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自敍傳
자서전自敍傳
  • 김오윤 기자
  • 승인 2015.12.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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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창조경제시대 목재산업의 새로운 소비자 창조 23
▲ 이경호 회장영림목재(주)

[나무신문 | 영림목재(주) 이경호 회장] 자서전(autobiography)이란 자기의 성장 과정을 회고하고 성장내력과 정신적ㆍ지적 발전을 기록한 전기(傳記)이다. 자서전이라는 말 그 자체는 19세기에 나타난 비교적 새로운 것이나, 고백록ㆍ회상록과 같은 형태는 예로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일기, 편지, 비망록들도 거의 의도적인 자서전이라 인정될 수 있으며 또한 자기 생활을 뉘우쳐 고백한 기록인 참회록도 동일한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같은 시대 또는 같은 종류의 저작물을 출판한 전집(全集)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한 사람의 모든 저작물을 한데 모아서 한 질로 출판한 책도 동일하게 칭한다. 그리고 영웅의 일생과 업적을 적은 전기인 영웅전(英雄傳)이 있고, 여러 사람의 개별적인 전기를 차례로 벌여 적은 열전(列傳)으로 구분한다. 이외 사물을 대할 때의 느낌이나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모아 엮은 수상록(隨想錄)과,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함을 적은 명상록(瞑想錄) 그리고 지난 일을 회상하여 적어 기록한 회상록(回想錄) 등이 있다. 

최초의 자서전으로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인 <명상록>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일컫는다. 산문문학(散文文學)이 융성했던 17세기 후반 이후에 자서전이 비약적으로 많이 나타났는데 특히 문학적인 것으로 ‘J.J. 루소(1712~1778)’의 고백론이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작가이며 사상가인 J.J. 루소의 자서전인 이 책은 12권으로 되어 있는데, 유년기부터 청년기를 거쳐 말년까지 적나라한 자기 고백과 자아의 해방 의식, 비상한 상상력, 깊고 짙은 감정의 색체, 신선한 자연묘사의 서정미 등으로 근대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도 처음엔 J.J. 루소와 동일한 화가가 있어 다소 혼동했었는데 프랑스 시인인 ‘J.B 루소’, 화가인 ‘P.E. 루소’와 ‘Henri 루소’와는 세 명이 동명이인으로, 우리나라의 철수 쯤 되는 많은 이름인가보다.

전기(傳記)란 개인 일생의 사적(事績)을 적은 기록으로, 대부분 특별한 생애를 보낸 인물에 대해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한 관찰로 기록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추상록(追想錄)]과 플루타르크의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이 그 시발인데, 이 영웅전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고 세익스피어 등에게는 극작(劇作) 자료로도 이용되었다. 

동양에서는 BC 1세기에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가 전기의 시초로 평가되고 있고, 한국에서는 최치원의 전기가 현존하는 최초의 전기로 기록되고 있으며 12~13세기 초까지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등의 전기가 나왔다. 

그 이후 18세기까지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충신ㆍ열녀ㆍ절부(節婦)ㆍ효부ㆍ효자 등에 대한 전기가 많이 나왔다. 개화기에는 개화의지와 애국애족의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을지문덕전] [강감찬전]과 같은 장군들의 전기가 많이 나타났다. 현대작가인 고 최인호 작가의 소설로 쓴 자서전 [가족]의 1984년 초판을 가지고 있는데 [별들의 고향] [고래 사냥] 등으로 유명했다.

다음으로 역시 프랑스의 사상가이며 철학자인 ‘몽테뉴(1533~1592)’의 수상록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이 책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아닌 자신을 잘 이해하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요,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설파한다. 

