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11.1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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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서범석의 칼럼 혹은 잡념

[나무신문] 예전 지하철에 여성 전용칸이라는 게 있었다. 말 그대로 남자들은 탈 수 없고 여성들만 탈 수 있는 칸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여성 전용칸은 늘 사람이 많았다. 눈대중으로 훑어도 남녀노소 누구나 탈 수 있는 일반칸에 비해서 서너 배는 족히 넘어보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반칸이 그리 혼잡하지 않을 때에도 여성칸은 늘 여성 전용으로 바글바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시 출판사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한 ‘여성 전용칸 승객’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거기선 내가 밀면 밀려요.”

그때 그 여직원에게서 들은 답이다. 여성 전용칸에서는 여성인 자기의 힘이 통한다는 얘기였다. 이처럼 힘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이야기를 현재의 목재업계로 가져와 보자. ‘예전에’ 목재업계에도 ‘전용칸’이라는 게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칸막이 같은 것은 없었지만, 품목별 암묵적인 구분이 분명하게 실재하고 있었다.

각 칸마다에는 소위 말하는 큰집이 있었고 그 밑으로 관련업체들이 규모별 삼각형 구조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때는 경쟁을 하더라도 해당 칸 안에 속한 업체들 사이의 싸움이었다. 싸움이라는 것도 사실은 ‘큰집의 힘쓰기’에 의한 ‘환기’ 같은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칸막이가 없어졌다. ‘전용칸’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큰집들이 한 칸에 모여서 득시글득시글 하고 있다. 문제는 이 큰집들이 아직도 그 옛날 ‘힘쓰기’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내가 밀면 밀렸다가 당기면 당겨오는 달콤한 감촉은 기억속의 환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강자도 큰집도 아니다. 그저 ‘그만그만한 집들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 당신이 처한 오늘이다.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다. 힘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고, 당신은 어느새 엇비슷한 덩치의 사람들 무리에 들어와 있다. 덩치는 작아도 ‘한방’이 장전된 사람들속에 있다.

방법은 두 가지다. 다른 칸으로 옮겨가거나 힘쓰지 않는 것. 그런데 다른 칸으로 옮겨가기에는 목재시장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옮겨 가 나 홀로 강자가 될 수 있는 칸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힘을 쓰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 민다고 밀릴 사람도 당긴다고 당겨질 사람도 없는데, 칸 속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밀 수 있고 당길 수 있다고 착각하며 밀고 당기고 용쓰고 있는 게 지금 목재업계의 모습니다. 힘쓰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