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제주올레길 1코스 시흥리~광치기해변의 두 번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지난 호 말미에 종달리 마을길을 벗어나면서 갈대밭을 만났는데 그 갈대밭은 종달리 염전의 역사를 품고 있다. 갈대밭을 지나면 바다다. 바다 옆 도로를 따라 걸으면 성산일출봉이 나오고 수마포해변을 지나 광치기해변에 도착하면서 제주올레길 1코스는 끝난다. 이 길에서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제주4.3유적지를 만난다.
종달리부터 성산일출봉까지
염전이 없던 제주에서는 갯바위에서 소금을 생산했다. 그 역사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 제주 목사 강여는 제주에서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을 종달리라고 여기고 그 마을 사람들을 육지로 보내서 소금 만드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육지로 나간 그들이 소금 생산법을 배워서 종달리 앞 바다 갯바위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종달리 마을을 벗어나면 바다를 만난다. 큰 원호를 그리는 바다의 끝을 따라 도로가 났다. 찻길 옆을 걷지만 오가는 차들의 소리 보다 투명하고 푸르게 빛나는 바다의 빛깔에 집중하게 된다.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길 바로 옆에 오징어가 햇볕에 마르고 있고 갈매기는 떼를 지어 바닷가에 앉아 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살던 옛 사람들의 흔적도 있다. 도로 가에서 시흥리 영등하르방을 만났다. 영등하르방은 마을을 지키는 상징이다.
250여 년 전 일이다. 마을에서 도깨비불이 보이고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마을 사람들은 넘치는 불의 기운을 막기 위해 영등하르방을 세웠다. 화재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등하르방이 쓰러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다시 원인 모를 불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하르방을 세웠고 화재는 더 이상 없었다.
원래 하르방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해안도로가 생기면서 2010년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영등하르방을 지나면 오소포연대가 나온다. 조선시대에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던 시설이다.
길은 성산리로 접어든다. 성산갑문을 지나면 성산일출봉이다. 성산일출봉 기슭을 지나는 길에 동암사에 들른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동굴기지, 성산일출봉
동암사는 작은 절이다. 좁은 절 마당을 지나면 동암사라고 새긴 비석이 보인다. 비석과 성산일출봉을 한 눈에 넣고 바라본다.
절 옆 잔디밭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서면 앞으로 걸어야할 수마포해변과 광치기해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결마다 부서지는 햇볕의 파편이 눈을 찌른다. 눈부신 풍경 속으로 걸어갈 차례다. 동암사 옆 잔디밭에서 성산일출봉 아래 상가가 즐비한 도로로 내려서서 걷다가 이정표를 따라 바다 쪽으로 좌회전 한다.
그곳에 작은 항구가 있다. 항구에 묶인 배 앞에 선다. 성산일출봉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항구에 있는 안내판을 읽는다. 성산일출봉 아래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그곳에 동굴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만든 동굴진지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은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한 극단의 방법을 선택한다. 폭약을 실은 작은 군함을 이용해서 연합군의 군함을 공격하고자 했던 이른바 ‘바다의 자살특공대’가 그 방법이었다. 그리고 성산일출봉 아래 동굴기지가 바로 그 폭약을 실은 군함을 감추어 놓았던 곳이었다.
광치기해변, 제주4.3유적지
이정표를 따라 수마포해변을 걷는다. 길은 잠시 바닷가를 벗어나 차도로 이어진다. 차도 옆 인도를 걷다가 작은 비석을 발견했다.
‘제주4.3 성산읍지역 양민 집단학살터 표지석’이다. 북촌마을, 너븐숭이, 한라산둘레길 등 제주에는 제주4.3유적지가 많다. 이곳 해변도 제주4.3유적지 중 한 곳이다.
제주4.3 당시에 성산읍, 구좌읍, 표선면, 남원읍 사람 400여 명이 이곳에서 집단학살 당했던 역사를 비석이 말해주고 있다.
비석을 지나면 길은 다시 바다 쪽으로 접어든다. 그곳이 광치기해변이다. ‘터진목 4.3유적지’라는 간판을 보고 바다 쪽으로 들어선다.
해변을 따라 느리게 걷는다. 제주올레길 1코스의 도착지점이 이곳이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제주의 이야기는 그 길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계획했던 제주올레길 1코스를 다 걸었다. 도로로 나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걷기로 했다.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붉어진다. 늘어선 전신주의 그림자가 길게 뻗은 도로 위에 쓰러진다. 신양섭지코지해변에 도착했을 때 해는 아직 하늘에 남아 있었다.
새 몇 마리가 붉은 하늘에서 난다. 노랗게 빛나는 둥그런 해가 산줄기 능선 뒤로 떨어진다. 해변은 어두워졌고 나는 거기에 앉아 소주를 따랐다. 지나온 길에게, 그 길이 품은 풍경에게, 그 풍경에서 스러져간 선한 사람들에게, 벌거숭이가 된 나에게...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