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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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신문
  • 승인 2015.11.0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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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북 남원 광한루원과 공설시장
▲ 광한루 앞 연못.

[나무신문] 남원으로 가는 길, 충청도를 지나면서 고속도로에 비가 내린다. 남쪽은 어떨까? 비 오는 광한루는 어떨까?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내리는 남원의 하늘은 변화무쌍했다. 낮은 구름을 이고 돌아다닌 남원의 하루.  

▲ 광한루 뒷모습.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에 먹구름이 낮게 떠 어두운 사위를 은행나무 노란 단풍이 밝힌다. 떨어져 누운 단풍잎도 은은하게 빛난다.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남아 있는 광한루원의 첫인상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춘향이와 이도령을 닮은 청춘 남녀들이 광한루원을 걷는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들도 보인다. 아줌마들의 웃는 소리는 오늘 이곳에서 만큼은 춘향이의 나이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 같다. 

▲ 잉어.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이몽룡이 그네 타는 성춘향을 바라보던 광한루를 한 바퀴 돌고(광한루는 보물로 지정되어 누각에 올라가지 못한다.) 오작교를 건넌다. 무슨 사랑의 기원을 하는 듯 사람들은 꼭 그렇게 해야하는 것처럼 그런다. 

▲ 춘향이 그림.

춘향관에 가면 춘향전의 이야기를 간추려 써 놓고 그것과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춘향전을 알지 못하더라도 춘향관에 걸린 글과 그림을 보면 이야기 줄거리는 알 수 있겠다. 

간단한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는 마당도 있다. 춘향이가 타던 그네는 아니지만 그곳에 있는 그네는 다른 그네와는 느낌이 달랐다. 

굵은 밧줄로 줄을 길게 만들어 놓았다. 아줌마가 웃으며 그네를 굴러보는데 그네는 처음 탔던 그 거리만 왔다갔다하고 아줌마는 힘들어 보인다.   

▲ 월매집.

황희와 정철
광한루는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 와서 만들었다. 첫 이름은 광통루였는데 세종 때 정인지가 누각의 모양이 이야기속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를 닮았다고 해서 광한루라고 고쳐 불렀다. 

▲ 1582년 경에 심은 것으로 알려진 왕버들나무.

광한루 앞 연못은 조선시대 정철이 만들었다. 원래는 광한루 앞으로 좁은 냇물이 흘렀는데 연못을 만든 것이다. 

연못을 만들 때 오작교도 함께 만들었고 연못 주변에 왕버들나무도 심었다. 왕버들나무는 지금도 연못 옆에 살아 있다. 현재 연못에는 3000여 마리의 토종 잉어와 비단잉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월매집도 있다. 마당이 넓고 건물도 여러 채다. 안채 뒤에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 옆에 성황당을 쌓고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았다. 

광한루원에는 450년 된 팽나무도 있다. 옛날 남산관 마당에 있던 것을 광한루원을 조성하면서 기증 받은 것이다. 

여러 비석이 서 있는 곳이 보인다. 이곳에 있는 비석들은 옛날에 남원과 인연을 맺은 부사, 관찰사, 어사들의 사적비와 선정비다. 남원 곳곳에 있던 것을 이곳에 모아 놓았다. 

춘향이 사당도 있다. 사당에는 춘향이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 속 춘향이는 단아하게 아름답다. 

 

▲ 남원공설시장 순대골목.

추억의 시장골목
광한루원에서 약 500~600m 거리에 남원공설시장이 있다. 남원순대국밥의 유명세를 알고 일부러 찾아갔다. 

▲ 남원공설시장 순대국밥.

남원 순대는 피순대다. 선지에 채소와 양념을 섞어 순대를 만든다. 선지가 많이 들어간다. 순대와 함께 곱창과 부속고기 등을 넣은 순대국 한 그릇에 배가 부르다. 

장구경을 하며 장골목을 돌아다니는 데 반가운 것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 첫 번째가 메뚜기. 어렸을 때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오면 할머니는 그것을 볶아주셨다. 고소하고 짭짤한 그 맛은 지금도 내 미각의 잣대에 남아있다. 

▲ 메뚜기.

남원은 추어탕의 고장이라서 그런지 장터 곳곳에서 추어탕 재료인 미꾸라지를 파는 데 손님이 많다. 논두렁을 삽으로 파서 미꾸라지를 잡던 추억이 살아난다.

▲ 남원 특산물 음식 추어탕.

달달하고 고소한 콩엿을 파는 아줌마가 젊다. 요즘 전통장터에서도 보기 힘든 게 엿인데, 이곳에서 엿을 본다. 집안 곳곳을 뒤져서 찾아낸 고물과 바꿔먹던 달달한 엿의 맛도 기억에 각인됐다. 

▲ 콩엿.

추억의 맛, 추억의 풍경 가운데 빼먹으면 서운한 게 튀밥이다. 5일 장을 돌아다니며 튀밥을 튀기는 사람들은 본 적이 있는데 장터에 튀밥가게 간판을 내걸고 튀밥을 튀기는 집은 처음이다. 

튀밥 기계가 네 대다. 요즘은 사람이 손으로 기계를 직접 돌리지 않고 기계가 다 알아서 돌려준다. 

▲ 튀밥 기계에 남은 튀밥을 담고 있다. / 추억의 튀밥집. / 갓 튀겨낸 튀밥은 얼마동안 식혔다가 싸야한다.

주변 사람들 놀라지 말라고 튀밥장사 아저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던 “뻥이요” 소리도 사라졌다. 요즘은 호루라기를 분다. 

튀밥집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에 이어 곧바로 ‘펑’하는 소리와 함께 튀밥이 튀겨져 나온다. 기계 속에 남아 있는 튀밥 한 알까지 다 긁어내 담는다. 

튀밥집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아줌마 한 분이 사진 찍는 나보고 한 번 먹어보라고 한다. 찰옥수수 튀밥이라는데 달달하고 고소하다. 

▲ 장거리 벽화.

남원공설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면 곳곳에 남아 있는 추억의 풍경, 추억의 맛을 찾을 수 있다. 추억이 맛있다. 

▲ 생선가게 옆 호떡집. 호떡집 옆 닭강정집.
▲ 남원공설시장에서는 장구도 판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