몽테뉴는 지식을 체계화하지 않고 그 쌓은 지식에 자만하지 않으며 사고와 판단력의 자유로운 활동만을 중시, 그 실현을 매력 있는 문장표현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이 수상록을 통해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에게 ‘당신은 무엇을 아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것 중에 가장 큰 부분이, 우리가 모르는 것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즉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지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라며 이어서 “이에 대해 플라톤도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꿈꾸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모른다. 거의 모든 고대인들은 {우리의 지각이 제한적이고 지성이 미미하며 생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도, 인지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인생에서의 긍정적인 삶도 이렇게 권유하고 있다. 즉 “나는 후회 없이 삶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는 삶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결코 귀찮거나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다. 삶을 즐기는 사람이 죽음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잘 견딘다”면서, 이어 “삶을 즐기는 방법은 있다. 나는 인생을 남들의 두 배로 즐겼는데, 즐거움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전심전력 했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보는 지금, 나는 즐거움에 더 깊이 잠기고 싶다. 민첩하게 달아나는 삶을 민첩하게 붙잡고 싶다. 서둘러 흘러가는 인생을 더 잘 활용함으로써 보상받고 싶다”며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인생이 짧을수록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무신문 서범석 사장의 청으로 칼럼을 시작한 2014년 5월 이래 이번으로 23회를 맞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달간에 걸쳐 월 2회나 게재하는 용기(?)를 보였었으나, 추가로 모 일간지의 월간 1회 칼럼을 쓰면서 나무신문에도 월 1회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신문의 한 페이지 전면을 사용하게 되면서, 필요에 따라 사진도 겸해 게재할 수 있어서 제목의 선택과 내용이 매우 다양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호의 제목과 의미에서 나타내듯이, 주위 분들로부터 그동안의 목재업무와 생활에서의 경험과 느낌을 책으로 쓰도록 꾸준히 권유를 받아왔다. 또한 주위 몇 분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다양한 업종 특히 ITㆍ벤처업계에선 젊은 나이에도 출판기념회들을 가져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난 큰 사업을 이룬 것도 없으니 만60세가 되면 써 보겠다며 이리저리 미루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찌했든 만 60세가 되고 보니 예전과 달리 원로 측에도 끼지 못하는 중장년 상황이 되고 목재업계도 위축되기만 하는 여건인데 새삼스러이 책을 낸다는 사실이 상당히 곤혹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수많은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자주 여는 바람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다시 만 65세로 미루고 말았다. 

몽테뉴 말처럼 얼마나 짧은 인생인지는 다소 알겠는데, 최근 들어 100세 시대 얘기가 나오면서 사실상 사업현장에 70대ㆍ80대의 경영자들이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심에 붓을 잡지 못하고 또다시 만65세를 그냥 넘기고 말았다. 나이를 거듭 고민하는 이유는 자기성찰(自己省察)이 충분치 않은 시점에서 본인기록을 쓴다면 과시(誇示)나 자기기만(自己欺瞞)에 빠질 수 있어 이를 경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기록은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좋은 예로 필자는 종종 고려청자와 이조백자 얘기를 하곤 하는데, 기술자인 도공의 노력 또는 정책적으로 누군가로 하여금 (필요하다면 외부 비밀 조건으로 해서라도) 제작기법을 문자나 그림으로 기록해 놓게 했더라면 지금까지도 잘 전수돼 내려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 회사는 지난 2009년도에 창립 40년 기념으로 ‘영림목재, 마흔 나이테’라는 728페이지에 달하는 사사(社史)를 발간한 바 있다. 만2년 이상의 집념으로 만들어 낸 책인데, 진행하면서 예측치 못한 내용 및 자료의 미흡ㆍ잦은 제작비 인상ㆍ조건 변경 등으로 몇 번이나 중단상태에 이르기도 했으나 끈질기게 추진해 마침내 완성을 이룬 경험이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거창하게 회고록이라는 명칭보다는 그저 그동안의 기억하고 싶은 생활 이야기, 회사를 이끌며  겪어온 제반 경험과 그에 얽힌 애환, 극심한 국제원가의 변동, 가구ㆍ악기ㆍ건설업계 부실에 따른 업계의 위기, IMF 위기관리 및 비사(秘事), 외국 거래선들과의 에피소드 등등을 서서히 준비해볼까 한다.  

그러다보니 매월 게재하던 본 칼럼은 시간적ㆍ물리적인 면에서 당분간 유보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다만 뚜렷한 이슈가 있을 때에는 나무신문의 ‘특별 칼럼’을 통해 이후 24회로 이어 나가도록 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항에 대해 모 일간지 칼럼에도 공히 양해를 구했음을 알려드리면서, 그동안 변함없이 애독해주시며 비평을 아끼시지 않은 업계의 여러분 및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도 감사드린다. 

 

이경호 회장 영림목재(주) 목재산업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목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파렛트콘테이너협회 명예회장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주한피지대사관 명예영사   아세아파렛트시스템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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