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기찻길
섬진강 기찻길
  • 나무신문
  • 승인 2015.10.12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곡성
▲ 섬진강 저녁 풍경.

[나무신문] 남도의 가을이 여름을 품었다. 10도가 넘는 일교차에 하루에 두 계절을 산다. 계절도 사람도 분주하다. 높고 파란 하늘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떠나지 않아도 떠난 것 같은 날들이니 일상을 벗어난 그 어떤 다른 곳이라면 그 마음 어떻게 숨을 죽일까?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자, 걷고 싶으면 걷고 쉬고 싶으면 쉬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게 말이다. 

 

▲ 곡성 기차마을에 있는 옛 곡성역.

코스모스 핀 길
옛 곡성역에 기차마을이 생긴 건 좀 됐으나 많이 변했다.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전에 기차마을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는 세트장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없어지고 그 자리에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옛 역사를 지나 플랫폼에 섰다. 플랫폼은 섬이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이 교차하는 섬이다. 마중의 기쁨과 배웅의 아쉬움이 코스모스처럼 피어난 섬이다. 오가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이별의 손짓도 다 사라진 시간 그곳은 텅 비어 다 찼다. 

▲ 곡성 기차마을 코스모스가 핀 기찻길.

녹슨 철길에 웃자란 잡초 위로 여름 같은 햇빛이 떨어진다. 그 하나로 플랫폼은 가득하다. 그윽하다. 아지랑이가 숨을 목젖까지 밀어 올린다. 숨이 차듯 마음이 벅차다. 가슴이 간질거린다.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그저 잡초가 된 풀포기와 햇볕이 만든 풍경이 이러하니, 이 세상에 태어나 이름 하나 얻은 코스모스가 피어난 풍경은 오죽하랴. 

▲ 곡성 기차마을 장미의 정원.

가수 나훈아가 부른 노래 <고향역>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 어디 한 곳 뿐이겠는가! 그 누군가의 고향역에 오늘도 코스모스는 피어있겠지. 머리에서 그 노랫말을 지워야 곡성 기차마을 코스모스 기찻길이 보일 것 같아서 애써 지우려했지만 오히려 또 다른 노래가 입에서 맴돈다. 

▲ 곡성 기차마을과 가정역을 오가는 관광열차.

가수 김상희가 부른 노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은 ‘기찻길’에서 ‘길’로 꽃이 피어난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길어진 한숨이 이슬에 맺혀서’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렇게 흥얼거리며 걷게 하는 게 코스모스길이다. 

한들한들 코스모스 따라 하늘거리며 걷는데 하늘이 파래서 몸도 마음도 다 가벼워지니 이렇게 달뜬 숨을 어떻게 할까!

 

▲ 곡성 기차마을 물레방아. 물레방아가 돌면서 기차 달리는소리를 낸다.

달리는 기차바퀴 소리가

▲ 섬진강 래프팅.

발길이 마음 보다 먼저 움직인다. 풀밭 한 쪽에 있는 물레방아가 물통홈에 찬 물을 공중에 뿌리며 쉬지 않고 돌아간다. 

물레방아를 받치고 있는 건 기차바퀴다. 돌아가는 건 물레방아인데 소리는 철길 위에 부서지던 기차바퀴 돌아가는 소리다. 

철길 위에 놓인 모든 역에서 서서 사람을 태우고 내려줬던 완행열차 ‘비둘기호’가 있었다. 차량과 차량 사이 통로 양쪽 문이 다 열리고 맨 뒤 차량의 뒷문도 열렸다. 

문을 열면 철로 옆 코스모스가 기차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흐트러져 보였다. 먼 산을 바라보면 풍경은 움직이지 않고 기차에 있는 내가 그 풍경을 중심으로 원호를 그리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 섬진강 여울.

사람 타고 내리는 계단에 앉아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담배 한 모금 깊게 빨아 연기를 길게 내뿜었었다. 덜컹거리는 기차바퀴 소리에도 규칙이 있었다. 반복 되는 그 소리가 귀에 익을 때면 어느새 그 소리는 마음에서 울리고 있었다. 

 

▲ 섬진강 옆 기찻길을 달리는 레일바이크.

섬진강
곡성 기차마을에서 출발해서 가정역까지 운행하는 관광열차가 있다. 실제 증기기관차는 아니지만 겉모습을 그렇게 꾸민 관광열차를 타고 곡성 기차마을 플랫폼을 출발한다. 

기차는 느릿느릿 달린다. 기찻길 옆 도로에는 차들이 빠르게 오고간다. 그 도로 옆에는 섬진강이 흐른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옛 기차의 추억을 새기는 시간 동안 기차는 달려 가정역에 도착한다.   

▲ 가정역 앞에 있는 섬진강을 건너는 다리.

가정역 앞에는 섬진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다리 건너 오른쪽에 천문대가 보인다. 강가에서 바라보는 은하수와 별빛은 산에 있는 천문대에서 바라보는 것과 분위기가 다르다. 
별을 볼 수 있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래프팅을 할 수 있다.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가며 뱃놀이도 하고 섬진강물에 젖어 보기도 한다. 

래프팅을 하기 싫으면 물비린내 나는 강가의 길을 어슬렁거린다.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가면 길은 구례로 넘어가게 된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두계마을 어귀가 나온다. 

▲ 가정역 앞에 섬진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 천문대가 있다.

어디로든 걸어도 좋은 시간, 저녁이 되면 강물은 부풀어 오르고 공명의 소리를 더 크게 울리며 흐른다. 

석양을 반사하는 붉은 구름이 산그림자와 함께 물에 비친다. 비치는 게 아니라 물에 잠겼던 풍경이 저녁이 되면 물 위로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새들도 물 위를 날아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 낮달이 떠서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 섬진강 위에 뜬 낮달.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