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5.11.09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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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 | 영림목재(주) 이경호 회장

[나무신문] 목재업계 68년 원숭이띠 모임인 원목회(회장 김진호)가 영림목재 이경호 회장을 초청해 ‘원로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원로와의 대화는 원목회가 지난해 초부터 업계를 대표하는 원로들의 고견을 듣고 건전한 시장발전을 위한 이정표를 세운다는 취지로 마련되고 있다. 이번이 다섯 번째 행사다. 이날 오간 이야기를 재구성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나도 젊어서 1년에 두 번 명절이면 업계 원로들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했었어. 한 번은 1,2층으로 운영되는 횟집 2층으로 모셨는데, 원로 한 분이 급한 일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탕 한 그릇씩만 급하게 먹고 1층으로 내려왔지. 그런데 아 글쎄, 운전기사들이 1층에서 느긋하게 회를 시켜서 먹고 있지 뭐야.”(웃음)

창립 5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영림목재의 한 때 캐치프레이즈는 “특수목의 역사 영림목재”였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림목재는 특수목뿐 아니라 우리나라 목재산업 중흥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이경호 회장이다. 이제는 원로의 자리에 초청됐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우리는 원자재 회사였는데 가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1년 간 연구원 자격으로 공부를 했지. 그때 전국 목재연구소는 홋카이도에서 가고시마까지 전부 훑었지. 도토리현 연구소에서는 2개월 동안 합판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어. 당시 동경으로 돌아와서 목조건축용 프리컷 시스템을 처음 봤지.”

이경호 회장이 원로들을 모시던 초년병 시절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그의 나이 쉰네 살 때의 일이다. 이때는 영림목재가 북미에서 지구 한 바퀴를 돌리고도 남을 만큼의 특수목 원목을 수입해 국내시장에 공급하고 있을 때다. 부러울 것 없이 회사는 잘 나가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을 때의 일이다.

“매달 첫 비행기 타고 귀국해서 3시에 회사에서 회의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1년을 살았어.”

▲ 이경호 회장과 원목회 회원들이 영림목재 본사 현관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이 회장은 영림목재가 창립 9년 차에 들어섰을 때 회사에 합류했다. 그 전에는 국내 모 전자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유럽시장을 담당했다. 그때부터 가구전시회 등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지금의 영림목재를 꿈꾸고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은 것. 최근에는 세계적인 첨단 목재가공 기술이 집약된 ‘아코야 목재’의 국내 보급을 힘쓰고 있으니 말이다.

50년 역사를 앞두고 있는 영림목재, 이 회장의 본격적인 목재역사 또한 4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30%의 원칙’이 있다.

“원칙을 지켜야 해. 시장이 아무리 좋아도 기존에 하던 것에 30% 이상을 더 하지는 말아야 해. 내가 100을 했다면 130 이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야. 내가 200을 하면 다른 사람은 400을 하게 되고, 언젠가는 모두가 함정에 빠지는 법이야.”
지금 목재산업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