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하이브리드 주택
전통과 현대의 하이브리드 주택
  • 홍예지 기자
  • 승인 2015.10.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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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죽림동 주택
▲ 도로에서 바라본 본채와 별채.

[나무신문] 한옥의 채 나눔, 목구조의 아늑함, 철근콘크리트의 손쉬운 유지관리. 이 장점을 합칠 수는 없을까? 건축가는 ‘주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건축주를 위해 오밀조밀 세심하게 구성한 죽림동 주택을 선물했다. 오랜 고민 끝에 완성된 공간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편집자 주> 

395호부터 2번에 걸쳐 (주)건축사사무소유오에스의 단독주택 프로젝트가 차례로 소개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 

 

건축주 마음 대변하는 보금자리 
청주에 거주 중이던 40대 건축주 부부는 부지 마련 후, 고민에 빠졌다. 평당 단가의 부담 등 여러 장벽에 부딪쳐 기존에 계획했던 한옥을 포기해야만 했던 것. 오랜 기간 심사숙고한 끝에 한옥을 제외한 건축구조를 선택하기로 결심한 만큼 그들의 마음에 드는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해답은 설계를 진행한 (주)건축사사무소유오에스의 정기정 소장의 손에 쥐어 있었다. 그는 건축주에게 모든 장점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형태를 제안했다.

“한옥을 포기한 대신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모습을 조합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유지관리가 쉬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주 건축구조로는 철근콘크리트를 택하고, 한옥의 채 나눔과 목구조의 따스함을 더해 단독주택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고자 했죠. 또한 816.00㎡(246.84평)의 넓은 부지에서만 가능한 요소들을 설계에 반영해 만족스러운 배치로 풀어냈습니다.”

완공된 주택은 현재 2년이 채 안 됐지만, 추후 두 번째 집을 짓고 싶게 만들 정도로 건축주에게 의미 있는 곳으로 탄생했다.

▲ 별채와 본채의 진입 마당.

주택에 의미를 부여하다 

▲ 진입 외부계단을 올라오면 보이는 본채의 정면.

정 소장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배치였다. 최근 도심 근처에 지어지는 단독주택들은 좁은 부지 안에 마당도 함께 위치해야 하기에 대문과 주택의 경계가 가까운 경우가 많은데, 그는 죽림동 주택이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다.

“예전에 지어진 주택들은 대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에 본채가 있었습니다. 주택까지 가는 긴 과정을 통해 보금자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죽림동 주택은 짧은 계단을 두 번 올라가면 포근함이 느껴지는 거실이 눈앞에 놓이도록 했습니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죠.”

별도의 중정이나 연못 등을 설치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오랜 기간 거주하는 만큼 유지 관리가 쉬워야 한다는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아울러 외부 데크 위에서 청주 시내 전경은 물론, 자연을 감상할 수 있어 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마당에는 잔디 대신 마사토가 놓였는데, 바람이 불어도 흙먼지가 일지 않는 등 장점이 있어 건축주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 진입도로에서 본 별채.

벽돌로 마감한 외관은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한 재료를 썼을 때 느껴질 수 있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부분에 스케일의 변화를 주려고 했습니다. 똑같은 자재도 방식에 따라 다르게 연출할 수 있죠. 특징적으로 포인트를 줘야 할 부분만 쌓기를 달리한 것입니다.”

나란한 형태로 놓인 본채와 별채 2개의 공간은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창의 위치 등 세심하게 고려했다.

▲ 출입계단에서 별채의 출입문을 본 모습.

로망이 담긴 다실과 주방/식당

▲ 2층 다용도 공간의 움직이는 벽.

살림 공간으로 이용하는 본채는 1, 2층으로 구성했다. 1층은 거실, 주방/식당, 보조 주방, 세탁실, 2개의 게스트룸 등으로 꾸몄는데, 이 중 주방/식당은 건축주 아내의 로망이 실현된 결과다. 

