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신문
  • 승인 2015.12.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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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제주올레17코스
▲ 무수천길
▲ 제주올레17코스 출발지점인 광령1리사무소

제주올레17코스는 제주공항에서 서쪽으로 약 9km 정도 떨어진 광령1리사무소에서 출발한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수천길로 접어든다. 무수천길은 제주가 만들어질 때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든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다. 

물길이 외도월대를 지나면 바다와 만나는데 그곳에 알작지해변이 있다. 바닷길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보면 이호테우해변, 도두추억의거리, 도두봉을 지나는데 도두봉에 오르면 제주공항으로 오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도두봉에서 전망을 즐긴 뒤 내려와서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는 길을 만나 동쪽으로 계속 걷는다. 그 길은 용두암과 용연다리를 지난다. 

▲ 작은 항구 위로 비행기가 난다

이후 길은 내륙으로 이어지면서 제주목관아지, 동문시장을 지나 동문로터리산지천마당에서 끝난다. 

출발지점부터 도착지점까지 19.2km다. 도두봉 올라가는 길이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구간이 짧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도두봉 오르막길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길은 바다 옆길과 마을길이다. 6~7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용암의 길, 바다의 길
출발지점인 광령1리사무소에서 800m~ 900m 정도 걸어가면 무수천 물길을 만나는데 그곳부터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가 만들어질 때 분출된 용암이 흐르며 계곡을 만들고 그곳에 물이 흐르는 것이다.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현무암 절벽이 계곡 풍경을 완성한다. 용암이 땅을 녹이며 흐를 때의 역동성이 그 절벽에 남아있다. 그런 풍경 앞에서 발길이 저절로 멈춰진다.  

▲ 무수천길이 시작되는 곳

물은 그렇게 흐르고 물이 흐르는 대로 사람도 걷는다. 그 길은 외도월대에서 한 숨 돌린다. 외도월대는 외도동에 있는 월대를 이르는 말이다. 월대란 팽나무와 해송이 무수천물길과 어우러진 풍경 위로 달이 뜨면 더 없이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외도월대 물길 옆 산책로에 270년 된 해송이 몇 그루 있다.  

외도월대를 흐르는 시냇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포구가 있다. 삼별초가 제주에 주둔해 있는 동안 이용했던 주보급항이었다. 

▲ 알작지해변

올레길은 바다를 만나면서 동쪽으로 이어진다. 그길에 내도동알작지왓을 만난다. 내도동알작지왓은 내도동에 있는 ‘알작지왓’이다. ‘알작지왓’이란 알(아래), 작지(자갈), 왓(밭)이 모여 이루어진 말로 아래쪽(바다쪽)에 있는 자갈밭이라는 뜻이다. 몽돌해변이다. ‘알작지왓’은 약 400m 정도다. 바닷물이 자갈사이로 들고 나면서 내는 소리가 음악소리 같다. 

‘알작지왓’ 부근에 있는 내도동방사탑이 눈길을 끈다. 방사탑은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서 불길한 징조가 보이거나 지형이 휑하게 터져 허전할 때 그 기운을 막기 위해 만든 돌탑이다. 

내도동에 6개의 방사탑이 있었는데 1개만 남아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 이호테우해변의 상징물
▲ 이호테우해변

바닷길은 이호테우해변을 지나는데 바다를 가로지른 방파제 위에 ‘트로이의 목마’가 생각나는 거대한 말 조형물이 보인다.  

해변을 지나면 길은 이호동 마을로 접어든다. 마을을 지나면 다시 바닷길을 만난다. 도두항으로 가는 길에 도두추억의거리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딱지치기, 팽이치기, 굴렁쇠굴리기를 하는 아이들의 조형물이 추억으로 안내한다. 

가난했지만 따듯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혼자 웃으며 도착한 도두항 도두해녀의집에서 성게알미역국으로 점심을 먹는다. 

▲ 도두추억의거리.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조형물

바다의 길, 사람의 길
도두항 한쪽에 도두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도두봉에 오르면 제주공항으로 오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바다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도 보인다. 

▲ 도두봉에서 바라본 풍경

도두봉은 조선시대 도원봉수대터다. 고려시대 말기부터 이곳에 봉수대를 두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조선시대 초부터 낮에는 연기를 피워 소식을 알리고 밤에는 횃불을 피워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 해안도로.

도두봉에서 내려가서 걷다보면 해안도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길을 가다보면 바다에 의지해 살아가던 제주사람들의 녹록치않은 일상이 담긴 풍경을 만난다. 

어영마을을 지나면서 바닷가 현무암 갯바위에 고인 바닷물에서 소금을 얻었다는 ‘어영빌레’도 볼 수 있고 여성들이 이용했던 용천수인 ‘섯물’도 볼 수 있다. ‘섯물’ 제일 위에 있는 칸은 먹는 물, 두 번째 칸은 채소 씻는 물, 세 번째 칸은 목욕과 빨래를 했던 물이었다.

▲ 바닷가 밭과 길.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용두암 부근에서 제주 시내를 흘러온 한천과 만난다.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부근 계곡을 용연이라고 한다. 용연 아래 바닷가 갯바위에 용의 모양을 닮은 바위를 용두암이라고 한다. 

▲ 용두암

용연다리를 지나서 조금 더 가다보면 올레길은 바다를 등지고 내륙으로 향한다. 그 길에서 만난 보물 관덕정이 인상 깊다. 

관덕정은 보물 제322호다.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1924년 일본인이 수리하면서 원형이 훼손된 것을 2006년에 보수하면서 원래의 모습으로 바로잡았다. 관덕정 바로 앞에 제주목관아지가 있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산책하듯 돌아볼 만하다. 

▲ 관덕정. 제주목관아지 앞에 있다.

제주목관아지 다음에 나오는 유적지는 오현단이다.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된 사람이나 제주 목사 등으로 부임한 사람 가운데 제주 사람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거나 문화발전에 공을 세운 다섯 명의 업적을 기리는 곳이다. 

오현단을 지나서 동문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장을 통과하면 도착지점인 동문로터리산지천 마당이 바로 나온다. 도착지점에 도착한 뒤에 다시 길을 건너 동문시장으로 돌아온다. 배는 고팠지만 생각나는 건 막걸리였다. 

▲ 동문시장 막걸리

해 진 시장골목은 불빛 아래 모인 사람들로 더 정겹다. 불빛 아래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의 흥정소리, 밥집 술집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웃는 소리... 

나도 그들 사이에 스민다. 어디나 그렇듯 토박이들은 그들만의 길을 살아왔다. 여기도 그렇다. 술집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제주 토박이 아저씨와 술집을 옮겨가며 술을 마셨다. 첫 만남에 10년지기처럼 웃고 떠들며 술잔을 들고 또 들었다. 그에게서 오늘 보지 못한 제주를 보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