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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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6.01.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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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완도 명사갯길
▲ 은파금파 빛나는 바다에 조각배 하나 쉼표처럼 떠 있다

완도의 밤
완도호텔 지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가득한 한 상, 만찬이다.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 먼저 나온 음식을 비우지 않으면 뒤에 나오는 음식을 놓을 자리가 없다. 3만 원 대 가격에 어울리는 식단이다. 

▲ 완도김에 여러 재료를 싸 먹는 음식.

회는 물론이고 완도 김에 갖은 재료를 싸서 먹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부터 완도 특산물 전복요리들까지 알찬 구성이다. 

특히 전복의 고장답게 전복요리는 회부터 구이까지 전복으로 해먹을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음식이 향연처럼 펼쳐진다.  

축제 같은 식사가 끝나고 일행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간다. 오늘 하루 완도여행 안내를 맡은 완도 사람들과 함께 밤바다를 걷는다. 

화려한 저녁식사와 대조적으로 완도항 밤풍경은 소박했다. 절제된 불빛과 불빛 밖의 어둠이 서로의 영역을 간섭하지 않으며 고유의 빛을 간직하고 있었다.

▲ 완도 전복.

불 켜진 술집 창문으로 비치는 어슴푸레한 불빛이 완도항에 내린 어둠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집 현관문 열 듯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는 잠깐 앉았다 간다는 말로 방에 있던 주인아저씨를 깨웠다. 완도 토박이는 해삼을 살짝 데쳐달라고 주문했다. 메뉴판에는 없는 안주였다. 

데친 해삼을 씹는 느낌은 날 것을 씹는 것 보다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렇듯 남도에 가면 남도의 술, 이름도 예쁜 잎새주만 먹는데 그날 밤은 데친해삼과 딱 맞아떨어졌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항구의 선술집에 온기가 깊어진다.   

완도항에서 술을 먹는다는 것은 메뉴판에 없는 안주를 시키고 신김치 한 종지를 달라고하는 완도 토박이 40대 중반 사내의 하루를 거는 진지함이 농담처럼 철썩이는 늙어가는 항구 한 쪽 실비집 탁자에 명랑하게 튕기는 형광등 불빛정도라야 옳겠다. 

▲ 출발지점에서 도착지점인 명사십리해수욕장까지 약 6.3km다

산길을 걸으며 바다를 보다
완도에서는 해장도 전복죽으로 해야 제맛이다. 구름 낀 하늘에 햇빛이 산란하는 일출을 뒤로 하고 신지대교휴게소 앞에 도착했다. 명사갯길 코스 중 신지대교휴게소에서 명사십리해변까지 약 6.3km를 걸을 계획이다. 

휴게소 옆 나무계단을 올라서자마자 완도항이 보인다. 바다를 보며 걷는 숲길을 지나면 차도를 만나지만 길은 이내 숲으로 이어진다. 

바닷가 산 중턱에 난 오솔길을 걷는다. 얼기설기 자란 나무가 있어서 가파른 비탈 아래 시퍼런 바다를 직접 볼 수 없다 뿐이지 낭떠러지다. 그러니 눈을 돌리면 멀리 완도의 푸른 바다가 보이고 바다에 떠 있는 완도, 그 섬이 보이는 것이다. 

▲ 바닷가 산길을 걷는다
▲ 바닷가 길.

바다가 보이지 않는 숲길은 길을 덮은 낙엽을 밟는 느낌을 즐기기 좋다. 낙엽의 냄새와 솔숲의 냄새는 꾸미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향기가 되어 그 길을 걷는 사람의 숨이 되어 몸에 새겨진다. 
인공의 것들은 지금 이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더 꾸미고 치장하면 오히려 이 길의 느낌이 사라질 것이다. 서툴고 거칠고 소박한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라야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에 풋풋한 감동을 선물할 것이다.   

▲ 숲 오솔길
▲ 출발지점인 신지대교휴게소

신지대교휴게소를 출발한 일행은 물하태를 지나서 등대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서 등대방향으로 길머리를 튼다. 

서봉각등대(신지도등대)는 완도항으로 오가는 배들의 안내자이다. 등대 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 가운데 눈에 띄는 섬 하나, 청산도다. 

검은 구름이 낮게 떠서 바다와 구름 사이에 놓인 청산도가 오늘따라 무거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토해낼 것 같은 구름 사이로 간혹 햇빛이 내려와서 청산도를 비춘다. 섬은 바다에 뜬 것일까? 하늘에 뜬 것일까? 풍랑주의보에 떠밀려 항구로 돌아오는 배들이 청산도 앞을 분주하게 지나간다. 섬은 신비의 실존이자 생존의 바다다. 

▲ 서봉각등대(신지도등대).

아! 명사십리
등대에서 다시 등대삼거리로 나와서 도착지점인 명사십리해변으로 향한다. 명사십리해변이 보이는 언덕길에 서면 은파금파 빛나는 바다가 보인다. 

작은 물결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햇볕은 물결 마다 내려앉는다. 그 위에 쪽배 하나 쉼표처럼 떠 있다. 

▲ 명사십리해변 옆에 있는 항구

명사십리해변으로 내려선다. 십리 모래밭을 걷는다. 바람이 불때마다 흩날리는 고운 모래가 새벽 강에 피어나는 물안개 같다. 

바다도 빛나고 모래도 빛나고 해변에 박힌 조개껍데기도 빛난다. 눈부신 바다, 그곳이 이 길의 마지막이라야 돌아서는 발길도 미련 없겠다.     

▲ 명사십리해변.
▲ 명사십리해변 조개껍질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