之)자로 길을 냈다.

뱅뱅이재
마을 앞에 소도 한 입에 집어삼킬 것 같은 동강이 시퍼렇게 흐른다. 마을 뒤는 수십 미터 절벽이다. 

강과 절벽에 갇힌 귤암리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기 위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에 오솔길을 냈다.  

경사가 심해 갈지(之)자로 길을 내야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서른여섯 굽이를 다 돌아야 고갯마루에 다다를 수 있었던 그 길이 뱅뱅이재다. 뱅뱅 돌고 도는 길이라고 해서 뱅뱅이재라고 불렀다.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서야 했다. 장에 내다 팔 것들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길을 올랐다. 다리가 팍팍해지면 쉬었다 갔다.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은 그곳을 지게목이라고 불렀다. 그 길에 지게목이 두 군데다. 

무사히 고개를 넘게 해달라며 던진 돌이 쌓여 돌탑이 되었다. 그곳은 탑거리라고 불렀다.  탑거리를 지나면 샘터가 나온다. 샘터를 지나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 탑거리.

고갯마루에서 잠깐 쉬었다가 북실리로 내려간다. 장이 서는 읍내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다.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 뱅뱅이길 도착지점인 정자를 끼고 우회전 해서 동강길을 걷는다. 길 왼쪽에 사진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게 도착한 장터에서 팔 것 팔고 살 것 사다보면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만 산다고 해도 그 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저녁때가 다 됐다. 

▲ 뱅뱅이길 출발지점인 짚와이어 타는 건물 부근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뱅뱅이재를 넘어 동강으로
1970년대 중반 강변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생기면서 뱅뱅이재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뱅뱅이재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걷기 열풍 덕이다. 정선군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뱅뱅이재를 되살리고 정비하여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생긴 길이 ‘뱅뱅이길’이다. 

옛날 뱅뱅이재 고갯마루에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가 있다. 해발 600m가 넘는 절벽 위 허공에 U자형 유리다리를 만들어 한 바퀴 걸어보게 한 것이 스카이워크다. 짚와이어는 절벽 위에서 동강 옆 동강생태체험학습장까지 줄을 타고 내려가는 놀이기구다. 

▲ 동강과 절벽 그리고 귤암리.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가 있는 곳이 뱅뱅이길의 시작지점이다.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를 잇는 데크길 가운데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굽이돌며 흐르는 동강의 시퍼런 물줄기와 한반도 지형을 닮은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풍경을 즐긴 뒤에 스카이워크 매표소를 지나 뱅뱅이길 입구에 선다. 숲길 입구에 이정표가 보인다. 귤암리, 병방산, 북실리 방향을 가리키는데 귤암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 

▲ 뱅뱅이길 도착지점 500m 전에 있는 이정표. 사진 우측 상단에 뱅뱅이길 출발지점인 짚와이어 타는 곳이 아주 작게 보인다.

그곳부터 귤암리 도착지점까지 3㎞다. 숲에 난 길을 걷는다. 오솔길에 낙엽이 수북하다. 낙엽 아래에 돌이 있다. 길 오른쪽은 경사가 급한 산비탈이다. 그런 구간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샘터를 지나면 탑거리가 나온다. 예전에 뱅뱅이재를 넘나들던 사람들이 던진 돌이 탑이 되었다던 그곳에 그럴싸한 돌탑을 세웠다. 

▲ 뱅뱅이길 숲길.

탑거리를 지나면 경사가 더 심해진다. 뱅뱅 도는 산굽이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낙엽이 쌓여 발목까지 빠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땀이 솟는다. 굽이길 중간에 안내판이 보인다. 뱅뱅이길의 중간지점이다. 아직도 반이나 더 남았다. 

길 한쪽에 설치한 얇은 밧줄을 잡고 몸을 낮춰 조심조심 걷는다. 뱅뱅 도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잠시 쉬며 땀을 닦는다. 

숲을 벗어나면서 동강과 절벽이 한 눈에 보인다. 도착지점인 귤암리가 5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고개 돌려 넘어온 산을 한 번 바라본다. 

▲ 귤암리 동강 절벽.

동강할미꽃과 동강할배꽃
뱅뱅이길 도착지점에 정자가 있다. 정자를 끼고 우회전해서 동강길을 걷는다. 먼 산 능선에 있는 스카이워크와 짚와이어 시설물이 아주 작게 보인다. 

동강과 절벽이 만들어 내는 멋진 풍경 때문이라도 동강길은 걸어야 하지만 봄에 이 길을 걸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곳에서 자라는 동강할미꽃과 동강할배꽃 때문이다. 

▲ 동강고랭이. 할아버지수염을 닮아 '동강할배꽃'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뱅뱅이길 도착지점에서 첫 번 째 동강할미꽃 서식지까지는 약 1.3㎞ 거리이고 두 번 째 동강할미꽃 서식지까지는 약 3.3㎞ 정도 된다.  

동강할미꽃은 식물사진작가 김정명 씨가 1997년 봄 귤암리 절벽에서 발견하여 1998년 한국의 야생화라는 ‘꽃달력’에 처음 발표하면서 알려졌다.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 원장이 2000년에 동강이라는 이름을 달아 학계에 발표하면서 세계 유일 종으로 인정받게 된다. 

▲ 동강길 옆 절벽. 절벽에 동강고랭이가 자란다.

동강길을 걷다보면 동강할미꽃 서식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동강할미꽃은 바위 절벽에서 피어난다. 

절벽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동강할미꽃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도도하게 고개를 세우고 동강의 푸른 물줄기,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봄을 즐긴다.

동강할미꽃이 피어나는 그 절벽에 동강할배꽃도 피어난다. 동강할배꽃의 원래 이름은 동강고랭이꽃이다. 동강고랭이라는 식물에서 피어나는 꽃인 것이다. 동강고랭이가 할아버지 수염을 닮았다고 해서 동강할배꽃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 동강고랭이꽃

동강고랭이꽃은 아주 작다. 작은 꽃을 잘 살펴보면 황새가 나는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동강고랭이의 또 다른 별명이 정선황새풀이다. 

동강고랭이가 절벽 여기저기에 붙어산다. 동강고랭이꽃이 피어나는 그 절벽에 동강할미꽃도 함께 피어난다. 

해마다 봄이면 정선 귤암리 동강 절벽에서는 동강할미꽃과 동강할배꽃의 아찔한 로맨스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