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부산답다
부산이 부산답다
  • 나무신문
  • 승인 2016.02.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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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부산 갈맷길 1-2코스
▲ 청사포.

부산을 부산답게 느낄 수 있는 길을 걷는다. 기장군청에서 시작해서 봉대산(229.4m), 죽성성당, 대변항, 해동용궁사, 송정해수욕장(죽도공원), 청사포를 지나 미포오거리에 도착하는 21.4km의 ‘갈맷길1-2코스’가 바로 그 길이다. 
 
전망 좋은 곳
출발지점인 기장군청에 도착하면 기장군 보건소 건물을 찾아야 한다. 보건소 건물 앞 도로를 건너서 왼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천길’로 우회전하면 길은 마을로 접어든다. 

마을에 이정표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갈맷길 이정표 대신 해파랑길 이정표가 보인다. 해파랑길 이정표가 가리키는 길 이름이 마장터길이다. 

밭에 난 길을 따라 걷다보니 드디어 갈맷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는 봉대산으로 올라가라고 안내한다.

밭을 지나 산길로 들어간다. 산이 높지 않고 오르막 구간도 길지 않다.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봉대산동네체육시설이 나온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갈맷길1-2코스 가운데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 나온다. 

▲ 봉대산 전망 좋은 곳에서 바라본 죽성리.

‘기장남산봉수대’ 안내판 뒤로 올라서서 전망을 즐긴다. 바닷가 갯바위 위에 작은 성당이 있는 죽성리 마을도 보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과 그 길 중간에 있는 대변항도 보인다.   

바다와 마을 사이에 놓인 등대가 있는 방파제가 따듯해 보인다. 쉬지 않고 부는 바람이 상쾌하다. 이곳에 서면 시간도 바람처럼 흐르나 보다. 풍경에게 주었던 눈길을 거두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리막길이 끝나면서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 한적한 시골마을로 접어든다. 이정표는 ‘기장 죽성리 해송’을 가리키고 있다. 

거대한 소나무가 판화처럼 마음에 찍힌다. 조각칼이 지나간 거친 선의 느낌이 하늘과 맞닿은 소나무의 솔잎 하나하나에 살아있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 같이 보이는데 사실 다섯 그루의 소나무가 모여 있는 것이다. 다섯 그루 소나무의 수령을 250년~300년 정도로 추정한다. 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50호다. 

항구가 있는 마을
소나무 그늘을 지나쳐서 마을로 들어선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두호항 앞에 선다. 마을도 작고 항구도 작다. 소박한 풍경에 평온한 일상이 깃들었다. 

항구를 지나서 걷다보면 갯바위 절벽 위에 있는 작은 성당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봉대산 전망 좋은 곳에서 눈에 넣었던 그 성당이다. 이곳이 바로 드라마 <드림>의 촬영 장소인 죽성성당이다. 

▲ 죽성성당.촬영 세트장.

다음에 나오는 항구는 월전리 월전항이다. 항구가 크지 않다. 항구가 작을수록 서정은 깊어진다. 깊어지는 서정에는 누구누구의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가 서려있을 것 같다. 그들이 살아 온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항구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월전항을 뒤로하고 길은 산으로 들어간다. 월전리에서 대변리, 월전항에서 대변항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고갯마루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멀리 대변항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 나온다. 대변항은 멸치와 미역이 유명하다. 다른 해산물도 싱싱하다. 햇볕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오징어가 널려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모여들어 난장판이다. 왁자지껄 한 판 놀고 싶은 살아있는 공간이다. 

항구 한 쪽에 대변초등학교가 보인다. 교문 옆에 비석이 하나 있다. 흥선대원군척화비다. 조선 말기 일본과 프랑스 등 광기와 탐욕으로 가득한 제국이 조선을 침략할 당시에 제국의 침략에 맞섰던 증거다. 

비석이 있었던 원래 자리는 대변항 방파제 안쪽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항만을 만들면서 척화비를 바다에 버렸다. 해방 이후에 마을 청년들이 척화비를 건져 올려 지금의 자리에 세웠다. 

바다 바로 옆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넓은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부터 해동용궁사까지는 재미없는 길이다. 해동용궁사부터 송정해변까지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와 또 다른 목적지를 잇는 길일 뿐 아무런 감흥이 없다. 

▲ 해동용궁사.

바다 옆 기찻길
바닷가에 있는 절, 해동용궁사는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바다 절벽 위에 절이 있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은 날은 포말이 바람에 날려 절 마당까지 날릴 것 같다. 바다를 등지고 앉은 부처님도 있고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부처님도 있다. 

송정해변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행자를 먼저 반기는 것은 죽도공원이다. 바다로 머리를 내민 갯바위 위에 정자가 보이고 그 아래 항구에 등대가 정겹다.  

죽도공원을 한 바퀴 돌아서 송정해변 백사장으로 내려선다. 백사장을 따라 걷다가 갈맷길 이정표를 따른다. 숲으로 접어든 길에서 청사포를 만났다. 청사포 항구에 노을빛이 물든다. 오늘은 여기서 걸음을 멈춘다.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 앞에 앉아 술잔에 술을 따른다. 파스텔톤으로 물드는 황금빛 공기와 바다가 술잔에 담긴다. 혼자 있어서 더 풍요로운 시간이다. 

어둠이 완전하게 내린 뒤에 택시를 타고 송정해변에 내렸다. 송정해변의 일출을 볼 생각이었다. 

송정해변의 아침은 죽도공원 일출과 함께 시작한다. 바다 끝 수평선에 구름이 장막을 치고 있어서 제대로 된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뒤늦게 퍼지는 햇살이 구름에 비쳐 역동적인 하늘을 만들었다. 

다시 길을 걸어서 청사포에 도착했다. 쾌청한 오전의 하늘과 쨍쨍한 햇살에 청사포가 빛난다. 이정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바닷가 산 우거진 숲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볕이 샌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바다 바로 옆에 철길이 났다. 동해남부선이다. 동해남부선은 부산시 부산진역과 경상북도 포항시 포항역 사이에 놓인 철도다. 해운대 미포에서 송정까지 폐선 구간 철도 위로 걸을 수 있다. 

▲ 미포오거리에서 바다 쪽으로 난 길에 서서 바라본 풍경.

숲속 길에서 바다와 철길이 나란히 나있는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그 풍경 속 철길 위로 간혹 사람들이 오간다.  

달맞이고개 전에 마지막으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를 지나면 달맞이 고개 찻길이다. 찻길을 따라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해운대와 동백섬 광안대교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또 나온다. 도착지점인 미포오거리가 코앞이다. 

미포오거리에 서서 바다 쪽으로 난 길을 바라본다. 끝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길에 가로등이 줄지어 섰고 그 끝에 바다가 보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끝맺기 위한 마지막 풍경이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