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들여다보는 이들
삶을 들여다보는 이들
  • 홍예지 기자
  • 승인 2016.02.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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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예지 기자

[나무신문] 희극인들은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라도 대중에게는 늘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직업에서 오는 비애다. 기자 역시 온갖 상황 앞에서도 굳건히 버텨야만 하는 때가 있다. 많은 이와 부딪치고 대화하는 만큼 상처도, 기쁨도 두 배로 많기 마련이다. 개중엔 쉽게 낫지 않는 상처도 있다. 그런데도 기자 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는 삶의 기쁨을 일깨워주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건축가’들은 삶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건축과 관련된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건축가를 만나게 됐다. 그들은 개성적이며, 제각각 다른 마음가짐과 철학으로 건축을 설계하고 감독한다. 그러나 건축주를 대하는 태도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건축주의 생각을 경청하고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한다.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선물할지가 건축가들의 최대 관심사다. 

인터뷰를 할 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건축가의 욕심을 버리고 건축주를 위한 집을 짓고자 합니다.’ 그들이 어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택에 있어서만큼은 이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러한 견지를 고수한다.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건축주에게 맞춰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오히려 맞춰주기만 하면 되니 더 쉬운 것 아니냐고 되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건축주들의 요구 그 이상을 찾는다. 건축주가 말하지 않은 것과 건축주조차 알지 못했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고 고민한다. 그 점이 건축가들을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하는 일은 일종의 수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까지 전달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삶과 삶의 만남이다.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시간이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 리 없다. 건축가들과의 만남이 늘 설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