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검도의 시간
동검도의 시간
  • 나무신문
  • 승인 2016.03.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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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인천시 강화군 동검도
▲ 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갈대.

옹기병과 홍두병 그리고 하얀짜장
인천여행을 계획할 때 계륵이 하나 있다. 차이나타운이다. 너무 많이 가봐서 식상하지만 그곳을 들르지 않고 그냥 돌아오면 뭔가 허전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아예 여행 첫머리에 들렀다. 

여전히 변한 것 없는 차이나타운에서 눈길을 끄는 것 두 개, 옹기병과 홍두병이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새로운 게 생긴 줄 알았는데 화덕만두와 속에 소가 들어간 계란빵이었다.

▲ 홍두병.
▲ 옹기병.

옹기병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고기만두를 사고 홍두병은 크림, 팥, 망고소가 들어있는 것을 골고루 샀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짜장면을 먹었다. 일반 짜장면이 아니라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산동반도에서 건너온 중국인 부두노동자들이 먹던 짜장면을 재현한 이른바 ‘하얀짜장’이었다. 

이름 그대로 새까만 짜장면이 아니라 하얀 짜장면이다. 중국식 된장에 고기를 볶아서 소스를 만들었다. 약간 뻑뻑해서 면과 잘 비벼지지 않기 때문에 닭고기 삶은 물을 조금 넣고 다진 마늘도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다. 

100여 년 전 인천항 부두노동자들이 먹던 그 맛은 아니겠지만 ‘하얀짜장’ 하나가 이 거리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다. 

▲ 하얀짜장.

동검도 DRFA365예술극장
강화도로 가는 길은 언제나 황량하다. 눅진한 공기와 낡은 도로와 정리되지 않은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황량해서 순수해 보인다.

강화도 남쪽 해안길을 따라가다가 동검도로 좌회전, 섬으로 들어가는 바닷길을 건넌다. 한 눈에 일몰 촬영 포인트라는 걸 알았다. 해 질 때에 맞춰 이곳에서 풍경을 바라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섬 깊숙이 들어간다. 

▲ 동검도 갈대와 바다.

동검도는 작은 섬이다. 섬을 닮은 지붕 낮은 집들이 만든 좁은 골목길을 지난다. 갯벌이 무겁게 자리잡은 곳에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런 풍경 앞에 ‘DRFA365예술극장’은 이질적으로 있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이 황량해서 순수한, 무거운 뻘과 서걱거리는 갈대밭 앞에 있는 것이다. 

▲ DRFA예술극장 곤드레밥 한 상.

영화상영시간을 놓친 터라 영화는 다음으로 미루고 밥을 먹었다. 곤드레밥 한 상이 차려졌다. 곤드레나물의 향이 은은하게 밥에 배었다. 깔끔하면서 무겁지 않은 반찬들은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고 식탁에서 톡톡 튀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차 한 잔 마시면서 분할된 창으로 나누어진 풍경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해 지는 시간을 기다린다. 

동검도 ‘DRFA365예술극장’에서 시간은 세 가지로 색으로 흐른다. 영화의 시간, 밥과 차의 시간, 풍경을 느끼는 시간이 다 다른 색으로 다가온다. 

▲ DRFA예술극장 창이 있는 풍경.
▲ DRFA예술극장 내부.

영화의 시간은 놓쳤고 식사와 차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 뒤 해거름 갈대와 바다의 풍경 앞에 선다.  

해 지는 섬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길에 공기의 색이 보랏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공기에 퍼지는 색과 그 색이 품고 있는 ‘색온도’가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변화하는 공기 속에 서서 온전하게 그 변화를 느끼는 것이 일몰을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마을 골목길을 지나 갈대와 갯벌과 바다, 그리고 먼 산이 낮게 흐르는 풍경이 보이는 촬영 포인트를 찾았다. 동검도로 들어올 때 점찍었던 일몰 촬영 포인트는 조금 더 가야되지만 눈에 들어온 촬영 포인트를 놓칠 수 없었다. 

갯벌에 기우뚱 누운 배가 섬처럼 떠있다. 바닷물은 저 멀리 물러나있고 바다 멀리 산 뒤로 지는 해가 노란빛을 발산하며 풍경을 잠식하는 어둠에 안간힘으로 맞서 경계를 밝히고 있다. 

해가 사라진 뒤 하늘색은 세 번 변한다. 그리고 해가 내뿜는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달빛 별빛이 살아난다. 강한 빛에 가려진 약한 빛이 빛나는 순간이다. 빛에 가려진 또 다른 빛이 드러나는 풍경 앞에서 되돌아 볼 건 오늘 하루 만은 아닐 것이다. 

해 진 뒤 공간을 채운 빛을 배경으로 웃자란 갈대가 화석처럼 박혔다. 갯벌에 내린 뿌리로 흙을 완강하게 움켜쥔 갈대가 오늘 하루 세상을 떠돌다 멈추어 선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 떠돌고 내일은 또 어디에 몸을 둘 것인지... 떠다니는 마음 뿌리내릴 수 없는 시간들이 외롭지 않은 것은 이런 풍경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사라진 하늘은 세 번 빛난 뒤에 완전하게 어두워지는데 이제 한 번 남았다. 그 때에 맞춰 도착한 곳이 들어올 때 점찍었던 일몰 촬영 포인트다. 

▲ 동검도 일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일몰 뒤 몰아닥치는 마지막 겨울바람에 언다. 시린 바람에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눈에서 눈물이 난다. 아스라해지는 풍경의 시간이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이 따듯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