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문학기행길을 걷다(1)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을 걷다(1)
  • 나무신문
  • 승인 2016.01.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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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보성군 벌교읍
▲ 벌교천.

오래된 친구와 함께
[나무신문]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매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작가 조정래의 작품 <태백산맥>의 배경무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꼬막이다. 지금이 꼬막 제철이니 벌교의 두 가지 매력을 다 보려면 지금 벌교로 가야 한다. 

이렇게 매력적인 마을로 떠나는 여행은 혼자 보다 둘이 낫고 둘 보다는 셋이 함께 보는 게 좋다. 그런 행복을 혼자 누리려고 하니 내 옆 빈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그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행의 후보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평일에 집사람 눈치 안 보고 한 이틀 집을 비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큰 동행의 조건이었다. 몇 사람에게 벌교 여행의 행복을 함께 하자고 했지만 다 사정을 호소하며 오히려 내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던 중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야, 낮술 먹자”30년이 다 되가는 친구가 평일 낮에 술을 먹자는 것이었다. 

‘오호라! 지금 이 시간에 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 집 걱정 안 하고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벌교 얘기를 하고 출발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그날 술자리의 가장 중요한 화제였다. 게다가 친구가 자기 차로 나를 모시겠다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 부용산공원길 언덕에서 본 벌교읍.

칼바람을 뚫고
하얀 구름이 떠 있어 벌교의 하늘은 더 파랬다. 남쪽이라서 따듯할 줄 알았는데 바닷가 마을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살을 엔다. 

▲ 태백산맥문학관.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무대를 돌아보는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의 출발지점인 태백산맥문학관은 따듯했다. 몸만 따듯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도 녹록해진다. 

작가 조정래가 한 자 한 자 적어서 완성한 1만6500매의 원고지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뿐만 아니라 조정래의 아들과 며느리가 아버지의 작품 <태백산맥>을 필사한 원고지도 차곡차곡 쌓여있다. 

▲ 태백산맥문학관에 전시된 태백산맥 원고 필사본 원고지. 아들과 며느리가 필사한 원고지 더미.

누구도 얘기하지 못했던 역사를 되살려 시대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가게 했던 <태백산맥>에는 시대를 사랑한 한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녹아 있다. 태백산맥문학관은 그런 마음을 느끼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앞으로 돌아볼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이 이미 마음에서 풍성해진다.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은 벌교 일원을 돌아보는 8km 코스다.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 이후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격변의 시대에 벌어진 좌익과 우익의 대립과 한국전쟁,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작품이다. 

▲ 현부자네집 대문.

태백산맥문학관을 천천히 돌아보고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소화의집’과 ‘현부자네집’을 돌아본다. 

▲ 현부자집에 핀 겨울 동백.

‘소화의집’은 새끼무당 소화가 살던 집이자 정하섭과 소화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태백산맥>을 읽은 남성 독자의 대부분은 단아하고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소화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소화의집’바로 옆에 ‘현부자네집’이 있다. 전통 한옥 건축 기법과 일본식 건축 기법이 어울린 집이다. 

대문 위에 일본식 창호를 만들고 유리를 붙인 것부터 눈에 띈다. 아담한 정원을 지나면 본채 건물이 나오고 그 옆에 동백나무가 있다. 이 겨울에도 꽃을 피우니 이곳을 찾는 여행자에게 동백은 무심치 않은 듯하다. 

한옥 처마와 겨울 동백을 겹쳐 보니 그 자태가 소화를 닮은 듯도 하다. 원래는 박씨 문중의 건물이다.  
‘현부자네집’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문학기행길 답사에 오른다. 큰 길에 나가니 바람이 더 매섭게 분다.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이 벌교천을 타고 벌교읍을 휩쓸고 지나간다.  칼바람을 뚫고 다음 목적지인 회정리교회로 발길을 옮긴다. 

▲ 소화다리 위에 초생달이 떴다.

아! 소화다리
찻길 옆을 걸어야 하지만 소박한 시골 찻길은 위협적이기 보다는 정감이 어렸다. 찻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언덕길을 조금 오르면 옛 회정리교회 건물이 나온다. 

옛 회정리교회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은 석조건물이다. 작품에는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곳으로 나오고 이지숙이 야학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던 곳이기도 한다. 

회정리교회가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이 정겹다. 지붕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이웃끼리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닮았다.    

언덕길에서 내려와 골목을 빠져 나와서 벌교천에 도착한다. 다음 목적지인 소화다리가 그곳에 있었다. 

소화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만들어졌다. 벌교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에는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아픈 역사가 서렸다. 소설 속에 나오는 한 대목을 옮겨본다.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겠구만이라...’

소설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이곳은 좌우의 양쪽 진영이 밀고 밀릴 때 마다 총살형이 벌어졌던 곳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