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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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5.11.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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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망상해변
▲ 묵호역 벽화.

묵호역에서 시작해서 묵호수변공원, 논골담길(등대오름길),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 출렁다리, 까막바위, 어달해변, 대진해변을 지나 망상해변에 도착하는 약 8km 거리를 걷는다. 묵호역부터 묵호수변공원까지 약 1.4km는 시내를 지나는 길이지만 묵호수변공원부터 도착지점인 망상해변까지는 바다가 보이는 길이다. 

 

논골담길

▲ 논골담길 벽화.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계단길.

출발지점인 묵호역에서 나오면서 우회전하면 바닷가 마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벽화가 있는 길을 걷게 된다. 길은 시내를 지나 바다가 보이는 묵호수변공원 앞으로 이어진다. 

묵호수변공원을 알리는 조형물을 지나면 바로 건널목이 나오고 건널목을 건너 왼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논골담길(등대오름길)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해파랑길34코스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 논골담길. 시가 있는 바다.

바닷가 산기슭에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로 좁은 골목이 났다. 골목으로 올라가다 보면 몇 편의 시를 만난다. 나무판에 시를 적어 난간에 묶어 놓았다. 또 어떤 시는 오래된 건물 벽에 써 놓았다. 

바다의 삶을 살다가 바다로 돌아간 이들을 마음에 묻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닷가 언덕 마을 골목에서 시로 빛나고 있다. 한 줄 한 줄 또박또박 읽는 시선 뒤에서 바다가 반짝인다. 

골목 여기저기에 벽화도 보인다. 작고 납작한 자갈로 얼굴을 만들어 벽에 붙이고 몸과 팔 다리는 낙서하듯 대충 그린 그림이 귀엽다.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바다를 유영하듯 골목을 헤엄쳐 올라가는 그림 앞에 망망한 바다가 펼쳐진다. 

골목길 모퉁이 담벼락에 파도를 헤치며 질주하는 배를 그렸다. 그림을 뚫고 나와 바다로 달려갈 기세다. 

▲ 논골담길 벽화.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계단길.

이곳에서 2013년에 방영한 드라마 <상속자들>을 촬영했다. 주인공 은상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마을이다. 

▲ 논골담길. 자갈로 얼굴을 만들고 낙서 같은 그림으로 완성된 아이들.

등대가 있는 풍경
골목길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면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이 나온다. 1963년에 만들어 처음 불을 밝힌 묵호등대가 해발 67m 바닷가 언덕 꼭대기에 우뚝 솟았다. 

▲ 묵호등대.

등대 주변에 여러 가지 조형물이 놓여있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데크도 만들어놓았다. 

다른 곳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등대로 들어간다.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묵호항과 바닷가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백두대간의 청옥산과 두타산도 보인다.

▲ 묵호등대 전망대에서 본 풍경. 묵호항과 항구 마을.
▲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 전망대에서 본 풍경.

산기슭 마을이 바닷가 항구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묵호항을 둘러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녹록치 않는 세월을 이야기해준다. 

등대 아래 마당에 비석이 있다. 정소영이 감독을 하고 배우 문희와 신영균이 주연을 맡은 1968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촬영했던 곳을 알리는 비석이다. 

출렁다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푸른 파다 앞에서 빨간 출렁다리가 도드라진다. 앞서 걷던 엄마와 딸이 서로 사진을 찍어 준다. 엄마는 다리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올 걸 왜 내려가냐고 하는데 딸은 언제 우리가 여기 다시 오겠냐며 엄마 팔을 끼고 걷는다. 

▲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에서 내려가면 출렁다리를 건너게 된다.

엄마와 딸이 걸어가는 이 출렁다리는 묵호등대와 함께 2009년에 방영된 드라마 <찬란한 유산> 촬영 장소다. 고은성(한효주 분)과 선우환(이승기 분)이 사랑을 확인하고 키스를 나누던 장면을 촬영 했다. 

출렁다리를 건너 해파랑길 이정표를 따라가면 바닷가 바로 옆 도로로 내려서게 된다. 그곳에 까막바위라는 이름의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았다. 이곳부터 길은 바다와 나란히 이어진다. 

▲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 아래 바닷가에 있는 까막바위.

겨울바다
일렁이는 바다가 해안 가까이에 와서 높은 파도를 만든다.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바람에 날려 안개비처럼 내린다.

어달항을 지나서 어달해변으로 가는 길목, 바닷가 산기슭 산모퉁이를 굽이도는 길 옆으로 바다로 나가는 작은 고깃배 한 척이 바다의 길을 달리고 있다. 

해변 모래밭에 떼를 지어 앉아 있는 갈매기들 뒤에서 밀리고 쓸리는 파도가 겨울빛으로 물들어간다. 

▲ 대진해변.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간다.

어달해변을 지나면 대진해변이 나온다. 대진항 부근에 비석이 하나 있다. 비석이 있는 곳은 경복궁의 정동 쪽이라는 내용이 새겨졌다. 대진항은 경복궁 근정전의 정동 쪽이며, 대진등대는 광화문의 정동 쪽이라는 것이다. 1999년에 국립지리원에서 공인했다는 내용도 함께 새겼다. 

대진해변 방파제로 나간다. 해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공간이 방파제 초입에 있다. 그곳으로 올라가서 해변으로 밀려가는 바다를 옆에서 바라본다. 

▲ 어달항 부근 길과 바다가 어울린 풍경.

바람은 더 거세지고 바다 전체가 일렁거린다. 파도는 행렬을 맞춰 돌진하는 기병대의 말발굽 같다. 긴 해안선을 따라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파도 뒤에서 바다는 연신 또 다른 파도를 밀어 올려 더 높은 파도마루를 만든다. 

바다에서 3~4m 높이에 있는 전망공간까지 흩날리는 파도의 포말이 얼굴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그곳에서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진해변의 바다를 뒤로 하고 도착한 망상해변의 바다는 나른한 봄날 오후 같았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