“건축주 아내는 주방/식당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었습니다. 거실의 크기보다 주방/식당의 면적이 늘어난 이유죠. 해당 장소에서 가족들의 동선도 파악할 수 있길 원했습니다. 실제 일을 하면서도 큰 창을 통해 움직임을 살필 수 있죠.”

주방/식당 앞 데크 일부분은 구멍을 내 모래사장으로 만들어 어린 자녀가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공용공간이 놓인 1층과 달리 2층은 부부침실, 드레스룸, 아이 침실 및 공부방 등 사적인 공간으로 연출했다. 특히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불편함이 없도록 1, 2층 전부 세탁실을 배치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 다실 전경.

건축주의 요구 사항 중 하나였던 ‘다실’은 별채로 구성했다. 살림 장소와 분리시켜 많은 손님이 드나들어도 부담 없는 곳으로 꾸민 것. 다실은 건축주가 모임을 갖는 동시에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다실 근처에 간이 주방/식당을 배치해 편의성을 더했다. 

 

▲ 다락 전경.

목구조가 쓰인 공간은?
다실 위에 위치한 다락은 목구조를 선택했다. 이곳은 건축주가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기타를 치는 등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락이 본채가 아닌 별채에 놓인 것은 손님들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차(茶)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건축주는 지인들과 새벽까지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곤 하는데,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죠. 본채와 시선이 차단돼 마음껏 머물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단순 철근콘크리트구조에서는 들을 수 없는 ‘빗소리’ 선율도 하이브리드 형태의 장점 중 하나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위안을 얻기도 하고,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 별채 계단 하부 간이주방.

“단순한 빗소리가 어느덧 ‘살아가는 맛’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써 다가오는 것은 주택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시끄럽게만 들릴 수 있는 빗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죠. 목구조에 사는 이들만 공감 가능한 삶의 정취이기도 합니다. 흠뻑 땀에 젖은 후에 마시는 차갑고 신선한 물 한 잔처럼, 빗소리가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사진 = 김용순 사진작가

▲ 별채 정면도(왼쪽) /별채 좌측면도(오른쪽)
▲ 본채 정면도(위) / 본채 배면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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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주)건축사사무소유오에스 정기정 소장 

“주택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배경”

㈜건축사사무소유오에스의 정기정 소장은 단독주택 설계에 대해 거주하는 사람을 중점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택마다 건축주 특성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어떤 곳은 화려한 벽지나 소품으로 압도하기도 하는 반면 차분함이 느껴지는 공간도 존재하기 마련이죠. 저는 벽지나 가구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주택을 설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돋보여야 하는 것이죠.”

이어 그는 설계 자체가 죽을 때까지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건축 철학에 대해 묻는데, 쉽게 대답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아무리 건축 일을 오래 했어도 매일매일 배워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죠. 설계는 건축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건축주와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 조금씩 구체화되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건축물이 다른 외형으로, 건축주를 닮은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건축가 소개 건축가 정기정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7번의 시험 끝에 건축사를 취득했고 현재 ㈜건축사사무소유오에스의 대표로 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제3회 젊은건축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표창)’을 받았다. 또한 2012년엔 농어촌건축대전 본상을, 2013년에는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는 ‘제1회 신인건축사상(대한건축사협회상)’을 받았다. 2011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진행한 ‘집을 생각하다’란 기획전에 작가로 참여했으며, 서울시립대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다. 현재는 서울시공공건축가로 경기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 <본채 지상 1층 평면도>1 현관-2 2 복도 3 거실 4 주방/식당 5 보조주방 6 세탁실 7 창고-2 8 게스트룸-1 9 게스트룸-2 10 공용화장실
▲ <본채 지상 2층 평면도>1 복도 2 부부침실 3 드레스룸-1 4 화장실-1 5 창고-3 6 아이침실 / 공부방 7 드레스룸-2 8 화장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